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기후위기

에코주의는 후쿠시마 이후에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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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중고 시대에서 녹색 정치 전망하기

2011년 후쿠시마 핵 발전소 폭발 사건은 경제, 생태, 자원의 복합적 삼중 위기(trilemma) 속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실제적이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세계경제포럼은 ‘거대한 전환-새로운 모델의 형성’을 주제로 자본주의의 존폐에 대해 토론한 적 있다. 이에 대척점에 서 있는 세계사회포럼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주제로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세계경제포럼은 뚜렷한 결과도 제시하지 못하였다.


‘값싼 생태’가 종말을 맞고 있는 시대에서 지구적 수준의 케인스주의(Keynesianism)에 기댈 수도 없다. 그렇다면 녹색 진영과 좌파 진영이 취해야 할 대안과 전략·전술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월러스틴이 던지는 경고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선거 참여에 대한 상반된 전력·전술들, 발전주의 대 생태주의, 세계 좌파가 이 두 대립 지점에서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향후 20~40년간의 체제 전환의 도정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건과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해야 한다는 그의 충고가 어쩌면 모범 답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에 공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 글에서는 녹색 정치의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를 선택적으로 되돌아보고자 한다. 이와 함께 녹색 좌파를 지향하는 개인으로서, 국내에서 신생 정당으로 창당한 녹색당의 당원으로서, 그리고 안타깝지만 4·11총선 결과 당 해산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당이 나아갈 미래를 다루고자 한다. 그렇다고 낯설 정도로 새로운 생각을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럴 능력도 없다. 오히려 ‘새로움이라는 기억상실증적 환상’을 버릴 때 비로소 새로운 주체와 운동의 내용과 형식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1960, 70년대를 거친 후 시애틀, 사파티스타, 베네수엘라, 촛불, 인터넷과 SNS, 월스트리트 등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혹은 ‘21세기의 혁명’이라는 기표들을 유포하고 소비했다. 이 사건들에서 대립하던 이론/실천, 지도/대중, 정치/운동, 국가/사회, 직접/간접, 폭력/비폭력, 국가/지역 등의 이분법적 틀은 옛것과 새것의 구분에 지나지 않았다. 후쿠시마 이후에 유럽 등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녹색 진영과 좌파 진영의 실천과 실험 역시 과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글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자. 녹색 좌파는 현실에 존재하는 녹색과 적색의 긴장 관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 둘을 생산적으로 결합하려는 일련의 해방적 가치와 집단적 의지를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기존 계보학적 구분으로 보자면, 정치적 생태주의나 생태 사회주의적 입장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녹색 정치는 녹색 좌파를 비롯한 환경 운동, 적록동맹, 지역 실험 등 정치 형식들을 아우르는 데 녹색당 역시 녹색 정치의 부분 집합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준비가 끝났다. 핵 발전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녹색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은 특정 국가를 벗어나 광범위한 영토를 대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국제적 수준에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세계 발전 비중의 13%에 불과하고, 전체 에너지 소비의 2%에 불과한 핵이 이렇게 국제적 논란이 되는 이유는 그만큼 가공할 만한 파괴성과 장기 지속성 때문이다. 우선 국제무대에서 핵에너지를 포함한 녹색 정치의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자.

 

