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비평의 방향성
1. 들어가며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와 비평의 기능부전
2000년대 중 · 후반 국내에 소개된 후, 20년도 지나지 않아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digital media platform, 이하 '플랫폼'))은 기존 미디어 산업을 재편하는 키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 포털 서비스(이하 ‘포털’)는 검색, 메일, 커뮤니티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언론사별 뉴스를 실시간으로 한 데 모아 확인할 수 있는 가판대 역할을 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는 단순하게는 일기장부터, 메모, 편지, 전화 등의 기능 일부를 대체할 뿐 아니라,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비즈니스를 진행하 는 데까지 나아간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ver thetop, 이하 'OTT')의 성장은 기존 유료방송 가입자의 이탈, 이른바 코드 커팅(cord cutting)으로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어리거나 젊은 이용자층을 중심으로 애초에 유료방송을 경험하지 않고 유튜브 등의 OTT를 즐기는 코드 제로(cord zero) 현상까지 확대되는 중이다. 이처럼 플랫폼은 기존 미디어를 대체하고 확장한다.
플랫폼의 영향력은 산업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플랫폼은 일상 속에서 향유된다. 구글,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이 말 그대로 인터넷 이용의 모든 부분에 있어 '입구'가 되었음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카카오톡, 라인 같은 폐쇄형 SNS는 우리 일상 소통의 중심이 된 지 오래이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개방형 SNS는 디지털 시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OTT 이용의 확장세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2019년 5월 기준 유튜브의 국내 월 이용자 수는 3,272만 명에 달한다. 월 이용시간은 414억 분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이하 '앱') 전체 이용시간의 88%에 해당한다. 2) 이 수치가 모바일만을 통해 조사한 결과임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실제로 유튜브를 이용하는 사람 수와 이용시간은 훨씬 많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넷플릭스 국내 유료 이용자 수 또한 2019년 7월 기준 184만명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2018년 6월(63만 명)에 비해 무려 3배가 증가한 수치다. 3) 지난 20여 년 동안 플랫폼이 어떻게 산업적 성장과 함께 우리 일상속에 깊숙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술들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처럼 플랫폼의 영향력이 점증하고 있음에도 불구/콘텐츠 연구 분야에서 플랫폼 논의는 풍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의 논의를 거칠게 산업적 관점과 비판적 관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산업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플랫폼은 그 어떤 다른 서비스들보다도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는 비즈니스이자 조직모델4)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플랫폼을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 또한 존재한다. 이에 따르면 플랫폼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드는 기반으로, 앞에서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통해 둘 이상의 개인이나 그룹을 다면적으로 상호중개해 그들의 성취욕을 후견하면서, 뒤에서는 이용자 활동과 비/물질 자원을 흡수해 자본가치화하는 신종 시장모델이다. 5) 전자의 관점에서 플랫폼이 벤치마킹해야 할 산업적 지향점이라면, 후자에서는 비판과 해체를 통해 이용자 활동의 의미를 되찾아야 할 무언가가 된다. 이처럼 플랫폼에 대한 관점은 양가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 좋은지 나쁜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사회와 일상에서 부정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플랫폼은 우리 일상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시간을 플랫폼에 투자한다. 더욱이, 기존 논의들은 플랫폼의 공세를 현상으로서만 말할 뿐, 그것의 구체적인 실체와 개별 서비스를 하나의 텍스트로 이해하고 살피지 않는다. 관련하여 프라이(Northrop Frye)는 특정 대상의 가치를 밝혀내 알리고 그 위상을 굳건히다지는 일이 '비평'(criticism)의 주된 기능)이라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앞서 밝힌 문제들은 플랫폼 비평의 기능부전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비평이 우리 삶에서 플랫폼이 무엇이고, 플랫폼에 대해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반응해 왔으며, 플랫폼을 이용하는 행위가 갖는 의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널리 그리고 분명히 알리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 글은 플랫폼 비평이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럼에도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떤 방향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적 의미의 비평이란 무엇이며 어떤 요소와 조건을 필요로 하는지 살핀다. 둘째, 플랫폼의 속성을 통해 플랫폼 비평이 처해 있는 맥락과 상황들을 드러낸다. 셋째, 플랫폼 비평의 활성화를 위해 비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한다.
2. 비평의 정의, 요소, 조건7)
'플랫폼 비평'이 플랫폼의 가치를 분석·평가하는 작업이라 한다면, 이때 '비평'은 기존의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의 비평에서 사용해왔던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각 비평들이 그렇듯 플랫폼 비평 역시 다른 비평들과 구분될 수밖에 없다. 비평의 대상과 조건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플랫폼 비평의 조건을 살피기 위해서는 비평의 일반조건과, 플랫폼의 변별적 특성을 반영한 조건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같은 플랫폼이라 해도 세부 서비스에 따라 변별성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또, 비평의 조건은 고유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평대상의 형질변화와 비평에 요구되는 역할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비평가에 따라 비평의 조건이나 역할, (개별) 플랫폼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플랫폼 비평의 가능성을 점치기 위해서는 그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 가능한 지점들을 모색하는 일이 요구된다. 이에 다소 느슨하나 비평일반을 포함할 수 있는 조건들을 먼저 살피고, 다음으로 플랫폼 비평의 조건과 방향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다.
