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이란,
잊혀진 100년
2026년 5월 14일, 오늘.
미국의 이란 폭격은 공식 종료됐지만, 휴전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폐허가 된 그 우방의 이름이 강남 한복판에 새겨져 있다.
2026년 5월 14일, 오늘.
미국의 이란 폭격은 공식 종료됐지만, 휴전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폐허가 된 그 우방의 이름이 강남 한복판에 새겨져 있다.
강남에 새겨진 거리 이름 하나가, 1,200년 만남의 마지막 표지라면.
이 기획은 한국과 이란의 교류를 돌아보고, 2026년 5월의 선박 조사와 외교 협의, 석유 조달 문제를 공개 자료로 살핀다. 현장 취재 근거를 확인하지 못한 광고판 관찰과 시민 인식 설명은 제외했다.
질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한국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그런데 그 폭격의 표적이 된 나라가 불과 한 세대 전 한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도대체 두 나라는 어떤 사이였나. 그리고 우리는 왜 그것을 잊었나.
관계의 윤곽부터 짚어보자. 한국과 이란은 1962년 10월 23일 수교했다. 이란은 한국이 1962년 수교한 페르시아만의 핵심 우방이었다. 1977년 6월 두 수도는 서로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교환했다. 1995년 한국이 테헤란로 명칭 변경을 검토하자 이란이 외교 경로로 반대했고, 한국은 결정을 접었다. 그 외교문서는 31년이 지난 2026년에야 외교부 비밀해제로 공개됐다. 두 나라의 경제 협력은 2010년대까지도 한국 두 시중은행의 이란 중앙은행 원화 계좌로 이어졌다. 미국 재무부가 2019년 9월 그 은행을 제재 명단(SDN)에 올리면서 통로는 끊겼고, 약 70억 달러가 한국 안에 묶였다.
2025년 6월 13~24일,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12일간 폭격했다. 미국 작전명 'Midnight Hammer', B-2 스피릿 7대가 13.6톤짜리 GBU-57 14발로 포르도·나탄즈를 동시 관통, 같은 시각 미 해군 잠수함이 토마호크로 이스파한을 타격했다. 휴전은 6월 24일 발효됐다. 그러나 그 휴전은 8개월밖에 가지 못했다.
2026년 2월 28일 새벽 1시 15분, 미국과 이스라엘이 두 번째 합동 작전을 개시했다. 미국 작전명 Operation Epic Fury. 첫날 새벽, 1989년부터 37년간 이란을 지배해 온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표적 폭격으로 사망했다. 5,000개 이상의 표적이 첫 단계에서 타격됐고, 이란 해군 함정 50척이 손상·파괴됐다. 38일 만에 작전이 완수됐다. 4월 4-5일에는 부셰르 원전이 네 번째로 폭격됐다. 4월 8일 조건부 휴전이 발효됐고, 5월 5일 미국은 작전의 공세 단계 종료를 선언했지만 트럼프 본인이 5월 11일 휴전이 "생명 유지 장치 위에 있다"고 말했다. 5월 4일 한국 운용 선박 HMM Namu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외부 타격을 받았고, 한국 원유 수입의 70.7%가 중동산이고 그중 95%가 통과하던 그 해협은 봉쇄 상태다.
1953년 8월 CIA·MI6 주도의 모사데크 정부 전복 이후 73년이 지났다. 그 사이 미국과 이란은 2025년 6월(12일)과 2026년 2~4월(38일) 두 차례 직접 전쟁을 벌였다. 본 시리즈는 두 가지를 묻는다. 첫째, 73년 사이 한국은 어디에 있었는가. 둘째, 73년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두 번째 질문의 답은 1962년 수교가 아닌 1973년 경주 황금 보검, 11세기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의 신라 공주 묘사, 1024년 벽란도 회회인 100명까지 1,2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본 시리즈는 5부로 구성된다. 1부는 신라 고분의 페르시아 유물부터 1962년 수교까지 1,200년 교류사를 다룬다. 2부는 1962년 수교부터 1979년 이슬람 혁명까지 박정희·팔라비 17년을 다룬다. 3부는 1979년부터 2018년 5월 트럼프의 JCPOA 탈퇴까지 단교 없이 이어진 39년을 다룬다.
4부는 2018년 5월 8일 이후 8년의 동결·인질·송금·보복·전쟁을 다룬다. 5부는 2026년 5월 5일 미국의 Operation Epic Fury 종료 선언부터 5월 14일까지 9일의 현재 상황을 다룬다.
