[특집기획] 일본제국군과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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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일본제국군과 동물
  • 이민우 기자
  • 승인 2019.08.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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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의 전쟁에 있어서 동물의 선척적인 능력이 여러 역할을 담당하였고 따라서 매우 필수적이었다는 사실로부터, 근대 이후 일 본의 전쟁에서 군마 및 여러 군용동물이 담당했던 역할에 대하여 보다 자 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이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여러 동물을 이용했던 것은 비단 근대 이후에 나타난 양상은 아니었다. 특히 말(馬)같은 경우에는 어느 특정 전쟁에 ‘특별히’ 이용되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말은 근대와 전근대 를 구분하지 않고 거의 모든 전쟁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다. 주지하듯, 자동차나 트럭, 기차와 같은 석탄, 석유를 이용한 운송수단 및 이동수단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은 오랫동안 동, 서양을 불문하고 물자를 운송하고 인 간을 이동시키는데 있어 매우 효율적인 동물이었다.

따라서 근대 이전의 전쟁에서도 말이 가진 기동성 및 힘은 군대의 물자운송 및 군인의 이동수 단으로 필수적인 존재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근대 이후의 전쟁에서 기계화된 무기와 운송수단이 등장하자, 전쟁의 풍경은 변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어느 국가의 병력의 정도를 가늠할 때, 병사의 명수나 능력은 여전히 중요한 척도가 되었지만 점차 잠수함, 전투기 등 기계화된 신식 무기들은 병력의 정도를 가늠할 때에 매우 주요 한 분석 요소가 되었다. 따라서 생각해보면, 석탄과 석유를 동력으로 사용 하는 기계화된 무기 및 운송수단이 등장하고 적극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근대 이후의 전쟁에서 운송수단으로서의 말의 역할은 점차 감소해야 할 것 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였다. 오히려 시 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전쟁에 이용된 말의 수는 물론 전쟁에 동원된 동물 의 종류와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시력, 청력, 후각, 스피드, 스태미나 등 인간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 을 가진 동물은 근대 이후에도 여전히 그 유용성을 인정받았고 따라서 전 력이 완전히 기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시점까지 전쟁에 자주 동원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동물의 선척적인 능력을 대체하거나 능가할만한 기술 의 개발 및 그에 따른 제반시설이 완비되기 이전까지 동물은 여전히, 어쩌 면 더욱더 전쟁에서 중요한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 중요성이 가장 강조되었던 동물은 다름 아닌 말, 바로 군마였다. 만주사변 이후 일본군이 지방의 마산가(馬産家)들에게 내린 다음과 같은 지령을 보자. “일본군은 개전초기에는 약1만 마리의 군마를 필요로 하였지만 그 후 단기간에 5만 마리로 증가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같은 시기 참전병은 약 2배로 증가했을 뿐이었다. 마수는 5배로 병사는 2배로, 동시기에 요구되는 정도의 말의 요구는 급속하게 크기 때문에 평소 지 방산계도 이것에 대응하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일본의 군대는 전쟁 수행을 위해 대량의 군마를 필요로 했고, 따 라서 군마의 원활한 동원은 일본군의 전력을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한 사 안이었다. 때문에 일본은 메이지유신 직후부터 마필의 품종개량, 생산, 훈 련, 육성, 조교기술, 마술의 향상 등 모든 면에서 마사(馬事)문화의 변혁, 이른바 마필의 신체성의 근대화를 필요로 하였다. 그렇다면 왜 일본군은 대량의 군마를 동원해야만 했을까? 기계화된 운송 수단 및 무기가 지속적으로 개발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근대 이후에 치 렀던 전쟁에 있어서 말과 같은 군용동물의 이용수가 점차적으로 증가하였 던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기계화된 무기가 결코 능가할 수 없는 동물들의 선천적인 감 각이나 운동능력이 군사업무 수행에 있어서 때때로 매우 주요하였기 때문 이다. 자동차나 트럭, 기차와 같은 운송수단이 개발되고 유입되기는 하였 지만 근대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였던 지역의 대부분은 기계화된 운송수단 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도로 및 기반조건이 정비되지 못한 곳이었다. 예컨대 만주지역에 있어서 만철과 같은 철도가 존재하기는 하였지만 오히 려 그 철도 주변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물자의 운송은 마차를 이용하여 이 루어져야만 했다. 태평양전쟁의 경우에도 일본이 점령하였던 동남아지역은 그 토질자체가 진흙인 경우가 많고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자동차를 이용하 기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다. 따라서 말은 탄약이나 식량을 운반하는 운송 수단이자 병사의 이동수단이었다.

