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아카이브 — MISI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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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미시아카이브 · 001 · 2026

광장시장,
120년의 기억

행ってください — 젠트리피케이션이 지운 시장 속 카페의 마지막 기록

역사 · HISTORY

시장이 기억하는 것들,
카페가 기억하는 사람들

1905년, 대한제국 말기. 일본인들이 남대문시장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종로까지 상권을 넓히자, 위기를 느낀 조선인 상인들이 직접 자본금 7만 8000원을 모아 '광장주식회사'를 세웠다.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 청계천변, 배오개(梨峴)에 들어선 이 시장이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설 상설시장 — 광장시장의 시작이다. 설립 발기인 중에는 훗날 두산그룹을 창업하게 되는 포목상 박승직도 있었다.

'광장(廣長)'이라는 이름은 원래 광교(너른다리)에서 장교(긴다리) 사이를 복개해 시장을 만들려 한 데서 왔다. 큰비에 자재가 유실되어 계획이 바뀌었지만, 발음은 그대로 유지한 채 '널리 모아 간직하다'는 뜻의 '廣藏'으로 한자를 바꾸었다. 이름에 이미 120년의 우여곡절이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광장시장은 조선인 상인들이 경영권을 유지했다. 한국전쟁 때 목조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1954년 콘크리트로 재건했다. 피난민들이 생필품과 군수품을 거래하며 시장은 다시 살아났고, 이것이 한국 수입 구제 시장의 시초가 되었다. 1970년대에는 포목과 한복으로 전성기를 누렸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빈대떡·육회비빔밥·마약김밥의 먹자골목이 전국적 명소로 떠올랐다.

2013년, 그 시장 한쪽 18평 공간에 작은 카페가 문을 열었다. 커피스토리. 월세 360만원. 사장님 한송희 씨는 특별한 것을 시작했다 — 손님이 원하면 폴라로이드를 찍어 벽에 걸어주었다. 처음에는 몇 장이었다. 1년이 지나자 수십 장, 5년이 지나자 수백 장이 되었다.

오사카에서 신혼여행을 온 부부가 매년 결혼기념일에 다시 찾아왔다. 종로에서 매일 오시는 80대 어르신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오후 내내 앉아 계셨다. 대만에서 배낭여행을 온 청년은 사장님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에 올 때마다 이곳을 첫 번째 목적지로 삼았다. 명절에 혼자 가게를 열었더니 가족 단위 손님이 찾아와 사진을 찍어달라 했다. 그 가족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왔다.

사장님의 아들이 군대에서 건빵을 부숴 우유에 타 먹었다는 이야기에서 '광장시장 빙수'가 탄생했다. 망치로 건빵을 꽝꽝 다져 만든 빙수. 여름이면 줄이 섰다. 120년 역사의 시장에 13년 된 카페가 자기만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었다.

코로나가 왔다. 전 세계에서 몰려들던 관광객이 사라졌다. 저녁 장사가 끊겼다. 구제시장을 찾던 젊은이들은 동대문 쪽으로 빠졌다. 사장님은 혼자 카페를 지켰다. 낮 장사만으로 360만원이었던 월세 — 이제 부가세 별도로 560만원 — 를 감당하며.

광장시장 입구광장시장 수입구제 — 한민족 100년 전통
1905광장시장 창설. 대한제국 상인들이 일본 경제 침략에 맞서 공동 출자한 민족시장.
1950한국전쟁. 건물 소실 후 콘크리트로 재건. 피난민들의 생필품 거래로 시장 부활.
1970s직물·의류 시장 전성기. 포목과 한복으로 서울 상업의 중심.
2000s먹자골목 전성기. 빈대떡·육회·마약김밥으로 전국적 명소화. 외국인 관광객 급증.
2013커피스토리 입점. 월세 360만원. 사장님이 손님 폴라로이드를 벽에 걸어주기 시작.
2015~한류·넷플릭스 효과로 외국인 관광객 폭증. 손님 중 70%가 외국인. 벽의 폴라로이드가 수백 장으로.
2020코로나19. 관광객 실종, 저녁 장사 중단. 사장님 혼자 가게를 지킨다. 임대료 60만원 인상.
2023광장시장 바가지·불친절 논란. 점포 16% 증가 but 고객 15% 감소. 관광 젠트리피케이션 가속.
2024건물주 교체. 임대료 700만원 요구. 2~4층 전체 공실. 커피스토리 폐업 결정. 권리금 포기.
커피스토리 외관커피스토리 — 광장시장 1동
기억의 벽 · WALL OF MEMORIES