2. 리우에서 후쿠시마를 경유하여 다시 리우로

1992년 리우 회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일부 정책에 반영되었음에도, 지난 20년간 수사적인 의미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에 내재한 모호한 성격, 담론과 정책의 불화로 인한 지속 불가능한 오늘이 말해주듯 이후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위기가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리우로 상징되는 그린라운드(Green Round)는 환경 제국주의로, 1997년 유엔기후변화총회에서 채택된 교토 의정서로 구체화 된 국제 온실 레짐은 탄소 제국주의(carbon imperialism)로 기능하고 있다. 지속 가능성은 애초에 신자유주의 체제와 양립 불가능했거나 환경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이 경제 성장에 실질적으로 포섭된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리우+20회의가 제시하는 녹색 자본주의(green capitalism)는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한 출구 전략인 셈이고, 자본주의의 색깔이 바뀔지언정 불평등, 빈곤 퇴치, 자원 수탈, 식량 위기, 기후 위기, 경제 위기, 성적 차별 등의 기존 모순들은 심화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대표하는 허구적 기제가 바로 핵발전소인데, 기후변화의 생태 위기와 석유생산정점(peak oil)의 자원 위기에서 터져 나온 후쿠시마 사건은 의미심장하다. 화석 자본주의의 에너지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위험천만한 핵에너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고, 에너지 전환에는 체제 전환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또한 후쿠시마 사건이 터진 해에 열렸던 남아공 기후변화총회를 통해 분출한 것들은 다름 아닌 정치적인 것들이었다. ‘기후가 아니라 체제를 바꾸자! 기후가 아니라 정치를 바꾸자!’란 구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에너지와 기후가 체제와 정치와 접목된 것이다. 이런 집단적 의지에서 ‘녹색 정치’, ‘에너지 정치’ 그리고 ‘생명의 정치’가 부상했다. 그러나 생활세계가 영토의 경계를 넘어 핵에너지로 식민화된 일상에서 사건으로서의 핵발전소 사고는 인간이 만든 최악의 비극이었다.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는 그렇게 각인 된다.


리우+20에서 핵발전이 공식 의제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은 더 큰 비극이라 하겠다. 2011년 유엔총회 그리고 2012년 서울에서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핵의 평화적 이용’을 재확인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녹색 자본주의를 지향하거나 이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환경 단체들을 제외한 국제적, 지역적 녹색, 좌파 사회단체들은 리우+20에 반대하고 별도의 공간을 조직하고 있다. 비정부기구의 참여와 발언을 절차적으로 보장했던, 유엔과 선진국들이 관할하는 국제 환경 기구에 대한 거부(boycott)와 점령(occupy) 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3. 핵발전을 둘러싼 녹색 정치의 동학

핵발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극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특정 사건을 통해 핵발전이 축소·폐쇄되는 희극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가 핵발전의 소멸로 이어질지 낙관하기 힘들다. 시간이 지나자 핵발전 수요가 조용히 증가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이는 예상된 결과이기도 하다. 핵발전을 둘러싼 정치 공간들의 차이 때문인데, 31개 핵 발전국에서 나타나는 녹색 정치의 동학적 특징을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다.


첫째, 핵발전소 사고는 탈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 악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더라도 국내 정치과정에 따라 선택의 차이가 발생한다. 둘째, 정부 결정(정당 간 합의), 국민 투표, 법안 통안 등 다양한 전환의 수단이 동원되는데, 결정적인 동력은 탈핵 운동과 국민 여론이라는 집단 의지의 반영이다. 셋째, 녹색당의 역할이 적지 않으나(대표적으로 독일의 경우) 녹색당 없는 정당 체제가 탈핵 결정을 내린 사례도 많다. ‘원전 공화국’ 프랑스에서는 녹색당의 압박으로 사회당이 뒤늦게 핵발전 비중을 75%에서 50%로 낮추는 데 합의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넷째, 핵발전에서 전환 경로에 진입했더라도 국내외의 위기 사항이나 장애 요소가 발생하면 전환이 안정화·공고화되기 전에 전환의 성과가 유실될 수 있다. 또한 전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나 기존에 핵발전 의존도가 높은 경우, 그리고 핵발전의 고착화 수준이 심각해 전환 기간을 길게 설정할 경우에는 핵발전 경로로 회귀할 가능성마저 있다. 다섯째, 발전국가형 개발도상국은 사고 발생에 대한 우려보다 선진국이 밟아온 에너지 체제를 선호해 핵발전소 건설에 적극적이다. 인도, 중동과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들이 그러한데, 핵 산업 복합체의 마지막 보루이다.