즉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서 여전히 자동차의 역할을 대신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기계화된 무 기와 운송수단이 개발, 유입된 이후에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기반시 설이 완비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은 근대 이후의 전쟁에 있어서 말의 기 동력과 끄는 힘과 같은 선천적인 능력은 전쟁 규모의 확대에 따라 더욱 필 요했던 것이다.

일본이 근대 이후에 치렀던 전쟁에 있어서 말과 같은 동물들의 이용수가 점차적으로 증가하였던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본이 기계화된 운 송수단 및 무기를 개발, 이용할 만큼의 기술력에 도달하고, 또 그것을 운 용할 도로 등의 제반시설이 정비된 지역에 있었다 할지라도 막상 그것을 돌아가게 할 연료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자동차산업에 있어서, 일본은 1939년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의 기계력에 대패한 것을 계기로 기술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였다. 그 결과 아시아‧태평양전쟁 개전 이후에는 생산대수와 성능의 면에서 일본 의 자동차산업은 세계에서도 제일가는 수준까지 상승하였지만, 미군의 반 격과 함께 자원 및 원료 유입의 단절과 항공기산업에의 중점전환에 의해 결국 자동차 생산의 비중은 저하되고 말았다.

이를테면 일본의 무기와 (지상)군대는 점차 기계화되었지만 그러한 기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것 을 움직일 동력은 점점 부족하게 되었고,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전근대 시 기 운송수단, 또는 무기의 상징과 같은 말이나 개, 비둘기, 소 등 동물의 이용은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군마 이외의 군용동물의 이용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전서구(傳書鳩)라 불렸던 비둘기의 사례를 보자. 전서구는 교전국의 전파 에 잡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약간의 훈련을 거치면 매우 탁월한 귀소본능 을 보였기 때문에 기밀사항을 전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능력을 발휘하였 다.

 개 역시 뛰어난 후각 및 청각과 충성심 때문에 즐겨 전쟁에 동원되었는 데, 군대에서 말의 필요성이 대체로 운송수단 및 이동수단에 한정되어 있 었다면 군견의 경우에는 전령 및 경비분야에서 활용이 되었다. 군견으로서 군대에 동원되었던 견종은 크게 ‘셰퍼트’, ‘도베르만’, ‘에어데일 테리어’로, 모두 독일 및 영국산의 서양견이었다. 군용견의 경우 강한 충성심과 복종심, 적에 대한 공격력 및 어려운 훈련을 잘 따를만한 지능이 요구되었 는데, 일본견의 경우 도베르만과 같은 서양견에 비하여 위에 나열한 바와 같은 성질이 뛰어나지 못하다고 생각되었으므로 종전까지 군용견의 자리는 줄곧 서양견종들이 차지하였다.