이 사진들에는 사연이 있다

벽에 가득한 폴라로이드 수백 장이 13년의 증인이다. 매해 찾아왔던 사람들의 사진이 보존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폴라로이드 #1
야마다 유키
오사카, 일본 · 2015~
신혼여행 때 처음 왔어요. 매년 결혼기념일에 서울에 와서 꼭 이 카페에 들렀어요. 올해도 오려 했는데...
김순옥 할머니
종로구 · 2013~
개업 첫 날부터 온 손님이에요. 매일 아침 아메리카노 한 잔. 13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오셨어요.
폴라로이드 #2
왕웨이
타이베이, 대만 · 2018~
혼자 배낭여행 왔는데 사장님이 따뜻한 차 한 잔 내주셨어요. 그 뒤로 서울 올 때마다 여기가 첫 번째 목적지.
이정현 가족
수원 · 2016~
명절에 아이 둘 데리고 왔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또 왔어요. 아이들이 빙수를 너무 좋아해서.
폴라로이드 #3
사라 존슨
시카고, 미국 · 2019~
여행 블로그에 '서울에서 가장 따뜻한 카페'라고 썼어요. 폴라로이드가 200개 넘게 달렸을 때.
박영수 어르신
동대문구 · 2014~
매주 목요일 바둑 모임 끝나고 네 명이서 왔어요. 아메리카노 넷에 케이크 하나. 10년을 그랬어요.
폴라로이드 #4
하나코·미유
도쿄, 일본 · 2017~
대학 졸업여행으로 왔어요. 갓난아기였던 딸을 데리고 다시 올 거였는데, 문 닫는다는 소식에 눈물이...
최동호 사장님
광장시장 2층 포목점 · 2013~
같은 건물이라 매일 커피 사러 내려왔어요. 코로나 때 서로 버텨보자고 했는데, 결국 나도 나가고...
폴라로이드 #5
린 시아오밍
상하이, 중국 · 2019~
K-드라마에서 광장시장 봤어요. 카페 벽에 사진이 수백 장이라 감동받았어요. 우리 사진도 거기 있을까요?
정미영 선생님
마포구 · 2015~
한 달에 한 번 독서 모임을 여기서 했어요. 8년. 사장님이 항상 자리를 비워두셨어요.
폴라로이드 #6
알렉스 뮐러
베를린, 독일 · 2018~
한국어 공부하러 서울 왔을 때 사장님이 한국어 연습 상대가 돼주셨어요. 건빵 빙수도 여기서 처음 먹었어요.
김태희 대학생
신촌 · 2020~
코로나 때 카페가 다 문 닫았는데 여기만 열었어요. 논문 쓰면서 매일 왔어요. 사장님 혼자 계셨는데...
폴라로이드 #7
폴라로이드 #8
폴라로이드 #9
폴라로이드 #10
폴라로이드 #11
폴라로이드 #12
폴라로이드 #13
폴라로이드 #14
폴라로이드 #15
폴라로이드 #16
폴라로이드 #17
폴라로이드 #18
폴라로이드 #19
폴라로이드 #20
폴라로이드 #21
폴라로이드 #22
폴라로이드 #23
폴라로이드 #24
인터뷰 · INTERVIEW

버텨온 사람의 말

커피스토리 대표 한송희 인터뷰 · 2024년 10월 · 10분 38초

사장님

"그때 360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현재 부가세 별도로 560 내고 있어요. 처음에는 700 요구했어요."

— 임대료 변화에 대해

"명절날 혼자 문을 열었는데 가족들이 오셨어요. 너무 좋다고 사진도 찍어달라고 해서, 그다음 날도 또 오시고, 그다음 날도 또 오셨어요."

— 기억에 남는 손님

"광장시장 빙수는 아들이 군대에서 건빵을 부셔서 우유에 타 먹었는데 맛있었다는 얘기 참고해서 만든 거예요."

— 광장시장 빙수의 탄생
젠트리피케이션 · GENTRIFICATION

임대료가 기억을 지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낙후된 지역이 개발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래 그 장소를 만든 사람들이 떠나게 되는 현상이다. 1964년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런던의 도시 변화를 설명하며 처음 사용한 용어로, 국립국어원은 '둥지 내몰림'이라 번역했다.