이런 전환의 동학에서 특히 강조해야 할 부분이 있다. 녹색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적 주체는 녹색당이 아니라 녹색 운동이다. 꾸준히 이어진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직접행동들, 지역과 공동체 공간에서 지역 에너지 체제를 선도적으로 추진했던 대안적인 실험들, 긴장 관계 속에서 녹색 진영과 좌파 진영 사이에 유기적인 결합들과 같은 녹색 정치적 실천들이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이 조건이 충족되어야 외생적 사건과 무관하게 그리고 우파 및 찬핵 정권이 들어서서 정책을 뒤집으려 시도해도, 탈핵을 밀고 나가는 동력이 유지된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녹록하지 않다. ‘핵 카르텔’이나 ‘핵 마피아’로 일컫는 찬핵 세력들이 국내외적으로 파워 블록을 형성하고 있는 데다 핵에너지는 곧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유도하면서 국민을 효과적으로 핵에너지 체제에 포섭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시민을 에너지 소비자로 호명하는 다양한 기구들을 장악하고 세련된 기제들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핵에너지가 초래할지 모를 위험과 공포를 국가와 관련 당국이 관리한다는 데 있다. 핵발전의 유지·확대를 기획하는 정부가 핵의 위험을 소극적으로 인정하더라도, 노후 핵발전소 폐쇄나 수명 연장 금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설사 이 정도 수준의 선택을 용인하더라도, 추가로 단계적 폐쇄에까지 이르는 시나리오를 결코 제시하지 않는다. ‘탈핵·에너지 전환’의 프레임을 차단하기 위해서 ‘원전 안정성’ 프레임, 즉 공포와 위험을 관리하는 ‘기술적 해결책’으로 설정하고, 핵발전이라는 비정상 상태를 정상 상태인 양 광고한다. 불안 사회의 실질적 위험을 제거할 수 있음에도, 이를 통해 위험을 관리될 수 있는 것으로 변환하고 에너지 소비자들에게 분배한다. 또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가에 해가 된다는 논리를 편다. 이는 경제 위기 속에서 지배 계급이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공고화하는 데 현재의 위기들로 조성된 정치적·사회적·이데올로기적 조건들을 활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양태인 것이다.

 

4. 녹색당은 희망인가?

이 글의 제목에 녹색당을 넣고선 먼 길을 돌아왔지만, 이미 녹색당이 녹색 정치, 특히 탈핵에서 중요한 전환 요소라기보다 그중 하나이거나 전환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혔다. 녹색 정치라 하면 으레 녹색당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는 정당 민주주의가 발전한 서구, 특히 유럽 상황에 알게 모르게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1960년대 중후반 이후 유럽에서 나타난 사회경제적·정치사회적 변화로 인해 정당 정치를 중심으로 한 서구 민주주의가 변형되었다고 한다. 1920년대 좌-우 이념을 중심으로 편성된 정당 체제가 신사회운동과 ‘반(反)정당적 정당’의 출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지역에서 서서히 등장해 유럽 주요 국가에서 차별적으로 발전한 녹색당이 이런 변형의 대표작으로 주목받았다. 녹색당은 물질-탈 물질주의적 균열과 반핵 등 환경 운동의 성장에 힘입어 정당 민주주의에 편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정치적, 문화적 신좌파 세대가 정당에 대한 불신과 반감의 정서를 강하게 표출해 정당 정치의 위기의 표현으로 이해됐는데, 그 세대 일부는 녹색당이라는 정당 형식으로 복귀했다는 점이다.


물론 독일도 그랬고 대부분의 녹색당은 정당과 반 정당의 어딘가에 스스로를 규정하고 싶어 한다. 적어도 초기에는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이런 형태를 선호했다. 그런데 독일 녹색당은 더이상 ‘반 정당적 정당’이 아니다. ‘정당 체제에서의 대안세력’으로 변화했다. 1990년대 당내 근본주의 세력과 좌파 세력의 연이은 탈당 그리고 현실주의 세력의 당 장악이라는 내적 여건의 변화가 첫 번째 이유이고, 1980년대에 녹색당이 선점한 고유한 의제인 환경, 핵, 여성 문제에 대해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정당도 자신들의 의제로 삼았다는 데 두 번째 이유가 있다. 이런 평가는 녹색 정치에서의 녹색당의 위상을 파악하는데, 나아가 탈핵 정치에서 주체화가 어떻게 가능하는가라는 질문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에 더 검토해보기로 하자.