비평의 요소는 비평주체(비평가), 비평대상(넓은 의미의 작품), 창작주체(제작자/창작자/작가), 수용주체(향유자/이용자/독자)로 구분된다. 창작주체에게는 창작에 피드백을 주고, 수용주체에게는 수용 선택여부나 수용방법 등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비평이다. 비평주체는 비평을 통해 비평대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인할 기회를 얻는다. 비평주체/대상, 창작/수용주체가 비평의 기본요소들이라면, 비평의 조건으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비평은 감상문 수준을 넘어서야 하며, 그러기 위해 체계를 갖춰야 한다. 둘째, 비평가에 대한 공인절차가 요구된다. 셋째, 전문학술지, 일간지, 잡지, 웹진 등 비평이 발표될 공간이 필요하다. 이 공간은 비평활동의 안정성보장과 동시에 신뢰성을 가져야 한다. 8) 세 조건은 비평의 전문성, 안정성, 지속성을 나타낸다. 종합하자면, 비평이란 '비평주체가 신뢰할 만한 공간에, 비평대상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후 평가를 내리는 전문적인 작업'이라 하겠다.
비평의 힘은 대상이 지닌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열어주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닌 사회적 함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가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플랫폼 비평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그것이 주는 편리함이나 즐거움, 산업적 성과 등을 논의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과 플랫폼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그것을 통해 일상의 변화와 시대 흐름까지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비평은 비평대상의 성취를 읽어내고, 그 읽기를 통해 생생한 인식을사회로 확산하는 작업이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들이 요구된다.먼저, 플랫폼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토론을 위한 비판적 풍토를 조성한다. 다음으로, 플랫폼과 플랫폼 비평을 지지하고 체계화한다. 마지막으로, 개인 또는사회의 플랫폼 이용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비판적 도구 · 해석 · 평가를 제시한다.
물론 상기 내용은 비평의 일반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조건으로, 실제와는거리가 존재한다. 기존 미디어(영화, 방송,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경우,(세부 장르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고 잘 이뤄지고 있는지는 차치하고) 이미비평이 하나의 제도로 형성돼 있다. 다양한 텍스트를 경험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비평적 풍토는, 해당 미디어의 사회적 가치를드러내고 그것의 방향을 제시한다. 물론 그 비평(들)이 대상과 비평을 둘러싼주체들에게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작용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대상을 불문하고비평이 처한 위기가 꽤 오래 전부터 논의되고 있다. 지나친 상업주의, 권력화된제도와 전문지 시스템, 산업의 부침, 해설 및 주례사비평 등이 주된 이슈들이다.더불어 해당 장 내에서의 소통구조를 살핌과 동시에 장의 바깥, 즉 사회적 공론영역과 비평 간 소통이 원활했는지, 비평이 사회적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해왔는지 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플랫폼 비평이 당면한 상황과 꽤 거리가 있다. 개별 서비스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플랫폼 비평은 대체로 형성이 돼 있지 않거나, 형성돼있다 해도 기존 미디어에서처럼 제도화된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물론 모든비평이 특정 형태를 이루고 제도화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비평은 유연하면서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비평대상과 사회 사이에 위치한 것이 비평이라면,그것은 대상의 변화 그리고 사회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하는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플랫폼 개념도 계속 재구성된다. 플랫폼이 현재 미디어 환경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면, 시대 현실의 변화는 플랫폼 개념 변화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플랫폼과 플랫폼 아닌 것의 경계 설정, 플랫폼 내에서의 경계 설정 역시 갈수록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플랫폼에 속하던 특정 서비스가 시 · 공간을 불문하고 어디서나 계속 플랫폼에 속하는 것도 아니며, 플랫폼이 아닌 서비스도 특정 맥락 하에서 얼마든지 플랫폼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별 플랫폼의 특질 또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이에 다음에서는 플랫폼이 가져온 비평에 대한 변화의 고리들 속에서, 플랫폼 비평을 위한 조건을 논의한다.