한국에서는 홍대·경리단길·성수동·가로수길이 대표적 사례다.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상권이 뜨고, 유명해지면 대자본이 밀려오고, 임대료가 치솟고, 결국 그 장소를 만든 사람들이 떠난다. 경리단길 공실률은 4년 만에 8.9%에서 26.4%로, 가로수길은 2024년 39.4%에 달한다.

광장시장은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특수한 형태를 겪고 있다. 120년 역사의 전통시장이 한류·넷플릭스로 관광 명소가 되면서, 노점 자릿세가 테이블 한 개에 월 70~80만원까지 치솟았다. 내국인 고객은 바가지와 불친절에 떠나고, 관광객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시장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커피스토리에는 이 구조가 더 직접적으로 작동했다. 새 건물주가 건물을 매입하면서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임대료를 대폭 인상 — 이것은 도시사회학에서 말하는 '지대격차(rent gap)' 이론의 전형이다. 장소의 가치를 만들어온 사람(임차인)과 그 가치의 경제적 과실을 가져가는 사람(건물주)이 분리된 구조적 문제다.

커피스토리 임대료 추이 (만원/월, 부가세 별도)
360만원
2013 입점
560만원
2024 현재
700만원
2025 요구액
* 요구액: 새 건물주 최초 제시액. 이후 600만원으로 하향.
0%
광장시장 외국인 손님 비율
상인 체감 기준
0%
광장시장 점포 증가
2019→2021 통계청
0%
광장시장 고객 수 감소
같은 기간 평균
0%
가로수길 공실률
2024년 기준
0%
서울 상가 경매 증가
2024 vs 2023
0%
권리금 미회수율
피해 자영업자 기준

2019년 대비 2021년, 광장시장 점포 수는 16% 증가했지만 평균 고객 수는 15% 감소. 점포가 늘었는데 손님이 줄었다 — 내국인 이탈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구조 · STRUCTURE

권리금을 받지 못한 채로

건물주가 바뀌었다. 새 건물주는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건물을 매입했다. 2·3·4층이 비워졌고 임대료가 대폭 인상됐다. 위층은 건물주 교체 후 1년째 비어 있다. 18평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을 300만원에 들어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카페, 약국, 편의점만 허용. 식당은 불 사용 때문에 불가. 담배권이 안 나와 편의점도 불가. 사실상 카페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데 카페로는 600만원의 월세를 감당할 수 없다.

"자영업자 요새 너무너무 힘들어요. 코로나까지 견뎠는데 그건 돈 꼴아박고 몸으로 고생했다는 얘기거든요.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나가기까지 마음먹었을 때 오죽했겠습니까? 서로 상생해야 되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아요."
— 커피스토리 대표 한송희 · 마지막 인터뷰
"사람 건강이... 나 죽은 다음에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광장시장 야시장광장시장 먹자골목 —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장
行ってください

왜 일본어였을까

커피스토리에는 일본인 손님이 유독 많았다. 코로나 이전에는 주말마다 오사카, 도쿄, 후쿠오카에서 온 여행자들이 줄을 섰다. 사장님은 그들에게 폴라로이드를 찍어주고, 벽에 걸어주었다.

어느 날 한 일본인 단골이 떠나며 말했다. "行ってください" — 가세요, 잘 가세요. 일본어로 작별을 고하는 이 한마디가 사장님의 마음에 남았다.

폐업 안내문 맨 아래에 사장님은 직접 이 문구를 적었다. 13년간 찾아와 주었던 모든 외국인 손님들에게, 그리고 이제 이 공간을 떠나야 하는 자신에게 보내는 인사.

行ってください — 가세요, 잘 가세요.

작별 편지작별 편지 · 2024년 12월 22일

"13년간의 추억을 뒤로하고 12월 22일로 커피스토리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13년간 찾아와 주신 고객님들 너무 감사했습니다. 힘든 코로나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하였지만, 어려운 경기와 오르는 월세 등등을 감당하기 너무 어려워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 사장 한송희 올림

行ってください가세요 — 잘 가세요커피스토리광장시장 1동 · 2013 — 2025

120년 된 시장 한쪽에, 13년간 자리를 지켰다. 벽에 붙은 폴라로이드 수백 장이 그 시간의 증인이다.

임대료가 오르는 속도와, 사람이 떠나는 속도와, 공실이 늘어가는 속도를 우리는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