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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 1부 · 신라와 서역

경주 계림로 보검이 남긴
서역 교류의 흔적

SILLA AND THE WEST · EVIDENCE AND INTERPRETATION

유물과 문헌, 설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말한다.

배경 영상은 재현 연출 — 교류권역 개략도 + 확인한 자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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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

거리 이름과 고대 유물 사이

현대의 외교관계와 고대의 문화 접촉을 한 줄의 연속된 역사로 보지는 않는다.

서울의 테헤란로라는 이름은1977년 두 도시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교환한 역사와 연결된다. 국가기록원 자료는 중동 진출이 활발하던 시기의 거리명 변경을 설명한다. 오늘의 도로명에서 과거를 떠올릴 수 있지만 그 이름만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같은 형태의 관계가 이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이 기획은 신라의 보검과 유리병, 혜초의 기록, 설화와 서사시, 고려의 대외 접촉을 차례로 살핀다. 각 자료가 확인해 주는 내용과 아직 알 수 없는 내용을 구분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유물의 양식이 닮았다는 사실, 문헌에 지명이 있다는 사실, 현대 국가가 수교했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증거다.

— 01 —

보검의 제작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1973년 계림로14호 무덤에서 나온 외래 유물은 동서 문화교류를 연구할 중요한 자료다.

경주 계림로 보검은1973년 경주에서 발굴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2010년 특별전 설명은 이 유물의 정확한 제작지를 알 수 없으며 흑해 연안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친 어느 지역으로 추정한다고 밝힌다. 제목에서 페르시아의 것이라고 확정할 근거는 아니다.

같은 해 국립경주박물관의 보고서 소개는 중앙아시아에서 유행한 단검 형태와 동로마·유럽 지역에 퍼진 금세공기술의 결합에 주목했다. 중앙아시아 집단이 동유럽 기술자에게 주문 제작했을 가능성이라는 해석이다. 이를 특정 제작자와 주문자, 이동 경로가 확인된 사실로 바꾸어 쓰지 않는다.

유물이 신라 무덤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도시에서 누가 만들고 몇 차례 거래를 거쳐 왔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현재의 이란과 한국 사이 직선거리를 유물의 실제 이동거리로 사용하거나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직접 선물한 검이라고 서술할 수는 없다.

경주 계림로 보검
경주 계림로 보검. 제작지와 이동 경로는 확정되지 않았다. 사진 제공 |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 Wikimedia Commons 원본 / CC BY-SA4.0 표기 확인.
— 02 —

교류권역을 살피는 지도

아래 선은 확정된 보검 운송 경로나 혜초의 전체 답사 노선을 뜻하지 않는 개략도다.

인터랙티브 지도 1 · 5~9세기 실크로드 (도시 클릭)
신라와 서역의 교류권역 — 자료를 읽기 위한 개략도
카스피해 사산조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당 (唐) 신라 크테시폰 사마르칸트 쿠차 장안 경주 약 7,000km · 직선 거리 교류권역 참고선 · 실제 이동 경로와 거리는 확정되지 않음
경주 — 신라의 수도
출토지와 제작지의 구분

계림로 보검의 출토지다. 출토 장소는 확인되지만 외래 유물의 정확한 제작지와 운송 경로는 별도 연구 대상이다.

↑ 지도 위 마커에 마우스를 올리거나 탭하면 도시 정보가 바뀝니다.

— 03 —

유리병의 양식과 제작지

닮은 형태와 재료 분석은 단서이며 현대 국가의 국적표와 같지 않다.

황남대총 출토 봉수형 유리병도 서역과의 문화 접촉을 살필 자료다. 국립중앙박물관 해설은 고대 그리스의 오이노코에 형태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사산조 페르시아·로마·터키 등 여러 제작 가능 지역을 함께 언급한다. 여러 지역의 문화와 제작기술이 얽힌 유물을 페르시아산 하나로 묶으면 해석의 범위가 좁아진다.

유물의 제작 시기와 무덤에 묻힌 시기, 오늘날의 국가유산 지정 종목도 다른 정보다. 이전 표에서 잘못 적었던 천마총 유리잔의 지정은 보물이다. 지정 명칭을 바로잡는 일과 유물의 제작지를 밝히는 연구는 각각의 근거로 확인해야 한다.

황남대총 출토 유리병과 잔
황남대총 출토 유리병과 잔. 서역 계통의 양식과 제작지의 추정은 구분한다.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사진 원본·저작자·이용조건 / 공공누리 제1유형.
— 04 —

혜초의 기록에는 답사와 전언이 함께 있다

지명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지역을 직접 밟았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왕오천축국전」은8세기 신라 승려 혜초의 인도·서역 견문을 전한다. 우리역사넷 해설은 인도 각 지역과 간다라·파미르를 거쳐 돌아오는 여정을 설명하면서 각 지역의 직접 방문 여부에는 확인의 한계가 있다고 밝힌다.