한편 아시아·태평양전쟁 이후, 일본은 버마 전투에서 토목공병으로서 400마리 이상의 코끼리를 사용하는 등 아주 생소한 동물들까지도 전쟁에 동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추측하건데, 일본은 기계화된 무기 및 운송수단의 등장 이후에도 기반시설의 확충요건이나 연료의 부족 등 열 악한 환경 때문에 그러한 신식 문물들을 사용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 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군마의 경우를 포함하여 군견, 전서구 등 전장에 직접 투입되는 동물들은 군대의 기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전쟁에서 매우 중 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개전 이후 전선이 대륙과 남양등지로 확대될수록, 더불어 전투기의 사용 빈도가 증가 할수록 동물자원을 더욱 필요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주사변 이후 군용식 량으로 공급되었던 소와 돼지 등의 가축을 제외하더라도 토끼와 개, 고양 이 등은 혹한의 만주지역에 주둔하는 군인들의 군용모피 제작을 위하여 대 량으로 동원되어야만 했으며, 공중전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전투지역을 가 리지 않고 전투모 안의 방한모피 등을 제작하기 위해 대량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일본군은 메이지유신 이후 지속적으로 가축 개량 사업 중 군마 개 량을 제 1의 목표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군마 이외의 군용동물에 대한 관 심은 비교적 적었다. 그런데 1930년 대 이후 전선이 확대되면서, 이를테면 전시체제로 돌입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군내에 기타 군용동물의 동원과 활 용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그러나 일본 육군에서의 기타 군용동물의 활용 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군마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보조하는 역할 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의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군사 상 말 이외의 동물을 사용하는 것은, 1은 말의 부족을 보충하 고 또 1은 임무 상에 있어서 기타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에 짐을 나르 는 용과 차를 끄는 용 및 특종의 임무를 응용하는 것이다.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특히 세계 각 국 군에 있어 사용되는 것은 당나귀, 노 새, 소, 물소, 낙타, 코끼리, 개, 비둘기 등이다.” 일본군내에서 군용동물로서 말의 중요성은 다른 어떠한 동물들보다도 월 등하게 높았기 때문에 군마를 동원하고 관리했던 육군 수의사들 또한 군마 의 동원과 심사과정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육군 수의사들이 군 마가 아닌 다른 군용동물의 관리에 있어서 소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陸軍獣医部将校必携』에서 육군 수의사가 심사해야하는 군용동물의 종류 는 말을 포함하여 총 10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위의 기록에서는 세계 각국군에서 활용하는 군용동물로 소개하였지만 뒤의 기술을 보면 위와 같은 10종의 동물들을 동원할 시에 준수해야할 실제적인 기준들은 물론 사육 시의 주의사항까지 서술되어 있다. 이 군용동물들은 군마에 비해서 그 활 용도가 낮았고, 활용되기 시작한 시기 역시 군마와 비교하자면 매우 늦은 편인데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실제적으로 일본에서 구할 수 있는 군용동물의 종류가 한정되 어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코끼리나 낙타와 같은 동물은 당시의 일본에서 도 동물원에 가서나 볼 수 있는 희귀동물로 군용동물로 동원하기에는 보유 마릿수에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대륙이나 남양 등지로 전장이 확 대 된 이후에야 현지 상황에 맞는 현지 동물들을 군용동물로 동원하기 시 작하였다.

두 번째는 만주사변 이전까지 육군에서 다양한 군용동물의 활용을 고려 할 필요성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주사변 이후 대륙으로의 진출이 확 실해질 때까지, 육군은 특히 낙타와 같이 매우 희귀한 동물들을 군용으로 동원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군용 비둘기의 경우에도 첨단 통신 수단의 등장과 그 수단의 결함을 발견하기 이전까지는 군용으로써의 활용도를 인 정받지 못하였다.

물론 일본에서의 군용동물 동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서구 국가에서의 군용동물 활용을 모방하여 생겨난 것이었지만, 실제적인 필요성이 생겨나기 이전까진 일본군에서의 군마 이외의 군용동물 활용이 적극적일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요컨대 일본군이 뒤늦게 다양한 군용동 물을 활용하게 된 것은 전쟁 지역의 확대 및 첨단 무기의 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었다. 몇 가지 군용동물이 실제 전장에 등장한 사례를 사료를 통해 살펴보자. 먼저 군마 다음으로 군용동물로서 동원되었던 군견의 경우 일본 육군에 정 식으로 사육,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쇼와8년(1934)의 일이었다.

과쇼와8년(1934) 육군 보병학교 및 관동군에 군견육성소를 설치시켰 다. 또한 이번 사변을 계기로 하여 점차 증가시켜 군용 적종견(的種犬) 일만여 마리를 헤아리게 되었다.”최초로 군용견 육성소가 들어선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 이미 군용 견을 일만여 마리를 확보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육군에서의 군견 육성 사 업은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2장 1절에서 표로 언급한 것과 같이 전장에서의 개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였지만, 크게 네 가지로 압 축해서 이야기하면 전령, 경계, 탐색, 운반이 주요 역할이었다.