독일 녹색당 유럽의회 의원을 지낸 생태 사회주의자인 프리더 오토볼프(Friender Otto Wolf)가 회고한 대로 녹색(가치)과 좌파(가치)의 긴장 속의 동거로 탄생한 독일 녹색당 초기인 1980년대만 하더라도 긍정적인 분위기가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녹색당의 초기 흐름에는 “투쟁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줄 정당이 건설될 가능성 같은 요소들이 들어 있었고, 이런 요소들은 당시에 구축되고 있던 새로운 정치 진영에 대한 희망과 꿈을 만들어냈다. (중략) 그것은 노동자 계급의 잠재 능력과 보다 높은 수준의 급진 정치로 나아가려는 생태운동 및 여성운동을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정당을 건설하려는 일상의 투쟁으로부터 새로 생겨난 반자본주의의 씨앗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민당과의 적록연정(1998~2005) 시기의 1차 탈핵 결정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책임으로 녹색당은 분기점을 맞았다. 독일 내 사회 운동 속에서 이런 녹색당의 사례가 정당 정치 참여 반대의 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질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탈핵 등 생태 의제에 대해서는 녹색당이 낫지 않냐고. 전쟁 동참에 동의하고 반노동 정책에 동조하는 흐름이 녹색당의 자기 존재가 된다면, 이는 자기부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녹색당이 갈 길은 앞서 언급했던 잘 포장된 녹색 자본주의밖에 없다. 정작 문제는 녹색당이 정당의 구실을 제대로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망가졌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를 참여, 대표, 책임 등의 구성 요소로 보는 정당 민주주의 시각에서 볼 때, 정당은 사회적 균열의 제도화에 이상적이다. 정치 엘리트들의 사익 추구의 통로로 전락하지 않고,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입력과 출력의 회로가 매끄러워야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녹색당은 이런 정당 체제에 편입할 수밖에 없다. 어떤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정당은 정당이니까. 기존 정당들이 닦아놓은 포괄 정당, 선거전문가 정당, 카르텔 정당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미 강령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독일 녹색당이 내건 주요 가치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사민당과 기민당이라는 두 국민정당이 하락세를 보인 2010년과 2011년 주요 선거에서 녹색당이 재부상하고 해적당이 등장하면서 정당 체제의 재편성 단계로 진입했다. 후쿠시마라는 호조건에서 녹색당은 다시 정치 무대의 시험대에 섰지만, 선거 게임을 통해 집권을 하면 연방에서든 지방에서든 기존 정치 질서에서 주고받는 정치적 협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녹색당의 대안으로 다른 정당을 찾아볼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유럽의회에 유럽 통합 좌파-북유럽 녹색 좌파와 반자본주의 유럽 좌파가 속해 있는 정당들이 있다. 이들 정당은 구좌파와 달리 21세기 급진 좌파 모델로 신좌파 사상과 생태주의 이념을 결합하는 정당으로 인정받거나 생태 사회주의의 정당 모델과 친화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거 게임에 들어간 이상 녹색당처럼 제3당 노선을 취하거나 어쩌면 카르텔 정당 체제의 한 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녹색 좌파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독일 녹색당보다 건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5. 탈핵 주체와 진지전의 실험들