파사국과 대식국에 관한 기술도 직접 답사와 전해 들은 정보의 구분을 고려해 읽어야 한다. 혜초의 페르시아 답파를 확정한 문장과 그에 맞춘 여행 노선은 이 구분을 생략했다. 문헌이 먼 지역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의미는 남지만 모든 지명을 여행 도착지로 표시할 수는 없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앞부분과 일부 끝부분이 결락된 필사본이다.1908년 폴 펠리오가 둔황에서 발견했으며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혜초가 직접 쓴 친필인지 후대의 필사인지도 확정할 수 없다는 점을 구분한다.

왕오천축국전 잔권
「왕오천축국전」 잔권. 저자의 친필로 확정하지 않는다. Wikimedia Commons 원본·이용조건 /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 Public Domain 표기.
— 05 —

설화와 서사시는 어떻게 읽을까

처용과 쿠쉬나메를 실제 인물의 국적이나 왕실 혼인의 확정 기록으로 바꾸지 않는다.

「삼국유사」의 처용 설화에는 용왕의 아들, 노래와 춤, 역신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처용의 정체를 이해하려는 해석은 신앙과 정치·사회적 맥락 등 여러 방향으로 전개됐다. 서역인과 연결하는 가설도 있지만 가면의 코·눈·피부색 표현만으로 인물의 혈통이나 국적을 판정할 수는 없다.

신라와 서역의 관계를 논할 때 설화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그러나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물건의 문화적 해석을 실재 인물의 여행 기록이나 출신 증명으로 바꾸는 데에는 별도의 근거가 필요하다.

「쿠쉬나메」는 이란의 신화적 역사를 다룬 서사시다. Encyclopaedia Iranica는 작품의 성립을1108~1111년으로 설명하고 현존 필사본의 연대를1397년으로 제시한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와 필사본이 작성된 시기부터 구분해야 한다.

한국 연구에서는 서사 속 바실라를 신라와 연결해 읽는 논의가 있다. 작품의 지리와 풍속을 동아시아 자료와 비교하는 연구의 의미와 별개로, 아브틴과 파라랑의 혼인을 사산조 왕족과 신라 공주의 실제 혼인 기록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이라니카의 줄거리에서 파리둔은 이란에서 태어나며 이를 신라에서 태어난 왕자로 설명한 기존 서술도 맞지 않는다.

— 06 —

고려의 기록과 현대의 수교

방문 기록, 출신 지역의 해석, 현대 외교관계는 각각 확인한다.

우리역사넷의 「고려와 대식국의 교류」는1024년 등 고려시대 대식국 사람들의 방문 기록을 소개한다. 다만 대식국이라는 명칭만으로 이들이 정확히 어느 지방에서 왔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들을 일괄적으로 페르시아인100명으로 특정하거나 후손의 정착과 지명 전파를 확정할 근거는 아니다.

교류의 흔적이 시기마다 다르게 남아 있다는 것과 일정 기간 모든 교류가 끊겼다는 주장은 다르다. 조선시대 공동체의 소멸 시점이나 포도·포도주가 처음 들어온 해, Korea라는 이름이 특정 방문자의 후손을 통해 퍼졌다는 설명은 원자료를 확인하지 못해 이 글에서 단정하지 않는다.

주이란 대한민국 대사관은 양국이1962년10월23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안내한다. 현대 국가의 수교 날짜는 고대 유물의 제작지나 중세 문헌의 민족 명칭과 다른 차원의 기록이다.1977년 테헤란로의 명명도 이 현대 교류의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자료의 시점과 확인 범위
연도자료·사건구분할 점
1024고려의 대식국 방문 기록대식국 명칭만으로 세부 출신지·혈통을 확정하지 않음
1397쿠쉬나메 현존 필사본 연대작품 성립 시기1108~1111년 및 서사 속 시대와 구분
1962한국·이란 수교10월23일 현대 외교관계 수립
1973계림로 보검 발굴출토지와 외래 유물의 제작지는 별도
1977테헤란로 명명고대부터 동일한 외교관계가 이어졌다는 증거는 아님

유물과 문헌이 남기는 빈칸은 긴 교류사를 부정하는 이유도, 상상으로 채울 이유도 아니다. 제작지의 추정, 직접 답사의 여부, 설화 속 지명의 해석을 각각의 자료와 함께 제시하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더 연구해야 하는지 보인다.

테헤란로에서 고대 유물까지 시선을 넓히는 이 기획의 목적도 그 구분에 있다. 다음 회부터 다룰 원유·건설·외교의 기록 역시 당시 자료와 현재의 해석을 나누어 확인해야 한다.

바로잡습니다 · 2026년9월7일
보검의 제작지와 이동 경로, 혜초의 답사 범위, 설화·서사시·대식국 기록을 확정 사실처럼 서술한 부분을 정리했습니다. 원자료를 확인하지 못한 현장 설문 수치와 직접 인용은 삭제했습니다. 앞서 바로잡은 천마총 유리잔의 보물 분류를 유지하며 자료별 확인 범위와 출처를 보완했습니다.

자료와 확인 범위

우리역사넷의 해설은 수록 사료와 집필자의 해석을 구분해 읽었습니다. 배경 영상 등 기존 재현 연출은 제작지나 이동 경로의 증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