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한 고등학생이 저지른 범죄, 법적 절차는 오래전에 마무리됐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소년범의 과거가 만천하에 드러나며 대중의 분노가 들끓었다. 배우 조진웅의 사례가 방아쇠가 되어, 대한민국 소년법의 핵심 원칙인 비공개, 교화, 재사회화, 낙인 방지는 과연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이미 종료된 소년범죄 기록이 뒤늦게 폭로되어 마치 두 번째 형벌처럼 작동하는 현상 – 이것은 정당한 사회적 심판일까, 아니면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일까? 이번 기획기사는 법과 여론의 충돌 지점을 짚어보며, “왜 지금 대중이 다시 ‘형벌’을 집행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그 배경과 함의를 해부한다.

배우 조진웅이 16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교에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고(故) 임수생 시인의 ‘거대한 불꽃 부마민주항쟁’을 낭송하고 있다.부마민주항쟁은 부산지역과 경남 지역(마산)의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해 발생한 대규모 민주화운동이다. 1979년 10월16일 부산에서 처음 발생해 같은 달 18일 창원(옛 마산)지역까지 확산됐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9.10.16/뉴스1
배우 조진웅이 16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교에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고(故) 임수생 시인의 ‘거대한 불꽃 부마민주항쟁’을 낭송하고 있다.부마민주항쟁은 부산지역과 경남 지역(마산)의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해 발생한 대규모 민주화운동이다. 1979년 10월16일 부산에서 처음 발생해 같은 달 18일 창원(옛 마산)지역까지 확산됐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9.10.16/뉴스1

 

30년 만에 되살아난 ‘죄와 벌’

지난 12월 초, 유명 배우 조진웅(본명 조원준)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원인은 다름 아닌 그의 10대 시절 범죄 전력이었다. 연예 매체의 폭로에 따르면, 조진웅은 고교 시절 절도와 성폭행 등 중범죄에 가담해 소년원 송치 처분(소년보호처분)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적으로 봉인되어 있었던 그의 과거 기록이 언론에 의해 공개되자, 대중 여론은 들끓었다. 결국 조진웅은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배우 생활에서 물러났다. 30년 전 이미 죄값을 치른 사건이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그는 한순간에 여론의 심판대에 다시 올라선 셈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연예계 스캔들을 넘어 사회적 논쟁으로 번졌다. “공인의 도덕성은 생명”이라며 과거 잘못까지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이미 처벌을 받고 사회에 기여해왔다면 또 한 번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세대에 따라 의견 차도 뚜렷했다. 40대 직장인 A씨는 “충격적이지만 지금까지 좋은 작품으로 위로를 준 것도 사실이다. 그의 행보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며 관용을 보인 반면, 20대 대학생 B씨는 “유명세에는 책임이 따른다.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과거까지 검증받아야 한다”고 응수했다. 조진웅 개인의 은퇴를 둘러싼 찬반을 넘어, “언제까지 과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이 사회에 던져졌다.

대한민국 소년법의 4대 원칙과 취지

조진웅 사건은 우리 사회에 소년법의 존재 이유를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 소년법은 미성년 범죄자를 다루는 특별법으로, 다음과 같은 핵심 원칙을 바탕에 두고 있다.

비공개 재판 원칙: 미성년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소년 사건 기록과 수사 자료는 엄격히 보호되며, 관계 기관도 수사·재판 목적 이외에는 어떠한 조회에도 응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한다. 이는 가해 소년의 신상이 외부에 알려져 낙인이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법무법인 호인의 김경호 변호사는 “기록의 유출 자체가 한 인간의 사회적 생명을 끊는 흉기가 될 수 있음을 법이 인정한 까닭”이라고 설명한다.

