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노동

프롤레타리아의 물결

차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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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고(波高)를 넘어 파장(波長)으로

한국 비평사에서 카프(KAPF : Korea Artist Proleta Federatio, 1925~1935)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카프의 역사도 그 연구사도 그리 순조롭지 못했다. 무산계급 문예운동단체를 내세웠던 만큼 카프는 설립부터 계급적 사회운동과 문예운동을 긴밀하게 연결하고자 하는 명백한 '의도'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일제강점기 내내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부정될 수 없었던 것은 카프의 문예운동이 한국의 근대문학과 근대문화에 남긴 족적이었다. 그것은 결국 카프가 한국사회에서 반공주의와 파시즘의 시대를 관통하면서도 우리 근대사의 고전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한 힘이었다. 카프에 대한 연구사는 1980년대에 집단적 관심과 실천적 사유를 바탕으로 촉진되었고, 1990년대 정점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관심이 점차 줄어들면서 2000년대 이후에는 연구 자체가 다소 소강된 상태인 것이 사실이다1)

그런데 지금 우리는 카프를 넘어서 당대의 좌파 문화를 새롭게 보고자 하는 또 하나의 반가운 텍스트를 마주하고 있다. 바로 박선영의 <프롤레타리아의 물결>(나병철 역, 소명출판, 2022) 이다. 이 책은 우리가 간과했던(혹은 놓치고 있던) 일제강점기 좌파 문예운동의 족적을 되짚어 봄으로써, 오늘의 우리가 그 시대와 사상을 다시 조명해야 하는 이유를 제안하고 있다.

지난 사상사와 문학사를 다시 읽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문학과 문화 연구사에서는 항상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저작물은 일차적으로 당대적 의미 안에서 가치를 얻는다. 그러나 때로 그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와 맞부딪쳐 또 다른 파열음을 낼 때,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박선영의 프롤레타리아의 물결』 역시 카프를 고전화하고, 정전화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은 그저 익숙한 관행을 되풀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제 30여년에 가깝게 축적된 카프 연구사가 만들어낸 '통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책이 카프가 아닌 '프롤레타리아'를 화두로 내걸었다는 것에서부터 확인될 수 있다. 그것은 저자 박선영의 독해가 카프라는 신화화된 강줄기가 아닌 프롤레타리아라는 수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고전과 정전의 이름 속에 갇혀 있던 카프를 길어 올려, 여전히 생산적인 새로운 물결 위에 합류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은 카프라는 파고(波高)에 압도되지 않고 카프를 전후로 발생했던 수많은 파장(波長)을 되짚어가는 시도라 할 수 있다.

2. 좌파 문화, 번역과 번안의 경계에서

박선영의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이라는 제목 그 자체이다. 그것은 이 ‘새로 읽기’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 카프가 아닌 프롤레타리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이라는 용어는 1910년대 중반 한국문화에서 발흥했고 태평양전쟁이 임박한 1940년대 초에 쇠퇴한 작가, 지식인, 출판인, 편집인, 독자의 포괄적인 동맹을 나타낸다. 물결을 이룬 사람들은 국제정세의 흐름에 따라 좌파운동의 출현에 고취된 문화적 행위자들이었다.(35-36쪽)

잘 알려진 대로 카프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좌파 문화를 선도했던 단체이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이라는 명칭 그대로 "카프의 이데올로기적 면모는 명백하게 프롤레타리아적"(108쪽)이었다. 물론 카프의 구성원 대부분은 중간층 이상의 신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 남성이었지만, 이 단체의 사상적 중심과 이상적 주체는 프롤레타리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의의 시작점을 카프가 아닌 프롤레타리아로 바꾸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카프를 둘러싼 기존의 연구 경향을 일면 전복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좌파 문화에 대한 연구사는 대부분 카프를 정점에 두고 그 전후를 살펴보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신경향파도 동반자 작가도 대부분의 경우 카프를 축으로 논의되었고, 카프 해체 이후의 전향도 역시 그렇게 논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카프라는 이름이 아닌 프롤레타리아를 내세우는 것은 이러한 일반적인 연구 방식에 새로운 시각을 가능하게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카프라는 축의 바깥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프롤레타리아라는 화두로부터 이미 '새로 읽기'라는 가치는 시작되고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이 만든 작은 파동이 야기한 수많은 파장에 관심을 두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것이 어떻게 카프라는 거대한 파고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의 과정을 살피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저자가 식민지 조선에서부터 현재까지 좌파 문화가 한국 사회에 녹아들어 자생할 수 있었던 그 모든 과정을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자 연속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물결의 강렬한 모험은 행복한 결말을 맺지는 못했다. 혁명적이고 국제적인 사상으로 대담하게 발을 내딛은 조선의 지식인 청년들은 곧 일본 식민 당국의 혹독한 감시하에 놓이게 되었다. 1935년의 카프 강제 해산과 함께 모든 사회주의적 활동들은 지하화되었고, 1941년 파시즘의 그늘과 태평양전쟁의 와중에서 식민지 조선에서는 모든 형태의 저항이 실행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활력적인 물결이 고투를 겪은 반면 그에 대한 기억은 이후로 긴 시간 동안 반향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프롤레타리아 물결의 역사적 경혐은 정치적 행동주의의 모범이 되어 왔으며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 정치학의 모델이 되었다.(38쪽)