탈핵 주체를 정당으로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는 논리는 정당 자체의 부정이 아니다. 정당에 적절한 기능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적 구조의 힘의 우위에서 체제를 유지·재생산시켜왔다는 점, 정당이 특정한 정치적·법적 질서를 지키는 ‘치안 유지적인 기능’을 해왔다는 점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자본주의는 항상적으로 비자본주의, 탈자본주의, 반자본주의적 요소들을 품은 채 변화해왔다는 점, 정당은 “이미 인정받았으며 또한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또는 복합적 사회요소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역사적 관찰이다. ‘구성적 권력’에 도전하는 주체에겐 역사적 계기와 실천이 필요한데, 이는 ‘사건사적 국면’에서 출발하여 ‘분자적 국면’에서 구체화될 때 가능하다. 이는 어떤 사건이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것이 되지 않고, 핵발전소 사고를 안전 관리라는 행정적 업무로 치환해버리는 국가 기구와 에너지 체제에 ‘역동일시’하거나 그로부터 ‘탈정체화’하는 주체화 과정이라는 정치적 계기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배제되지 않은 사회적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녹색 혹은 진보 정당은 그 정치적 계기의 하나, 그것도 불안한 위치를 점하는 매개적 역할을 떠맡는다. ‘현대의 군주’인 정당과 사회가 분리될 수 없다는 그람시 주장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지라도 기각되어야 하고, 이와 반대로 철저한 분리에 의해서 출발해야 한다. 앙드레 고르(Andre Gorz)의 인식을 살짝 비틀어보자면, 타율성의 영역인 정당이 정치를 체제 안으로 가두는 기능을 축소시킴과 동시에 저항, 투쟁, 대안의 공안을 확장에 자율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그런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당은 자율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공적 정치 제도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핵에너지 해체에 이런 공적 정치의 장치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 진보정당은 지역 플랫폼이나 네트워크로 적지 않은 자율적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이런 자율적 실험들은 이어지고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정당은 도움을 주는 기능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의 실천으로서 지역 경제는 대표적으로 스페인 몬드라곤과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로 대표되는 협동조합과 그 네트워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 차원에서 복지, 노동 분야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생산과 소비 영역의 협동조합은 에너지로 확장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지역 만들기’나 ‘생태사회적 지역발전 모델’로 불리기도 하는 독일 윈데 바이오에너지 마을의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전환 마을(transition town)이 각광받고 있는데, 석유생산정점(peak oil)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지역 운동으로 2005년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시작해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 칠레 등지에 100개 이상의 공동체가 동참하고 있다. 이 마을들은 화석연료와 핵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충족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더 즐겁고 충만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문화적·경제적·정치적, 윤리적 차원에서 진지전 형태를 추구한다. 이런 실험이 단지 사회와의 단절만을 추구하는 고립된 형태라면 이렇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 타 국가로 확산되는 것을 보면, 소통과 공유 나아가 사회적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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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실천이 개인적이거나 소규모 공동체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도 당장에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유럽, 북미, 호주 등지에서 다운시프트족(downshifters)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개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 능력을 보유했다. 이들은 상업적 문화에서 벗어나 소박한 삶, 자기 계발, 공동체 활동에서 행복을 찾는다. 상업문화에서 탈피해 노동과 소비를 덜 하면서 자발적으로 단순하게 살아간다. 아직까지는 개인적 혹은 작은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서 정치적·문화적 영역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급진 운동과 정치로 바꿀 여지는 충분하다. 기본적 필요가 충족된 후의 경제 성장 전략은 인간 행복과 복지 향상에 기여하기보다 낭비적·파괴적 속성을 드러낸다. 사회에서는 재분배적 주장과 함께 자치적 시공간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그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된다. 케인스 역시 경제 성장 이후에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주 15시간이 임금노동의 합리적인 장기적 목표로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율적 삶과 자율 노동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치 구조의 변화가 필요한데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은 이를 축소이행의 정치(political downshifting)이라 부른다. 전환 마을이 이런 녹색 정치를 예증할 잠재력이 있고, 나아가 이런 다양한 에너지들(energies)은 대문자 에너지(Energy)와 불화를 겪으면서 급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정당 체제 혹은 정당 민주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녹색 정치의 바람직한 위상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런 사례들과 함께 기존 환경 운동의 역할도 재구성될 필요가 있으나 이 작업은 지면 관계상 차후로 미루겠다. 단, 노동자계급의 의식과 행동 변화를 눈여겨봐야 한다. 노동자계급을 선험적으로 단일한 정치 주체로 상정하는 습관을 버려야 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탈핵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가정도 불필요하다. 다시 독일로 가보자. 탈핵 흐름은 환경 단체의 주도하에 시작됐지만 점차 경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저항 의식을 갖게 된 노동자들의 참여가 이뤄져왔다. 이 과정은 정당간 적록연정 이상의 성과를 발휘한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동맹의 역사로 이어졌다. 후쿠시마 사건 직후 타오른 탈핵 집회에서 독일노총(DGB)과 금속과 공공 등 일부 산별노조가 주도적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6. 한국 녹색 정치의 미래