한편 군용 비둘기에 대한 기술을 보면 다음과 같다. “훈련에 의한 귀소능력을 발달시켜 과학적 통신기관의 결함을 보충 할 수 있도록 하고 귀소능력 및 비행 속도의 우수한 것을 선정하여 종 구(種鳩)로서 번식을 꾀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다이쇼8년(1919)이 래 연구에 착수하여 최근 그 수가 5만 마리를 헤아리고 비행능력 600km로 발달하여 군구에 의한 이동통신은 세계 제일을 자랑하여「미 국」으로 하여금 일본을 모방하게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료를 살펴보면, 군마와 전서구에 대한 연구가 모두 1919년의 단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마 이외에 군용으로써 가장 많은 수가 동원되었던 군견과 전서구에 대한 연구가 1919년부터 시작되었던 것 은 우연이 아니었다.2

서구 국가가 군마 이외의 다양한 군용동물을 대량 으로 동원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일로, 1919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바로 이듬해였다. 요컨대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서구 국가들의 군용동물 동원 및 이용 사례를 눈으로 확인하였던 것이고 그 효용성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군마 이외의 군용동물에 대한 연구를 시 작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기록을 보면 당나귀나 노새 등 일 본에서 군용동물로서 익숙하지 않은 동물들의 활용법에 대해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서구 국가의 양상을 관찰하여 기술한 것이 대부분이다.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일본 육군 내에서의 다양한 군용동물의 도입은 대체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었다. 이러한 양상은 1932년 만주사 변 이후 일본이 전시체제로 돌입하게 되면서 보다 가시화되었다.

대륙으로 의 진출과 아시아 전 지역으로의 전장 확대, 신식 무기의 개발 등이 다양 한 군용동물 동원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이처럼 군용동물에 대한 대량 동원과 이용은 필수적으로 그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 전문적인 관리인이라는 것은 곧 군대에 소속된 수의사들로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하는 육군수의사들이었다.

1930년 대 이후 일본이 대 륙으로 전장을 확대하게 되면서 대량의 군마 및 군용동물의 동원과 이용이 이루어졌고, 따라서 육군 수의사가 담당해야하는 업무는 그 이전보다 다양 해 질 수밖에 없었다.

육군 수의사들이 군용동물 동원과정이나 사양법, 치 료 방법을 숙지하는 것에 있어서 과거 군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이 시기부터는 군마와 함께 다양한 기타 군용동물의 관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실상 오늘날 말하는 수의사의 모습, 이를테면 소동물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의 치료 및 관리를 행하는 수의사의 모습이 육군 수의사들에게 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있어서는 특히 193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고 파악할 수 있겠다.

이처럼 전쟁이 확대되면 될 수록 군마, 군견과 같은 살아있는 병기(活兵 器)28)로서의 동물 및 단순 전쟁자원으로서의 동물의 필요성은 급격하게 증대되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그 필요성이 증가한 동물 자원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효과적인 군용동물 동원경로를 구축하지 않 을 수 없었다.

더불어 이처럼 대량의 동물을 동원하고 이용함에 있어서 동 물 자원의 불필요한 손실을 막기 위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 인력을 이용해야만 했다. 일본의 군대에 있어서 육군수의사들의 역할이 점차적으 로 주요해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군대에 동원되는 동물의 종류는 점차 다양해졌고 그 마릿수 역시 급격하 게 증가했다. 따라서 군대는 그것을 조달하고 건강하게 관리하여 군대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병력을 최대한으로 유지시킬 수의사를 대량으로 필요로 했다. 따라서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전쟁에 있어서 매우 주요한 자 원이었던 말의 개량사업을 진행시킴과 동시에 그것을 선발하고 또 관리하 는 이들, 즉 수의사의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마필개량 및 수의사 양 성, 군용동물 개발 등 일련의 노력이 가장 빛을 발하였던 시기가 바로 1930년대 이후의 전시체제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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