3. 플랫폼의 특징들
1) 기술 기반의 엔터테인먼트사
플랫폼사는 여러 사업자들의 정보나 콘텐츠를 모아 제공할 뿐, 정보/콘텐츠 회사가 아니다. 네이버가 직접 취재해 작성한 기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유튜브도 텔레비전이 아니며, 직접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지도 않는다.)기본적으로 플랫폼사는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technologies, 이하 'ICT)에 기반한다. 전체 직원 중 큰 비중을 엔지니어들이 차지한다. 이용자에게 편안한 콘텐츠 이용환경을 마련해주는 일이 대부분의 플랫폼사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넷플릭스의 경우 어댑티브 스트리밍 (adaptive streaming: 디바이스와 인터넷의 데이터 속도에 맞게 적절한 화질로 자동 최적화해주는 머신러닝 결합 기술)이나 오픈 커넥트 서버(openconnect server: 콘텐츠를 30가지 전송 품질로 인코딩해 이용자 네트워크 환경에 맞게 제공하는 기술)를 통해 이용자에게 고화질의 영상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기술만 지닌 회사라고도 보긴 어렵다. 서두에서 간단히 살폈듯, 플랫폼사들은 기존 미디어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미디어/콘텐츠/산업도 변화하고 있다. 또, 드물지만 정보나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경우도 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NHN엔터테인먼트 역시 타사게임뿐 아니라 자사게임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렇게 플랫폼사가 직접 만든 콘텐츠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처럼) 종종 기존 사업자의 그것을 넘어서는 양적·질적 성취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오리지널 콘텐츠'라는 표현은 플랫폼사로 인해 새롭게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콘텐츠들이 플랫폼 입장에서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니지만,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오리지널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사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역으로 플랫폼사가 본질적으로는 직접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존재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플랫폼이 기술 기반의 사업자라는 부분은, 기술이 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정보도 콘텐츠도 아닌 '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는 국경도 국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플랫폼은 사이버스페이스에 비즈니스 영역을 두고, 공간의 제한 없이 활동영역을 확장해간다. 그렇게 사이버스페이스와 글로벌 자본주의가 합해진 결과가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들은 글로벌 시장을 통해 사회를 바꾼다는 것에 크게 의문을 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계를 바꾸기 위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필요도, 민주주의 게임에서 이길 필요도 없다. 초국적 시장에 편안한 기술 기반으로 훌륭한 서비스를 투입하면 세상이 자동적으로 변해갈 수 있다고 그들은 믿는 듯하다. 10)
그 믿음이 어디까지 맞아 떨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 시점에서 (적어도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큰 축 중 하나가 플랫폼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공간을 막론하고 플랫폼은 산업적 영향력을 확장 중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일환이라는 점 외에, 많은 플랫폼들이 스스로를 미디어가 아닌) ICT 기업으로 규정함으로써 전통적 미디어들에 부과되던 공공성에 대한 요구나 규제를 피하려 하는 측면이 있음)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플랫폼을 단순히 ICT 기업으로 설명할 경우의 문제점은 분명하다. 플랫폼의 개방성, 접근성, 중립성 등과 같은 기술적 양식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면죄부로 남용될 우려가 있다. 12) 이에 대해 질레스피 (Tarleton Gillespie)는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들이 기술적 양식을 핑계로 이중성을 드러낸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서비스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상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3)
플랫폼이 스스로를 ICT 기업으로 규정할 때, 그 내부 알고리즘은 미디어의 사회·문화적 기술이 아닌, 가치중립적인 테크놀로지로 받아들여지는 효과를 낳는다. 구글이 오픈 웹(open web)에 투자하거나 페이스북이 고유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은, 마치 정보의 내용과는 무관한 네트워크 정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보/콘텐츠 생산과 가치 구현을 알고리즘의 판단에 맡겨 버림으로써 우리 일상과 사회에서 미디어가 수행해야 하는 여러 역할을 방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즉, 플랫폼의 기술 양식은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해당 콘텐츠를 기존 미디어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파하고 유통한다는 점에서 미디어 환경 전반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14)
2) 데이터 사용: 이용자의 데이터베이스화
기술 기반 엔터테인먼트사로서 플랫폼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이용자의 '데이터'를 플랫폼 구축 운영 전반에 활용한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개인정보, 쿠키, 메타데이터, 전자추적정치, 그리고 여타 트래킹 기술에 기반해 기존 미디어와 차별화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데이터다.15) 플랫폼이 이용자 데이터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사업영역은 콘텐츠 선별/제작,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에 대한 추천이다.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이에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하는 대신 활용했던 것은 이용자 데이터다. 이용자별로 다른 비정형화된 시청횟수, 피드백 등을 종합 평가해 콘텐츠 제작자와의 협상카드로써먹었다. 표준화되거나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이용지표를 통해 협상력을 강화한 것이다. 콘텐츠 수가 절대적으로 많을 수 없는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콘텐츠 이용률 예측 프로그램을 통해 콘텐츠 구매 예산을 최적화했다. 그리고 데이터에 자신이 붙은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에도 데이터를 활용한다. 오리지널 콘텐츠에 주목하던 넷플릭스가 시청자 성향과 반응 데이터를 분석해 <하우스 오브 카드>를 제작한 것은 너무도 유명한 사례다. '이용자 데이터(에) 기반(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성공이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일종의 성공신화로 받아들여지면서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들 사이에서는 데이터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추천은 데이터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또 하나의 사업영역이다. 플랫폼은 이용자가 선호하는 장르, 스토리, 시청패턴 등을 고려해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추천한다. 반복시청, 유사장르 감상이력, 시청시간대 등 다양한 시청패턴을 분석하고, 동시에 마음에 드는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는 이용자의 취향까지 고려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이용자가 콜롬비아 마약왕 이야기를 다룬 <나르코스(Narcos)〉 시리즈를 시청했다면, 추천영상으로 유사 장르나 소재의 드라마·영화·다큐멘터리들이 뜬다. '불굴의 투혼', '어두운 분위기', '긴장감'과 같이 해당 콘텐츠의 주제나 콘텐츠가 유발하는 감정들을 정리한 태그가 달리고, 해당 태그를 키워드 삼아 유사 콘텐츠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용자의 시청이력을 바탕으로 넷플릭스는 태그를 조합해 끊임없이 추천을 한다. 이러한 추천은 이용자들의 취향을 구성하고 추가 시청을 유도한다.