좌파 문학과 문화는 한국의 근대성 논쟁에서 뛰어난 역할을 했으며, 그런 활동은 20세기 초반 국제적 사회주의 문화와 상통하는 가치들을 내놓음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43쪽)

그러므로 이 '새로 읽기'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 프롤레타리아의 존재 그 자체라는 사실은, 이 흐름을 독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야기한다. 그것은 카프를 둘러싼 신화화에서 벗어나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이라는 거대한 조류와 함께했던 카프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일이다. 그에 따라 이 책이 가장 먼저 얻어낸 수확은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한국의 좌파 작가들은 사회주의적 사상들을 자신들의 지역적 상황에 적용되도록 번역하고 있었다. 오늘날 그런 지식인들이 진짜로 사회주의를 “이해했는지” 질문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지역 지식인의 입장에서의 전유 과정이 없었다면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는 한국에서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146쪽)

첫째,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 좌파 문화가 수용되고 적용되어 변화되어온 과정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관점의 변화를 만들었다. 그것은 외부의 충격으로 조선사회에 번역되었던 좌파 문화가 조선이라는 현실 속에 스며들면서 결국 조선만의 좌파 문화로 번안되는 과정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이것은 저자 박선영이 카프가 아닌 프롤레타리아를 논의의 출발점에 둘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 카프는 식민지 시대 좌파 문화운동의 유일한 표현이 아닌 수많은 지류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신념을 지닌 몇몇 작가 집단들은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한국 좌파의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된 뒤에도 카프에 가담하기를 자제하고 있었다. 그런 집단들의 구성원들은 전형적으로 카프의 "동반적 여행자의 입장을 취했으며, 그중 어떤 사람들은 선봉의 마르크스주의 조직과 때로는 상조적이고 때로는 경쟁적인 제휴를 형성했다.(141~142쪽)

이러한 관점을 변화를 통해 그는 둘째, 동반적 여행자(fellow traveler)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열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동반자 작가라는 명칭을 영어 표현 그대로 번역한 '동반 여행자'라는 용어로 대체하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한국의 좌파 문화의 보다 거대한 흐름을 드러내는 중요한 전제가 되고 있다. 카프는 좌파 문화를 이끌어온 리더이자 일종의 안내자였지만, 카프만으로 한국의 좌파 문화 전체를 해명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박선영은 동반 여행자에 보다 주목해야 함을 역설한다.

한국 좌파 문화의 역사 속에서 카프가 주류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지만, 동반 여행자들은 카프와 함께 프롤레타리아 흐름을 탄생시킨 상류인 동시에 그로부터 이어지고 나란히 지속되었던 수많은 지류를 지칭하는 용어가 된다. 박선영은, 이처럼 자신의 세계 안에서 좌파 문화를 추구해온 수많은 동반 여행자들이 카프와 함께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것임에 주목하고자 했다.

그것은 그들의 여정이야말로 곧 식민지 조선을 넘어 한국사회에 프롤레타리아라는 견고한 흐름을 지속될 수 있게 만든 진짜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한국사회의 역동성과 반동성이라는 독특한 힘의 유전, 그 발원지를 찾아내고자 하는 과정으로 귀결되게 만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가 내세운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은 이 탐색을 가능하게 만든 원천이자 흥미로운 '치트키'로서 부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카프가 아무리 루카치식의 리얼리즘 미학을 추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조선사회에서 이해되고 실행되는 것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농업이 산업적 기반의 절대 다수를 이룬 사회적 현실과 식민지라는 억압적 정치 환경이 야기한 모순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조선 사회에 번역되고 또 때로 번안되어야 했던 좌파 문화가 프롤레타리아의 미학적 표현이자 사회적 참여를 추구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은 무엇인가? 박선영은 그것이 바로 르포르타주였다고 말한다.