교화(矯化): 소년법의 궁극적인 취지는 처벌이 아닌 교육과 교정에 있다. 다시 말해, 범죄를 저지른 소년을 엄벌로 응징하기보다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돕는 것이다. 실제로 소년법 제1조 목적조항에도 비행 청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조치를 강조하고 있다. 김경호 변호사는 “소년법은 죄를 덮어주는 방패가 아니라, 낙인 없이 사회로 복귀하도록 돕는 사회적 합의”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소년범에게 내려지는 것은 형벌이 아니라 보호처분이며, 소년원 송치 등의 조치도 교화를 위한 수단으로 규정된다.

재사회화: 한 번 탈선한 청소년일지라도 장래에는 사회의 일원으로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재사회화의 정신이다. 국가가 미성년 범죄인에게 관용을 베풀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것은, 그들이 충분히 변할 수 있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예컨대 조진웅의 경우, 처벌을 마친 뒤 배우로서 대중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며 갱생의 삶을 살았다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소년법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낙인 방지: 비공개 원칙과 맥을 같이 하는 개념으로, 범죄를 저지른 소년에게 평생 따라다니는 주홍글씨를 남기지 않겠다는 취지다. “한 번의 실수로 평생을 감시당해야 한다면, 누가 갱생을 꿈꾸겠는가”라는 반문처럼, 소년 시절의 잘못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다. 따라서 소년범의 전과는 성년이 된 후 공식적으로는 전과기록에 남지 않고, 취업 등 사회생활에서도 이를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도 소년범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최소화해야 재활과 사회 복귀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상의 원칙들은 모두 헌법적 가치와도 연결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교정교화의 가능성은 우리 헌법 질서가 형벌에 부여한 중요한 의미다. 형벌의 목적이 응보뿐 아니라 범죄자의 개선과 사회복귀에 있다는 것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례에서도 누차 확인되어 왔다. 요컨대 소년법은 미성년자를 온전히 “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국가의 약속인 셈이다.

원칙의 현실: ‘깜깜이’ 제도의 명과 암

이처럼 이상적인 원칙을 내세운 소년법이지만, 현실에서 부딪히는 한계도 적지 않다. 우선 피해자의 권리와 알 권리 측면에서 “깜깜이 소년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현행법상 소년범 사건의 기록은 피해자라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다. 실제로 강력범죄 피해자의 가족조차 소년법원 허가 없이는 판결문 등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도 모르는 판결”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피해자 지원 단체 관계자는 “청소년기의 범죄라도 피해자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가해자의 잘못이 재능이나 성공으로 덮여서는 안 된다”며 공인의 과거 전력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해자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동안 피해자들은 평생 트라우마에 고통받는다”는 분노어린 비판도 나왔다. 소년법의 비공개 원칙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또 한 가지 현실은 소년범죄의 증가와 흉포화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힘을 얻는 배경에는, 해마다 늘어나는 청소년 강력범죄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깔려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형사 미성년자(촉법소년)에 해당해 형벌을 받지 않는 10~13세 소년범 송치 인원은 2020년 9,606명에서 2024년 20,814명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0~14세 인구는 13% 감소했는데도 범죄는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심각성이 부각된다. 범죄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 가정법원이 부여하는 소년 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수준인 9호(단기 소년원 송치)·10호(장기 소년원 송치) 처분 건수가 2019년 1,050건에서 2024년 2,098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소년범의 흉악범죄 비율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년범죄 증가 추이 – 최근 5년 사이 촉법소년 범죄는 116.7% 급증하며 연간 2만 명을 넘겼다. 특히 소년범에 대한 중형 처분(9호·10호) 건수도 2019년에 비해 2024년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나, 청소년 강력범죄의 증가세를 반영한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범죄가 늘어나는 역설적 상황에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소년법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일부 청소년들이 법의 선의를 악용한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지난 8월 충남 천안 집단폭행 사건에서 가해 학생들은 피해자를 폭행하며 “우리는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다. 미성년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면하는 것을 ‘면죄부’처럼 여기며 범죄를 저지른 충격적인 사례다. 이런 일이 알려질 때마다 여론은 들끓었고, 소년법 폐지나 개정을 촉구하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법이 너무 관대하니 아이들이 사람을 죽이고도 웃는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흉악범을 풀어줘서는 안 된다” 등의 격앙된 여론이 그 예다.