물론 추천 서비스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존의 많은 미디어들이 추천 서비스를 포함해왔다. 전문가(큐레이터)를 등장시켜 특정 콘텐츠를 보고듣게 하거나,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콘텐츠, 광고 · 협찬 의뢰받은 콘텐츠 등을 추천하는 식이었다. 대부분 이미 제공자에 의해 사전에 정해져 이용자에게 제시됐다. 이용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분히 일방적인 추천에 응하거나 응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플랫폼은 이용자 데이터(선호도를 추정할 수 있는 웹 로그 정보, 성별, 나이, 성격, 취향, 기분, 이용패턴 등) 분석에 기반해 이용자에게 콘텐츠 추천을 한다. 물론 대부분의 플랫폼이 여전히 기존의 추천방식 또한 유지한다. 그에 더해 새로운 추천방식(이용자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추천)을 선보이는 것인데, 이 새로운 추천방식이 플랫폼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기존의 추천방식은 이용자들의 콘텐츠 선호를 염두에 둔 상태에서 전문가가 자신의 가치관, 지식, 선호를 담았다. 하지만 이러한 전문가는 플랫폼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로 보인다. 전문가의 자리는 이용자 데이터가 대체한다.
하지만 데이터는 이용자가 아니다. 이용자의 실제 이용행위가 반영된 것이라고는 해도, 그 행위가 실제 이용자의 이용 동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용자가 이용을 하면서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졌는지, 그 이용이 이용자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에 대해 데이터는 설명해주지 못한다. 플랫폼 이용자들은 전통적 의미의 개성을 지닌 미디어/메시지 해석주체라기보다는, 수만 분의 1, 수십만 분의 1로 분할 가능한 알고리즘 분석의 대상체에 불과하다. 기계에 의해 세분화된 취향의 분류틀 아래 자족하는 데이터 소비주체로서만 유효하다. 오로지 알고리즘에 의해 양적으로 계산된 이용습관과 잘게 쪼개진 취향의 가입자, 즉 데이터베이스화된 개인이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전통적인 미디어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 플랫폼은 전산학적 알고리즘 계산을 통해 콘텐츠를 제시하는 데이터 자동기계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16)
3) 취향의 재구성: 내 것 아닌 내 취향
플랫폼이 일종의 자동화된 포획장치라는 사실은, 플랫폼의 이용자 추천이 이용자의 데이터에 기반하는 것임에도 실제 이용자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하지는 않을 수 있음과도 연결된다. 기존의 전문가 추천이 포함하던 사람의 가치와 철학이 플랫폼 추천에서 증발되듯, 이용자 취향 또한 플랫폼 추천과정에서 희석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이미 데이터베이스화된 개인은 현실 속 개인과 분리된 무언가다. 더 중요한 것은, 이용행위의 결과가 우리의 취향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취향이 행동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따라서 행위의 결과를 모았을 때 그 결과가 취향과 관련된다고 보는 것은 일정부분 타당하다. 하지만 이용행위의 결과가 취향을 형성한다거나, 행위의 결과가 곧 취향인 것은 아니다. 데이터가 이용자는 아니듯, 데이터를 통해 짜 맞춘 취향 역시 실제 이용자의 취향과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 결국, 플랫폼이 제공하는 추천 서비스의 근거는 취향이 아니며, 이용행위를 통해 긁어모아 취향과 관련될 수 있는(물론 관련 안 될 수도 있는) 데이터일 뿐이다.