분기점 4개의 선정 기준. 1962년은 양국 첫 외교문서 체결일이다. 그 이전 1,200년은 비공식 민간·문화 교류였다. 1979년은 이란 정권 교체일이다. 팔라비 왕정에서 이슬람 공화국으로 한국의 외교 상대가 바뀌었다. 2018년 5월 8일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JCPOA 탈퇴 선언일이다. 이 결정이 39년 우방 관계의 실질적 종료점이 됐다. 2026년 5월 5일은 미국의 대이란 군사 작전 종료 선언일이다. 휴전은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인가. 세 가지가 겹쳤다. 첫째, 2025년 6월과 2026년 봄 두 차례의 직접 전쟁으로 1953년 이후 73년간 쌓인 미·이란 충돌이 정점에 이르렀다. 둘째, 2026년 봄 외교부가 1995년 테헤란로 위기 문서의 비밀을 해제하면서, 한국이 이란의 압박에 도로명 변경을 접은 전말이 처음 드러났다. 셋째, 2023년 9월 카타르 우회 송금으로 한국 은행에 묶여 있던 60억 달러가 빠져나가며 39년 경제 협력의 마지막 통로가 닫혔다. 회고가 가능해진 시점이, 단절이 가장 깊어진 시점과 정확히 겹친 셈이다.
그렇다면 왜 1,200년까지 거슬러야 하나. 오늘 한국이 폭격을 묵인하는 그 나라가 한국에 어떤 나라였는지는, 1962년 수교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신라 고분의 페르시아 유물, 처용 설화, 《쿠쉬나메》 속 신라 공주, 벽란도의 회회인 100명까지 짚어야 비로소 관계의 깊이가 보인다. 본 시리즈는 그 1,200년을 5부작으로 한 번에 정리하는 첫 한국 매체 기획이다. 각 부는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다.
1,200년 동안 우정이었고,— 이 시리즈의 테제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이었다.
각 부는 독립적으로 읽힌다. 순서대로 읽으면 100년의 호흡이 보인다.
오늘 폐허가 된 그 나라와 한반도 사이에 1,500년 전부터 검·유리병이 오갔다. 처용 설화의 페르시아 기원, 11세기 페르시아 서사시 속 신라 공주, 1024년 회회인 100명, 그리고 1962년 한·이란 수교까지 — 1,200년 인연의 시작을 짚는다.
Read Part 01
1962년 수교와 공관 설치, 김종필 총리의 방문, 현대건설의 중동 진출, 1977년 도로명 교환을 공식 기록으로 살핀다. 통계의 범위와 사사에 다르게 적힌 계약 시점도 구분했다.
Read Part 02
혁명과 전쟁 이후 이어진 외교관계, 합법 교역을 위한 원화결제, 정상 방문의 수주 전망과 제재 이후의 교역 변화를 공개 기록으로 살핀다.
Read Part 03
사용 제한 자금의 카타르 이전, 한국케미호 억류 해제와 귀국, 핵시설 공습과 휴전 발표, 한국의 외교·에너지 대응을 기록별로 살핀다. 두 지도는 실제 좌표나 항로가 아닌 관련 지역의 도식으로 제시한다.
Read Part 04
위 이미지는 기존 AI 재현물이며 실제 광고판 촬영 기록이 아닙니다.
2026년 5월 14일 기준 나무호 조사와 외교 협의, 석유 비축 지표를 검토한다. 발표일과 수치의 계산 기준을 구분하고, 자료 비교표와 대응 과제 선택형 설명으로 확인한 내용과 한계를 짚는다.
Read Part 05검 한 자루부터 폭격 영상까지 — 시리즈가 다루는 14장의 기록.
5C
계림로 보검
5C
황남대총 유리병
727
왕오천축국전
1973
팔라비 황제
1963
박정희 대통령
1971
페르세폴리스 2,500주년
1977
강남 테헤란로 표지석
1979
호메이니 귀국
1989
하메네이 통치 시작 (~2026)
1980
이란-이라크전 발발
2016
박근혜 메흐라바드 도착
2019
솔레이마니
2025
포르도 폭격 · 1차 전쟁
2026
Epic Fury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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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우방의 이름을,— 강남 테헤란로 표지석 앞에서
우리는 매일 무심코 지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