하지만 소년법을 둘러싼 논쟁에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소년범의 재범률이나 교화 가능성에 대한 통계는 오히려 소년법의 긍정적 효과를 시사하기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소년범 선도 프로그램을 이수한 청소년의 재범률은 6.1%로, 이수하지 않았을 때의 11.0%보다 크게 낮아졌다. 이는 적절한 교정 교육이 이루어지면 상당수 소년범이 재범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또한 대부분의 소년범들은 성인이 되어 범죄 세계와 단절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왔다. 결국 문제는 일부 흉악 사건들이 전체 소년법 패러다임에 대한 회의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며, 이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가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법정 밖의 ‘여론 재판’: 디지털 낙인과 무한 책임

“법이 닫아둔 문을 대중이 다시 연 격” – 조진웅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중 하나다. 인터넷과 SNS 시대를 맞아, 과거의 잘못이 언제든 디지털 기록으로 소환되는 현실이 만들어졌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한번 각인된 낙인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아, 사법적 처분이 끝난 이후에도 당사자가 반복해서 여론의 심판대에 서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번 경우에도 30년 전 사건의 판결문 일부가 유출되어 순식간에 퍼졌고, 분노한 대중은 사실상 ‘제2의 형벌’을 집행했다. 누리꾼들은 댓글과 게시글을 통해 조진웅을 맹비난했고, 그의 작품을 보이콧하거나 방송 출연 금지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법원이 부과하지 않은 사회적 제재를 여론이 가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여론 재판의 배경에 현대 사회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로, 언론 환경의 변화다. 소년범 논란을 처음 보도한 연예 매체는 자극적인 폭로로 엄청난 조회수를 올렸다. 일부 언론은 공인의 과거를 파헤치는 것이 “공적 관심 사안”이라며 취재 경쟁에 뛰어든다. 그러나 다른 언론인들은 “과거 전력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현재의 흐름은 언론의 과잉 경쟁과 대중의 도덕 감시욕이 결합된 것”이라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최근 한국 연예계에서는 학교폭력, 범죄 연루, 사생활 논란 등 과거사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일부 매체가 대중의 관음증적 욕구를 자극하여 클릭 수를 올리는 상업적 전략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둘째로, 도덕적 기준의 강화다. 오늘날 대중은 공인에 대해 도덕적 완전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젊은 날의 실수”로 치부되던 일들도 이제는 쉽사리 용납되지 않는다. 연예인은 물론 정치인, 운동선수까지 과거 행적 검증의 잣대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조진웅 사건에 대해 젊은 세대일수록 무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이런 도덕 감수성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사회 전체가 높은 기준의 윤리를 원하고, 그 기대에 어긋날 경우 거센 비난을 퍼붓는 집단행동이 자리잡은 모습이다.

디지털 공간은 이러한 여론 재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클릭 몇 번이면 과거 기사와 판결문, 루머까지 공유되는 시대다.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격렬한 언어로 마녀사냥이 벌어지기도 한다. 조진웅 사건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세부 내용이나 추가 의혹들이 온라인에서 확산되며 여론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게시글은 순식간에 수만 건의 공유와 댓글을 낳아, 전통 매체보다도 빠르고 강력하게 여론을 형성한다. 이러한 군중 심리 속에서, 당사자는 공식 판결과 별개로 이미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 결과가 빚어진다.