특정 플랫폼에 충성도가 높은 이용자들은 그렇지 않은 이용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플랫폼 내 알고리즘에 익숙할 확률이 높다. 지속적인 관심과 이용은 그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두둑하게 만든다. 데이터가 누적되면 될수록 인공지능이 해당 이용자에게 추천하는 콘텐츠 영역은 정교화되고 넓어진다. 익숙함은 자유로움과도 맞닿아 있다. 특정 플랫폼에 익숙해지면, 그 안에서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해진다. 플랫폼 내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 쌓일수록 (플랫폼 밖에 위치하는 이용자의) 플랫폼에 대한 지식과 경험도 축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플랫폼에서의 자유와 즐거움은 착시에 불과하고, 실상은 플랫폼이 하나의 장(場)을 펼쳐놓으면 이용자가 그 안에서 욕구와 행위를 토대로 움직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그것은 이용자가 언제든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있는 '선택적 세계'(optional world)이다.17) 그럼에도 이용자들이 기꺼이 그 안에 있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세계가 이용자들이 스스로 진입함으로써 마치 게임처럼 나만의 데이터베이스가 조합되고 축적되는 새로운 공간이기 때문일 듯하다. 플랫폼은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이용자들이 마치 그 사이버스페이스의 주체적 존재가 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18) 하지만 이야말로 플랫폼이 이용자들을 포섭하는 방식이다. 이용자들의 주체적인 것처럼 보이는 참여는 이용자들의 자유와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알고리즘에 의해 의도되고 구성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다. 자유롭게 부유하는 것처럼 보이나 역설적으로 플랫폼은 이용자들을 가두며, 플랫폼은 주체를 실현함으로써 주체를 해체해 객체로 만드는 도구다. 19)
4. 플랫폼에서/에 대해 비평한다는 것
이상에서 비평의 정의, 요소, 조건을 정리하고, 플랫폼이 갖는 고유의 문제적 특징들을 살폈다. 여기에서는 둘을 함께 두고 논의를 진행한다. 플랫폼의 속성들이 왜 비평을 어렵게 하는지, 그렇다면 플랫폼 비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주된 내용이다. 다만, 플랫폼은 비평을 탑재하는 공간이면서 그 자체로 비평의 대상이기도 하므로, 플랫폼'에서 비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비평채널로서 플랫폼)와, 플랫폼'에 대해 비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비평대상으로서 플랫폼)로 나눠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 플랫폼에서 비평한다는 것
인터넷 상에서 가상의 공간을 마련해 이용자로 하여금 채우게 하는 플랫폼(포털과 SNS 대부분, 유튜브와 같은 일부 OTT 등)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능동적으로 정보를 생산·배포 ·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평의 저변을 넓히거나 비평을 민주화할 가능성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전통적 관점에서 제도화된 비평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플랫폼에서 비평은 그야말로 '넘쳐난다'. 포털이 제공하는 블로그(blog)나 커뮤니티 게시판, 그리고 SNS 등에서 비평을 자처하는 작업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다양한플랫폼을 통해 콘텐츠 향유경험이 축적됨으로써 향유자들은 이제 전문가 못지않은 정보와 지식을 갖게 됐다. 이는 향유자들을 비평가로 만드는 계기이면서,향유자들을 골고루 만족시킬 만한 고유의 비평체계가 이뤄지기 어려운 대표적이유이기도 하다. 플랫폼으로 인해 이제 미디어 비평의 장은 이미 제도화된전문적 비평 영역과, 사이버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된 아마추어 비평영역 사이의 갈등과 연대가 교차하는 역동적 공간이 되었다.
앞서 살펴본 비평의 세 가지 조건을 고려했을 때, (개별 서비스에 따라다를 수는 있겠지만) 플랫폼은 그 자체로 세 번째 조건인 '비평공간'을 제공한다.나머지 두 조건, 즉 감상문 수준을 넘어서기 위한 체계, 그리고 비평가에 대한공인절차는 플랫폼이 담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체계)과 해당 비평장(공인절차)의 몫이다. 그럼에도 플랫폼은 비평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폭발적인 비평의 발발(勃發)을 이끈다. 그리고 비평의 저변 확대나 민주화 가능성을 열어젖혀,플랫폼을 채널로 하는 비평의 조건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만들어낸다.기존의 비평 개념으로는 플랫폼에서 넘쳐나는 항유자들의 비평에 대한 이해가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전문적인 비평을 위한 체계와 공인절차를 마련하는 일이여전히 비평의 조건으로 필수적인 것일까? 제도화돼 있지 않다면, 그 자체로가능성이 될 수는 없을까? 비평의 민주화를 통해 제도권 내 비평에서는 찾을수 없었던 낯선 상상력을 발굴할 여지가 열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에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도화되지 않은 비평의 장에서 쏟아지는, 이른바'중심 없는 주변부의 비평들을 규정하는 조건들이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 비평의장 자체를 흔드는 변화 속에서 비평과 비평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조건 마련을 통해 비평의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따라서 플랫폼 향유자는 수동적으로 비평을 소비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능동적으로 비평을 생산 · 배포. 