1920년대 후반부터 <별건곤>과 <조선일보>에서 간헐적으로 등장했던 낙후지역에 대한 르포르타주는 1930년대부터는 공장 르포르타주와 노동 르포르타주로, 그리고 카프 비평가들에 의한 농민문학 논쟁이 시작되면서 다시 농민 르포르타주로 확장된다. 이러한 연속성 속에서 박선영이 조명한 것은 다름 아닌 이기영의 작품들이다.

그는 이기영의 <고향>이야말로 국제적인 문학적 관습을 자신의 비평적 이해에 따라 전유하려는 카프의 작가적 노력이 얻어낸 최선의 성과였다고 평가하면서, 이러한 이기영의 저작 활동이야말로 최초이자 최고의정치적 행위에 버금간다고 호평한다. 이것은 그간 사회주의 리얼리즘 측면에서 일정하게 부족하고 때로는 과도한 도식화로 비판받았던 이기영의 작품이 가진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이기영의 <고향>을 비롯한 농민소설들은 '국제적 사회주의의 보편성과 식민지 조선이라는 특수성' 사이에서 카프의 작가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정전으로서 그 자리를 새롭게 갱신할 수 있게 되었다.

3.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귀환, 그리고 페미니즘의 물결

이처럼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은 한국 좌파 문화를 그 시작점으로부터 다시 읽고, 그것을 넘어 새로 읽고자 하는 시도였으며, 그 성취를 성공적으로 일구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갈라져 나온 또 하나 거대한 지류의 탄생을 목도하였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귀환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페미니즘 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페미니즘의 물결'을 확인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논쟁의 한가운데 서있다. 2015년 전후로 등장한 페미니즘 리부트는 그 강렬한 현장감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페미니즘 리부트가 가진 본질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기존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반성과 극복을 전제하지만, 거기엔 분명 이전 시대와의 접속이 내재되어 있다.’2) 놀랍게도 이 접속의 가능성을 프롤레타리아의 물결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야기한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유의미할 수 있음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한국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더를 둘러싼 사회적 상황을 잠시 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이후 변화된 사회상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돌봄노동의 문제는 가장 돌출적이며 직접적인 사회문제라 할 수 있다.

“감염과 해고의 위협에 제일 먼저 노출된 돌봄 노동자도, 가정에 쏠린 돌봄 부담을 온전히 떠안게 된 식구도 대부분 여성이라는 사실은 오늘의 젠더가 왜 계급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보편성 위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관심이 젠더에서 노동, 그리고 그것이 다시 계급의 문제가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전개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이 시점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이 보여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귀환은 더없이 요긴하다.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같은 신여성 작가가 보편적 여성해방에 필요한 문화교육과 정신적 계몽에 우선권을 두었다면, 이후의 사회주의 여성 작가(강경애, 박화성, 백신애)는 여성들 속에서의 계급적 차이에 보다 관심을 두었다.(294쪽)

당대의 가정성과 모성애의 예찬은 신흥하는 식민지 중산계급에 그 토대를 두고 있었다. (…중략…) 즉 노동계급의 값싼 노동에 의존하는 중산층 여성만이 생존 노동의 걱정없이 가사와 육아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강경애와 백신애, 박화성 같은 작가는 프롤레타리아적 관점을 선택함으로써, 제국적, 민족적 모성 예찬을 효과적으로 비판하며 그에 내재된 선전적 의도를 폭로할 수 있었다.(321-323쪽)

인용된 부분을 보면 일제강점기의 여성문제가 오늘의 그것과 결코 괴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산층 여성에게 가정성과 모성 예찬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그 “노동계급의 값싼 노동”의 정체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돌봄노동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 이 문제는 보다 복잡한 형국을 가졌다.

당시 일제는 식민지의 기혼여성, 그중에서도 가정주부를 전쟁의 인적자원으로 적극적으로 수단화하였고, 모성예찬은 그 방법론 가운데 하나였다.4) 그것은 “제국의 모성 관념을 주입하고 식민 통치에 용융하고 적합한 식민지적 어머니 역할을 강요하며, 모성의 모든 역할과 그 수행 방식-출산, 양육, 교육 등-에 개입하는 지배양식”5)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였다. 박선영 역시 "제국적 착취의 가장 큰 희생자는 특히 노동계급의 여성들"(334쪽)이었음을 지적하는데, 이는 오늘날에는 '팬데믹 하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의 가장 큰 희생자는 특히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이었다'라고 다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계급이라는 화두 안에서 민족과 여성의 문제에 천착하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으리라. 식민지 조선의 여성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식민지에 처한 민족의 문제도, 그 안에서 가장 극렬한 착취의 대상이 되었던 대다수의 노동계급 여성들의 현실도 간과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다 흥미로운 것은 박선영이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당대의 여성문제에서 어떤 방식으로 페미니즘적 가치를 얻어냈는가를 분석한 지점이다. 그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작가들이 '모성의 실패'를 통해 역설적으로 모성신화의 위선을 드러냈고, 그로부터 젠더의 문제가 왜 계급의 문제와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이는 강경애의 <소금>에 대한 분석에서 분명해진다.