“왜 지금, 과거를 소환하는가” – 폭로와 공분의 시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이들이 자문한다.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30년 전 일이 폭로됐는가?” 우연한 한 건의 취재로 보기에는 최근 유사한 폭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왜 지금 이 논란들이 집중되는가”라며 음모론적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가령, 다른 이슈에서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연예인 과거사를 흘리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피해 당사자가 겪는 현재의 문제를 흐릴 수 있다”는 반론도 있어 조심스럽다. 분명한 것은, 과거를 폭로하고 단죄하는 일련의 흐름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러한 흐름이 나타나는 걸까? 여러 배경을 짚어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청소년 범죄를 비롯한 강력범죄에 대한 국민 정서가 한층 엄격해졌다. 흉악범죄 재발과 재범 방지에 대한 불안이 커지며, “법이 못하면 우리가라도 심판하자”는 심리가 확산됐다. 실제로 소년범 처벌 강화 청원이나 신상 공개 요구가 잇따르는 등, 대중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늘었다. 조진웅 사건의 경우에도,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실명을 거론하며 옛 사건의 자세한 내용까지 추적해 공유했다. 이는 법률이 보호하려 한 비밀주의를 대중이 집단적으로 깨트린 사례라 볼 수 있다.

또한 한국 사회의 공정 담론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채용 비리, 특권층 범죄 은폐 등 불공정 논란에 민감하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 중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이 유명인이 되어 영광을 누린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이를 사회적 불공정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법의 처벌을 받았더라도,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과 비교해 “가해자가 너무 잘 살았다”는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조진웅이 수십 년간 해당 사실을 숨기고 성공가도를 달린 데 대해 “정의에 반한다”는 정서적 반발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적 ‘캔슬 컬쳐(cancel culture)’의 영향도 고려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의 과거 잘못을 폭로하고 사회적으로 퇴출시키는 움직임이 보편화되었다. 과거 할리우드의 미투(Me Too)나 스포츠 스타들의 학창 시절 폭력 사례 등에서 보듯, 대중은 더 이상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한국의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영원히 기억하고 응징해야 한다는 정서가 글로벌 미디어 환경을 통해 강화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가 “왜 지금” 과거 폭로와 공분이 유독 거센지 설명하는 한 요소일 것이다.

법과 여론의 경계: 어디까지가 정의인가

결국 쟁점은 법적 판결이 끝난 사건을 사회가 다시 처벌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다. 이는 법치주의와 국민감정의 충돌이기도 하다. 조진웅 사례에서 보듯, 소년법 체계는 해당 사건을 오랜 시간 전 종결지었다. 그러나 대중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추가 처벌을 가했다.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상업적 관음증이 법치주의를 조롱한 것”이라며 언론과 여론을 비판한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 법학자는 “형벌은 국가가 독점해야지, 분노한 대중이 집행하는 순간 마녀재판이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김경호 변호사는 이번 보도를 두고 “저널리즘의 탈을 쓴 명백한 폭거”라고 맹렬히 비난하며 해당 기자들을 소년법 70조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그는 “30년 전 고등학생의 과오를 파헤치는 것이 2025년 대중의 알 권리에 해당하느냐”며, 헌법적 가치인 개인의 명예와 새로운 삶을 살 권리가 훼손되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갱생권과 인격권을 무기한 침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반대 측에서는 공공성과 책임을 든다. 공인은 대중의 신뢰를 먹고 사는 직업인 만큼 과거의 중대한 범죄행위는 예외 없이 검증되고 그에 따른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조진웅 사건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성폭력이라는 강력범죄가 핵심이었기에, 설령 미성년 시절 일이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본다. 정치권에서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한 여당 의원은 “고위 공직자의 소년기 강력범죄 전력을 국가가 조회하여 공개하도록 하자”는 법안을 추진했다. 살인·성폭력 등 흉악범죄는 소년원 출신이라 해도 끝까지 추적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심지어 “대통령은 괜찮고 배우는 은퇴해야 하는 모순”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며, 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더라도 사회적 지도층이나 유명인은 더 높은 도덕 기준이 요구되므로 과거를 숨긴 채 활동한 데 따른 사회적 처벌은 정당하다고 본다.