공유하는 새로운 비평주체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비평을 행하는 사이버스페이스 역시 해당 공간에 들어오는 비평독자들이 비평을 읽고 소감을 밝히는 새로운 비평의 장이자 역동적인 비평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남은 것은 그들의 비평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비평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를테면 댓글, 별점, 좋아요, 리트윗 등은 특정 정보나 콘텐츠에 대한 반응일 뿐, 비평이라고는 할 수 없다. 비평과 비평 아닌 것의 차이는 구분 가능하나, '고급/좋은 비평과 '저급/나쁜'비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혹은 존재해선 안 된다). 전통적 비평이 추구해온 것처럼 고급독자만을 위한 전문적인 의미의 비평만이 비평은 아니다. 플랫폼의 특성, 그리고 그 향유자를 감안한다면 전통적인 의미의 비평개념의 수정 혹은 확장은 필연적이다. 그 명확한 기준과 범위를 제시하는 일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비평주체와 독자 간 갈등과 연대 속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비평 고유의 목적과 역할을 지켜져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면 비평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0)
하지만 애초에 비평채널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 플랫폼들도 있다. 비평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대표사례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 같은 OTT에는 여러 사업자들의 콘텐츠를 한 데 모음으로써 콘텐츠의 다양성과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수많은 콘텐츠들에 대한 체계적인 비교와 이용자 간 의견 교환, 자료 공유 등이 자유롭게 일어나는 공간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런 류의 플랫폼들은 이용자에게 일방적이다. 이용자 분석에 따른 추천 콘텐츠만 나열할 뿐, 구체적인 콘텐츠 조회수 같은 지표는 공개하지 않는다. 내 정보를 이용해 콘텐츠를 내게 추천해주지만, 나는 그 추천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추천과정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콘텐츠를 보고 해당 콘텐츠에 대해 평가하고 그 평가와 관련해 다른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싶어도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 피드백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플랫폼에서 플랫폼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한 비평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비평을 위해서는 해당 플랫폼을 나가야 한다. 플랫폼에서 이용자로의 접근만 있고, 이용자에서 플랫폼으로의 접근은 제한되는 셈이다. 플랫폼이 데이터를 독점한다. 이용자뿐 아니라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주체들도 마찬가지다. 실제 넷플릭스는 방송사나 콘텐츠 제작사에 성과지표나 이용자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한 쪽은 비평 확장과 민주화의 가능성을 갖고, 다른 한 쪽은 비평을 봉쇄하는 이러한 플랫폼 간 온도차는, 일차적으로 플랫폼의 유형에서 비롯된다. 포털이나 SNS가 이용자들의 소통 여지를 남겨놓지 않을 수는 없다. 이용자들의 소통 자체가 그것들의 주된 기능이자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 간 온도차는 해당 플랫폼 서비스의 데이터 활용 여부와 더 깊이 관련된다. 데이터를 콘텐츠 선별/제작 그리고 추천 등에 활용하는 플랫폼의 경우 데이터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의 중심이므로, 데이터 수집을 위한 단초들을 콘텐츠 제공자와 이용자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넷플릭스처럼 데이터 부분이 완전히 폐쇄돼 있는 서비스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플랫폼들은 일정 부분 이용자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마련하고, 또 일정 부분은 닫아두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중도적 입장을 취한다. 이처럼 플랫폼은 한 편으로 비평의 본질 자체를 재고하게 만들 정도로 열려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비평을 차단한다. 플랫폼에서 비평하는 것은 복잡하면서도 이중적인 층위를 갖는다. 하지만 비평을 차단하는 플랫폼의 경우 비평의 채널로서 논의할 수도 있겠지만, 비평의 대상으로서 더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다.
2) 플랫폼에 대해 비평한다는 것
비평채널로서의 플랫폼과는 달리, 비평의 대상으로서 플랫폼을 논의하는 일은 더욱 어려우며 논의 자체도 많지 않다. 전자가 비평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후자는 비평대상으로서 플랫폼이라는 명제가 성립 가능한지 의문을 갖게 한다. 비평을 실어 나르지만, (일부 서비스의 경우) 그 안에서의 비평을, 그리고 (대부분의 서비스가 자신에 대한 비평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분명 전통적 비평이 가진 지나친 상업주의, 권력화와 전문가주의, 비판적 시선을 지니지 못하는 비평과 같은 부분은 문제였다. 그리고 웹에 기반한 포털, SNS와 같은 플랫폼은 기존 비평에 균열이 일어난 곳에서 잠시 평등주의와 다이너미즘을 실현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 어떤 플랫폼들은 비평의 시선을 차단한다. 여기서 플랫폼은 자동화된 데이터 포획장치로 기능하며, 이용자는 더이상 이용주체도 아니고 비평주체는 더더욱 아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세분화된 취향에 자족할 수밖에 없는, 데이터베이스화된 존재일 뿐이다.