박선영은 “고전적 페미니즘과 여성의 자율성 주장의 편에서 “모성성 예찬”을 직접 반대하진 않지만, <소금>은 사상상 모성 숭배의 환상적 본질에 도전”(321쪽)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상화된 어머니가 가족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음을 통해 제국주의적 모성이데올로기의 허위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허위로 드러난 모성 뒤에서 드러난 것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인 여성들, 자기 노동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인 동시에 여성인 그들의 가혹한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 여성작가들은 궁핍한 어머니와 학대받는 여공들, 매춘에 내몰린 농촌 여성들의 생생한 초상을 그림으로써, 식민지 여성 중에서 하위계층에게 문학적인 목소리를 부여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조선 사회와 보다 넓은 근대 세계 내에서 노동계급 여성의 위치를 재상상할 수있게 해주었다.(337쪽)

이러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귀환은 오늘의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 운동과 논쟁 안에서 가장 위협적이었던 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백래시만은 아니었다. 내부에서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헤게모니 논쟁 역시 위험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은 우리에게 그 어떤 순간에도 하나의 사상은 단 하나의 물결로서만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페미니즘의 물결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여성들이 가져온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동시대의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야기한 젠더와 계급성이라는 또 다른 동력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페미니즘 리부트는 오랜 시간 잠재되어 있던 이 낯설고 익숙한 조류를 재발견하는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재사유 하는 것은 오늘의 페미니즘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은 어쩌면 오늘의 페미니즘을 위한 '동반적 여행자'의 존재를 발견하는 여정까지도 선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 또 다른 물결을 기대하며

박선영은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이 공산주의 유령보다 덜 혁명적인 대신 더 깊고 넓은 동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의 원천을 그 탄력성과 유동성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것은 2000년대 후반 실체 없는 중심으로서 사회주의 문화를 내세웠던 천정환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사회주의 문화'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순수한' 상태란 없고, '사회주의 문화'는 어떤 실체의 이름도 아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기존의 문화 형식과 전통이 강력한 간섭력을 발휘하고, '사회주의 문화'는 그 힘과 갈등하고 간섭에 의해 변형된 채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주의 문화'는 문화적 헤게모니뿐 아니라 정치적 역관계에 의해 완전한 영향을 받는다.6)

우리 문화사에서 가장 강력한 헤게모니로 작동했던 카프와 사회주의 문화가 이러한 탈중심적인 연구를 통해 해석되는 과정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기준은 오히려 가장 불투명한 모호성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법론은 정당성을 획득한다. 어떤 견고한 기준으로 진정성을 내세우는 일이야말로 자유롭고 건강한 논쟁의 장을 폐쇄적으로 만드는 함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박선영이 말하는 물결이 사상적 다양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비록 중심의 실체는 알 수 없어도 하나의 물결이 또 다른 물결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면, 프롤레타리의 물결』 역시 그러한 파동의 또 다른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사회주의 물결이 일으킨 진보의 물결, 그리고 페미니즘의 물결까지 새로운 파동으로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대중'을 키워드로 한국문학과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1) 이도연, <카프비평사의 탈구축과 재구성>, <비교한국학> 28권 1호, 국제비교한국학회, 2020, 215~216쪽 참조

2) 류수연, <돌봄과 노동의 경계에 선 '엄마', 다시 읽는 공선옥>, <비교한국학> 29권 1호, 국제비교한국학회, 2021,39쪽 참조.

3) 조문영, <한국사회 코로나 불평등의 위계>, <황해문화> 108, 새얼문화재단, 2020, 17쪽

4) 류수연, <가정상비약, 총후보국과 사적 간호의 확대>, <비교한국학> 26권 1호, 국제비교한국학회, 2018, 274쪽 참조.

5) 안태윤, <일제말기 전시체제와 모성의 식민화>, <한국여성학>, 19권 3호, 한국여성학회, 2003, 81쪽.

6) 천정환, <1920년대 독서회와 ‘사회주의 문화’>, <대동문화연구> 64,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2008,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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