이제 끝자락에 왔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녹색당의 존재 이유를 들자면, 단연코 탈핵일 것이다. 현실의 벽을 실감했겠지만, 약 7만 명이 녹색당을 지지했다. 탈핵을 전면에 내걸었고, 탈토건과 생명 중심의 녹색당의 존재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독일이나 유럽과 다르다. 탈핵 균열이 정당 체제에 반영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갑작스러운 녹색당의 출현과 무관하게 진보정당과 야권연대도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핵 의제를 건드렸다. 이처럼 유럽의 정당사가 갑자기 압축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녹색당은 정당 체제에 안착하기 전에는 초기의 반정당적 정당으로 그 효용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탈핵 이상으로 관심이 가는 정책적 계기를 기본 소득(basic income)에서 찾고 싶다. 국내에서도 최근 여러 논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진보신당과 녹색당이 기본 소득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사회적 관심은 높지 않았다. 아직까지 대체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수단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해밀턴이 이행의 정치에 유효한 수단을 기본 소득에서 찾는 것과 같은 논리다. 오랜 역사를 갖는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부터 활발해진 생태주의 사상과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생태 위기 해결을 위해 경제성장 기반의 산업과 복지 체계를 뛰어넘고자 생태주의적 기본 소득 사상이 확산되었다. 특히 1970, 80년대 반핵 투쟁을 주장하던 생태운동 진영은 노동자계급이 제기한 일자리 위협론이나 실업론에 대한 대안적 형태로 촉발되었다. 여러 나라의 녹색당에서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당 정체성으로 정식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1990년대 이후 기본 소득의 쟁점이 ‘경제성장 촉진효과’가 되면서, 기본 소득 논의에서 생태적 접근은 부차적인 위치로 내려앉는다. 현재는 유럽 좌파당과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등을 중심으로 기본 소득이 체계적으로 논의되면서, 기본 소득의 구체적인 정책 설계뿐 아니라 반생태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안되고 있다. 사민당의 완전고용 방식과 대립적인 측면이 존재하는데, 기본 소득과 생태사회와의 상관성으로 인해 개인의 생태적 노동과 참여가 촉진되어 생활, 문화, 경제 전반에서 생태 친화적 재구성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기본 소득이 시장을 매개로 하는 반생태적 생산과 소비로부터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에 필요한 것으로 보고, 노동사회에서 (생태)문화사회의 선순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제 녹색당의 미래는 탈핵과 함께 기본 소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서 크게 세 가지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첫째, 후쿠시마 사고를 비롯한 지구적인 복합 위기에서 녹색-좌파는 녹색 자본주의에 안주하지 않고 생태사회주의적 지향성을 밝혀야 한다. 둘째, 탈핵의 전환 과정에서 사회운동의 역량과 저항적 형식이 결정적이었고, 정당과 국가 기구의 선택(의 지속)은 그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이다. 셋째, 한국의 녹색당은 정당 체제에 안주하기 전에는 탈핵과 기본 소득에서 녹색 정치의 미래를 밝히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은 녹색당이 아니라 녹색 정치에서 시작된다.

 

 


이정필

1977년생.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전 민주노동당 당직자, 진보신당, 녹색당을 거친 당원. 공저 「착한 에너지 기행」, 「탈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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