법과 여론의 경계선을 둘러싼 이 논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적 사례를 보아도, 사회는 끊임없이 죄를 잊지 않을 권리와 용서할 의무 사이에서 갈등해왔다. 1993년 영국에서 일어난 제임스 볼저 사건을 떠올려 보자. 두 10세 소년이 두 살배기 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했던 이 사건에서, 영국 법원은 이 소년범들이 성인이 되어 출소할 때 신분과 소재를 영구히 비밀에 부친다는 전례 없는 명령을 내렸다. 이들의 이름, 얼굴, 거주지뿐 아니라 말투까지 공개를 금지한 것으로, 평생 익명으로 살아갈 권리를 부여한 셈이다. 법원은 그 이유를 “이 청년들은 보복 공격의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이례적이지만 이들의 생명권과 신체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실제로 피해 아동의 아버지는 “놈들을 내가 직접 찾아내겠다”고 공언했고, 분노한 여론이 들끓자 소년범들의 목숨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영국 법원은 국민 감정이 어떻든 간에 국가가 책임지고 이들의 삶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피해자의 유족은 “어째서 살인자들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느냐”고 분개했다. 이처럼 해외에서도 피해자 권리 vs 가해 청소년의 갱생권 충돌은 첨예하며, 각국이 저마다 고심 끝에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많은 선진국들이 처벌 강화보다 재범 방지와 사회 적응에 초점을 맞추는 추세라는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영국·캐나다 등에서 소년범 처벌 수위를 높이고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는 정책의 효과를 장기간 조사했지만 기대와 달리 범죄 억제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전과자 낙인이 찍히고 성인 범죄자들과 함께 수감되면서 낙인 효과와 ‘범죄학교’ 효과만 두드러졌다는 보고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소년 문제는 처벌이 아니라 관리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확산했고,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소년사법을 교육·복지 중심으로 전환하여 긍정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법원과 인권위가 “형사미성년 연령 하향은 교화 가능성을 저해하고 낙인을 키울 우려가 있다”며 신중론을 펼친 바 있다. 이는 헌법적 가치인 인간 존엄성과 형벌 불소급 원칙을 떠올리게 한다. 한 번 처벌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끝내고, 사회로 복귀한 이후에는 과거보다는 현재의 삶을 보아주자는 것이 법치주의의 대원칙 중 하나일 것이다.

맺음말: 끝나지 않은 숙제

조진웅 은퇴 파문으로 촉발된 이번 논쟁은 한 배우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던져진 숙제로 남았다. 소년법의 보호 이념과 대중의 응징 욕구 사이에서 어디에 기준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다. 공인이기 때문에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회에 기여해왔다면 재기의 기회를 허락해야 하는가. 분명한 답을 찾기 어려운 이 딜레마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법률과 제도만으로는 완벽히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결국 사회의 집단지성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문제라는 뜻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단락된 사건을 대중의 법정이 다시 심판하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지 모른다. 인터넷은 기억하고, 피해자는 상처 입었으며, 대중은 분노할 권리가 있다고 느낀다. 동시에, 가해자였던 이들도 인간이며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 있고 속죄할 기회를 가질 권리가 있다. 어디까지가 정의이고 어디부터가 과잉인가?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이제 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 법학자는 이번 일을 두고 “우리 모두가 자베르가 될 것인가, 아니면 미리엘 주교가 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집요한 경찰 자베르는 끝끝내 장발장의 개과천선을 믿지 못하고 추적한다. 반면 미리엘 주교는 절도를 저지른 장발장을 용서하고 그의 새 삶을 열어주었다. 조진웅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자베르의 분노인지, 미리엘의 자비인지에 따라 앞으로 비슷한 사례에 대한 대응도 달라질 것이다. 한 번 죗값을 치른 이에게 사회는 어느 정도의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 그 균형점을 찾는 일이야말로 남겨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