단순히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를 재송신하는 경우가 아닌, 플랫폼이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콘텐츠들을 비평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넷플릭스, 훌루 등에서 제공하는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 시리즈는 수십에서 수백 편에 달하는 개별 텍스트를 기억하고 연결해야 재미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상호텍스트(intertext)다.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 향유패턴을 기존의 비평기준으로 재단하다가는, 덕력 높은 팬들의 전문성 앞에 조리돌림 당하거나 무시되기 쉽다. 디테일이나 뒷이야기도 팬들이 더 잘 알고, 텍스트에 대한 애정을 지닌 팬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기존 비평가들이 거대한 상호텍스트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21) 이와 유사하게, 특히 포털이나 SNS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애니메이션, 게임, 웹소설, 라이트노벨 등의 서브컬처(subculture) 콘텐츠의 경우도 전문가 집단의 체계적인 비평이 형성되기 어렵다. 이런 콘텐츠들의 이용이 이용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다는 점도 플랫폼 비평의 제도적 형성을 어렵게 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용자의 데이터베이스화와 개인화가 진행되고, 전통적 관점에서의 비평 메커니즘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플랫폼 비평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다. 비평은 비평대상을 흡수하거나 투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시선과 함께 배출하거나 반사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평의 주된 역할은 '먹음'이 아니라 '되먹임'이다. 비평주체와 대상 사이에 이뤄지는 되먹임의 반복을 통해 비평을 둘러싼 주체들이 공진화(coevolution)하는 것이 비평의 효과다. 하지만 비평의 역할은 거기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플랫폼에 대한 치밀한 독해에서, 플랫폼 관련 주요 행위자들이 직면한 문제들, 플랫폼에 제기되는 다양한 이슈들까지 긴 호흡으로 치밀하게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향후 플랫폼 비평이 창작주체와 수용주체가 형성하는 문화의 변화를 탐구하는 동시에, 기민하게 변화하는 플랫폼 기술의 정립상, 그리고 산업으로서 플랫폼이 당면하고 있는 변화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구체적인 전망과 대비책을 마련해야 함을 시사한다. 결국 플랫폼 비평의 역할은 비평으로서 타개해나가야 할 문제와, 우리가 어떻게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는 것이라 하겠다.
둘째, 플랫폼의 현실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 맥락에 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비평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다. 관련하여 이광석은 플랫폼의 비즈니스 방식이나 고도의 알고리즘 기제를 살피기에 아직 국내 논의의 접근법이 여러모로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전산학적(computational) 비평이나 '신정치경제학적 분석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전통의 미디어 '내용'(텍스트나 내러티브)과 함께 '형식'(전산학적 알고리즘 기술구조와 기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새로운 플랫폼의 국제 정치경제학적 분석(글로벌 콘텐츠 자본투자와 플랫폼 제작방식)까지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22) 덧붙여 비평대상에 따른 차별화된 접근도 요구된다. 유형이나 세부 서비스의 특징에 따라 비평을 세분화 전문화함으로써 전체 비평의 틀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전환과 미디어 믹스(media mix)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비평의 양식이나 형식을 발굴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셋째, 비평을 '총체적으로 통합하는 일의 불가능성 혹은 불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비평과 비평 아닌 것, 비평공간과 비평공간 아닌 곳, 전문 비평가와 아마추어 비평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수명을 다했다. 전문가 수준의 향유자, 전문가에게 없는 경험치를 지닌 향유자, 어디서나 격전이 벌어지는 비평공간, 기존의 정형화된 비평을 넘어서는 비평이 넘쳐난다. 더 이상 서로에 대한 구분 자체가 의미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더 이상 거대담론으로서의 비평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용자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작은 이야기들이며, 플랫폼 비평이 나아갈 방향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든, 그리고 그게 누구든) 타인의 비평을 주의 깊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관점이 지닌 타당성을 물으면서, 타인과 자신의 비평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는 일이다. 23)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기본적으로) 자동화된 데이터 포획장치로서의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 플랫폼을 그대로 이용하는 한 타자가 규정한 세계 안에서 살아지게 될 뿐이다. 나도 모르는 새 수집된나의 데이터가 만들어낸 누구의 것도 아닌 취향에 자족하면서 말이다. 여기서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원인이 되는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어려운 일이며, 무엇보다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다.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플랫폼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일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 방법은 통제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장소가 바뀌지 않는다면 나를 바꾸면 된다. 데이터는 나의 행동에서 나온다. 데이터베이스 추출 로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인풋이 바뀌면 같은 로직이라도 아웃풋이 다를 수밖에 없다.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입력한 숫자만큼 존재하기때문이다. 그래야 좁은 시야 안에서 뻔한 콘텐츠를 고르고 만들고 추천하는포섭기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플랫폼의 안과 밖을 상상하고 주체적으로 그것을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강신규
문화/과학 편집위원, 영상문화연구자, 게임, 방송, 만화에 특히 관심이 많다. 저서로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게임포비아등, 논문으로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 「메타/게임으로서의 '게임 보기'」, 「망가의초국가적 욕망: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등이 있다.
