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 '테헤란로'를 바꾸자는 청원
강남 한복판에 왜 외국 도시 이름이 붙어 있을까. 1995년에 누군가 이 질문을 진지하게 던졌거든요. 그해 11월, 한국은 '수출 1,000억 달러 달성'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무역협회와 강남 일대 상인들이 요구 하나를 들고 나왔다. "강남 한복판 '테헤란로'를 '무역의 거리'로 바꾸자." 무역·금융의 중심지에 외국 도시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서울시도 일부 호응했다. 강남이 한국 경제의 상징으로 떠오르던 시기다. 그 거리를 한국의 새 정체성으로 다시 부르자는 발상은 1995년의 분위기와 잘 맞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거리 이름 하나에 외국 정부가 끼어든 것이다.
이란이 반발했다.
1995년 12월 15일, 주한 이란대사가 광화문 이홍구 국무총리 집무실을 찾았다. 메시지는 단호했다. "테헤란로와 서울로는 1977년 양국 합의로 만들어진 상징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폐기할 수 없다." 외무부는 그날 즉시 서울시에 명칭 유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한국 정부는 한 달 만에 '개명 불가'를 공식 입장으로 정했다.
[※참고: 루사리·히잡은 무슬림 여성이 머리카락을 가리는 가리개를 뜻한다. 히잡은 가리개를 통칭하고, 루사리는 그중 머리에 둘러 목 위만 덮는 스카프형이다. 이란은 신정 체제 수립 이후 여성의 머리 가리개 착용을 법으로 의무화해 왔다.]
이란이 꺼낸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외교부가 2026년 이 문서의 기밀을 해제하면서 그날 면담의 장면이 처음 공개됐다. 주한 이란대사는 이홍구 총리에게 두 장의 카드를 꺼냈다. 첫째, 정치 카드다. "테헤란의 서울로는 1979년 혁명 이후 친팔라비 시기의 흔적이 지워질 때도 우리가 지켜낸 이름이다." 둘째, 경제 카드다. "이란은 한국 원유 수입의 14.4%를 공급한다. 이 관계는 도로명 하나로 측정되지 않는다." 사료의 메모지 한쪽에는 이홍구 총리의 친필로 보이는 다섯 글자가 있다. "철회 즉시 보고."
결정은 얼마나 빨랐을까. 서울시도 그날 안에 입장을 정리했다. 한국무역협회는 12월 18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무역의 거리' 개명 추진을 보류했다. 강남 상인의 청원도 잠잠해졌다. 11월에 시작한 논의가 12월에 멈췄다. 정확히 한 달이었다. 한국 정부가 신정 국가 이란의 외교적 압박을 받고 자국 도로명 결정을 뒤집은 셈이다. 1990년대 외교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