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집중 읽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뉴스를 보다 11월 둘째주] 청년 주거 불평등

기사 듣기

2025년 11월 12일 서울에서 청년월세 한시 특별지원사업이 있어도 정작 많은 청년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 20만원이라는 숫자로 환산된 지원 제도와 매달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실제 방값 사이의 간극을 보며, 우리는 복지 정책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당장 내 옆 청년의 방 하나를 지킬 힘이 있는지부터 묻게 된다.

이 사업의 출발점은 분명했다. 2022년 국토교통부가 시작한 청년월세 한시 특별지원사업은 19세에서 34세 사이 무주택 청년 가운데 부모와 따로 사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보증금 5000만원 이하, 월세 60만원 이하 주택에 거주할 경우 최대 24개월 동안 매달 2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고금리와 고물가로 생활비가 치솟는 상황에서 급증하는 청년 1인 가구의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였고, 정부는 올해 이 제도를 한시가 아닌 상시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의 숫자는 다르게 말한다. 2025년 기준 이 사업에 신청할 수 있는 청년가구의 소득 상한은 기준 중위소득 60퍼센트, 1인 가구 기준 약 143만5000원 수준이다. 사실상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일자리만 가진 청년, 혹은 학생에 가까운 이들에게만 문이 열려 있는 셈이다. 강원도에서 월세를 내며 일하는 25세 직장인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지만 청년가구 중위소득 100퍼센트라는 이유로 탈락했다. 월급에서 월세와 생활비를 빼면 저축은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지만, 서류상 소득은 이미 제도 밖에 있었다.

신청과 선정 과정에서도 제도의 그림자는 뚜렷하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2022년 8월 이후 청년월세 지원사업에 신청한 청년은 약 49만5000명이었지만, 실제로 지원을 받은 사람은 16만4000명 정도, 신청자의 33퍼센트에 그쳤다. 탈락 사유 대부분은 소득과 재산 기준 미충족이었다. 하루 8시간, 주 5일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청년도 기준 중위소득 60퍼센트를 넘는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제도가 겨냥한 대상은 저소득 청년이지만, 현실에서 지원에서 밀려난 이들은 오히려 현재 노동시장 최전선에서 버티는 청년들이다.

정보의 장벽은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이 사업을 알게 된 경로를 묻는 질문에 상당수 청년이 정부의 안내가 아니라 지인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우연히 접했다고 답했다. 중앙정부 사업, 광역자치단체 사업, 기초자치단체 사업, 서울시 청년월세지원 같은 다른 이름의 제도가 뒤섞여 소개되면서, 누가 어디에 어떤 순서로 신청해야 하는지조차 헷갈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결과 복지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고 서류를 꼼꼼히 챙길 수 있는 일부가 제도의 문턱을 넘고, 그렇지 못한 다수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정책이 정작 정책 언어를 읽을 수 있는 청년을 골라내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 장면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한 권의 책이 떠오른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1937). 오웰은 영국 북부 탄광도시의 하숙집과 탄광 막장으로 직접 들어가, 산업도시 노동계급의 삶을 기록한 르포르타주를 남겼다. 책의 전반부는 축축한 벽과 좁은 방,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서로 몸을 붙이고 자는 가족, 갚을 길 없는 외상값에 갇힌 사람들의 일상을 집요하게 묘사한다. 후반부에서는 이런 현실과 거리를 둔 채 노동계급을 논하는 중산층 지식인의 시선을 비판하며, 사회주의가 왜 노동자들 자신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는지 되묻는다.

이 책과 오늘의 청년 월세 지원 논란은 몇 가지 지점에서 겹친다. 첫째, 오웰이 가난의 핵심을 주거 문제에서 찾았듯 한국 청년들의 삶에서도 방 한 칸은 빈곤을 확대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둘째, 당시 영국의 구빈 정책이 실제 노동자의 체감과 어긋나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복지 체계 역시 부모 소득과 재산이라는 기준으로 청년을 분류하며 가장 불안정한 이들을 놓치고 있다. 셋째, 위건의 현실을 직접 보지 않는 지식인의 시선은, 정책의 설계와 성과 지표에 집중한 채 방값 고지서를 붙잡고 서 있는 청년의 얼굴을 충분히 보지 못하는 행정의 시선과 닮아 있다. 책 속 문장을 빌리면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숫자와 기준을 아무리 다듬어도, 방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한 달을 버티는 경험은 여전히 가난의 몸속 감각으로 남는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청년주거, 복지정의, 정책신뢰라는 세 단어로 모아볼 수 있다. 청년주거는 더 이상 취업 전 잠시 머무는 임시 거처가 아니라 취업 후에도 수년간 이어지는 생애 단계가 되었고, 이 시기 주거비 부담의 정도가 삶의 궤적을 갈라놓는다. 복지정의는 더 취약한 사람에게 더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는 원칙이지만, 지금의 소득 기준은 최저임금을 버는 다수를 제도 밖으로 밀어낸다. 정책신뢰는 지원에서 탈락한 청년들이 느끼는 배신감 속에서 금이 간다. 월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더 하면 소득 기준을 넘고, 부모의 소득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험을 반복할수록, 청년에게 복지는 나를 돕는 제도가 아니라 나를 선별하고 배제하는 장치로 다가온다.

11월 둘째 주에 보도된 이 월세 지원 논란은 한 사업의 설계 미비를 넘어, 우리 사회가 청년의 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드러낸다. 예산과 사업명은 늘어도 여전히 많은 청년이 월세 고지서 앞에서 혼자 싸우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부터 고쳐야 하는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집을 줄이는 일은 복지 기준표를 조금씩 손보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방 한 칸 때문에 내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함께 떠올릴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제도의 성공은 발표 자료의 숫자가 아니라, 오늘 저녁 청년이 사는 방의 온도로 측정된다는 사실을 잊는 순간 복지는 이름만 남고 사람은 사라진다.

전국 청년(만 19-34세) 월세 부담률 추이
출처: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