1) 플랫폼은 디지털 기술적 개념으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들이 구동하도록 설계된 소프트웨어 환경, 온라인 네트워크 위에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서비스, 개방형 설계를 통해 여러 앱과 콘텐츠가 결합한 소프트웨어 환경이나 서비스 등을 의미한다(이광석, 「자본주의 종착역으로서 '플랫폼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소묘ㅡㅡ 문화/과학 92호, 2017, 21-22쪽), 플랫폼의 유형으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운영체제(예를 들어, iOS, 안드로이드 OS 등), 인터넷 포털 서비스(구글(Google), 다음(Daum), 네이버(Naver)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넷플릭스(Netflix), 유튜브(YouTube) 등), 공유경제 서비스(우버(Uber), 에어비앤비(airbnb) 등)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미디어 플랫폼, 즉 인터넷 포털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에 집중해 논의를 펼친다.
2) 차여경, 유튜브, 모바일 동영상 앱 중 사용시간 1위, 시사저널 이코노미 2019.6. 18, http://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795
3) 곽희양,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 69%가 20~30대 경향비즈』, 2019.7.16, http://biz,khan, co.kr/khan_art_view.html?artid=201907161017001&code=930100#esidxad99ad06ad579b8bff0d17e4a1638ad
4) 마셜 밴 앨스타인 · 상지트 폴 초더리 · 제프리 파커, 이현경 옮김, 『플랫폼 레볼루션, 부키, 2017, 19쪽: 스콧 갤러웨이, 이경식 옮김, 플랫폼 제국의 미래, 비즈니스북스, 2018.
5) 이광석, 「자본주의 종착역으로서 플랫폼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소묘」, 『문화/과학 92호, 2017, 32쪽: 김상민, 플랫폼 자본주의 삶과 노동의 새로운 '판'을 짜는 방식, 워커스』, 2017. 8. 4, http://workers-zine.net/27331
6) 노드롭 프라이, 임철규 옮김, 『비평의 해부』, 한길사, 2000,
7) 본 장의 논의는 다음 글 일부를 수정·보완했음을 밝힌다 강신규,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 게임비평을 중심으로」, 『문화/과학』 85호, 2016, 132-134쪽.
8) 김봉석 · 박정숙 · 박기수 · 한상정, [좌담회] 우리 만화 비평을 말한다. 만화 담론의 현재와 비평의 길찾기」, 『크리틱엠, 2015.5.8, http://criticm.com/?p=734
9) 마크 그리프, 기영인 옮김, 모든 것에 반대한다. 은행나무, 2019, 294쪽.10) 우노 츠네히로, 김현아 주재명 옮김,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워크라이프 2018, 393.
11) Gunn Enli & Trine Syvertsen, “The end of television-again!: TV is still influenced by cultural factors in the age of digital intermediaries," Media and Communication, 4(3), 2016, pp. 142-153,
12) 이희은, 유튜브의 기술문화적 의미에 대한 탐색: '흐름'과 알고리즘 개념의 재구성을 중심으로」, 「언론과 사회 27권(2호), 2019, 22쪽,
13) Tarleton Gillespie, "The polities of "platforms"," New Media & Society, 12(3), 2010, pp.347-364.
14) 이희은, 유튜브의 기술문화적 의미에 대한 탐색: '흐름'과 알고리즘 개념의 재구성을 중심으로」, 언론과 사회 27권(2호), 2019, 22-23쪽,
15) 베르나르 스티글러, 김지현 · 박성우 . 조형준 옮김, 『자동화 사회 1: 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 새물결, 2019, 285-293쪽.
16) 이광석, 능동적 시청자가 콘텐츠 선택? ・・・그건 순진한 '착각' 경향비즈』, 2019.5.16,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905162121005&code=930100
17) 예스퍼 율, 장성진 옮김, 『하프 리얼: 가상 세계와 실제 규칙 사이에 존재하는 비디오게임비즈앤비즈, 2014.
18) 에티엔 바랄, 송지수 옮김, 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문학과지성사, 2002.
19) 강신규, 방송의 게임화 연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학위논문, 2018, 120-121쪽.
20) 강신규,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 게임비평을 중심으로」, 『문화/과학, 85호, 2016, 132-135쪽.
21) 홍석경, '엔드게임', 비평가의 죽음, 서울신문, 2019.5.8,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509030004
22) 이광석, 능동적 시청자가 콘텐츠 선택? ...그건 순진한 '착각' 경향비즈』, 2019.5,16,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905162121005&code=930100
23) 강신규,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비평을 중심으로」, 『문화/과학』 85호, 2016, 156-157쪽/ 플랫폼 비평에 요구되는 네 요소 중 앞의 세 요소는 다음글 일부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강신규, 같은 논문, 155-15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