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11월을 저작권 축제의 달로 선포하고 한 달 동안 전국에서 저작권 인식 제고 캠페인과 행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창작을 존중하고 보호하자는 이 선언을 보며, 우리는 그 축제의 빛이 어디까지 닿고 있는지, 또 어디까지 닿지 못하고 있는지를 오늘의 문제로 다시 묻게 된다.
이번 선포식은 올해 초부터 이어진 저작권 보호 캠페인의 연장선에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보호원이 발표한 연차보고서를 보면, 2024년 기준 국내 불법복제물 이용률은 19.1퍼센트,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여전히 불법 콘텐츠를 이용한다. 2020년 20.5퍼센트에서 2021년 19.8퍼센트, 2022년 19.5퍼센트, 2023년 19.2퍼센트로 조금씩 내려왔지만, 19퍼센트 아래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특히 영화, 게임, 웹툰, 음악, 출판 순으로 불법 복제가 많이 발생하고, 그 이유로는 무료거나 매우 저렴해서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다. 저작권 축제의 달은 이런 숫자 앞에서, 법과 단속만으로는 바꾸기 어려운 인식의 벽을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숫자는 또 다른 현실을 드러낸다.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불법 웹툰으로 인한 피해는 2022년 이후 2년 동안 8400억원에 이르렀고, 이는 같은 기간 웹툰 산업 전체 규모 2조1890억원의 20퍼센트에 해당한다. 주요 불법 웹툰 사이트 몇 곳의 연간 조회수는 42억건을 넘고, 순 방문자 수가 4억명 가까이 집계됐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지난 한 해 해외에서 불법 유통된 K콘텐츠는 4억1400만건, 해외 저작권 침해 사이트에 올라온 콘텐츠 중 K콘텐츠 비중은 2022년 15퍼센트에서 2024년 17.5퍼센트로 계속 늘었다. 정부와 보호기관이 저작권 인식 개선 예산을 2023년 3억5000만원에서 2024년 17억원으로 다섯 배 이상 늘렸지만, 불법복제 이용률은 완만한 하락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이번 11월의 선포는 단순한 캠페인이라기보다, K콘텐츠 성공 신화의 이면을 드러내는 계기다. BTS와 K드라마, 웹툰과 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만큼, 이들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과 불법 유통도 국제화·지능화·다변화되고 있다. 정부는 국제 포럼을 열어 각국과 법 집행 협력을 강화하고, ‘콘텐츠 소비는 정당하게, 이용은 당당하게’ 같은 표어를 내세우며 학교, 극장,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인식 개선을 시도한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창작자의 포털 수익 배분 구조, 플랫폼의 알고리즘, 글로벌 사업자의 계약 관행까지 함께 손보지 않는다면, 저작권 축제의 달은 창작자보다 정책 홍보의 무대가 될 위험도 안고 있다.
이 지점에서 떠올릴 수 있는 책이 있다. 자유문화 로런스 레식(2005). 미국의 법학자 레식은 이 책에서 지난 수십 년간 저작권이 어떻게 기간과 범위, 규제 강도를 넓혀 오면서 문화 전체를 ‘허가받아야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왔는지 추적한다. 그는 나폴레옹 서적과 헐리우드 영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인터넷 공유 사이트의 사례를 넘나들며, 문화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도입된 강력한 규제가 역설적으로 새로운 창작과 혁신을 막는 구조를 비판한다. 중요한 것은 저작권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권리와 사회 전체의 문화적 자유 사이에서 합리적인 균형을 다시 설정하자는 제안이다.
자유문화와 11월 저작권 축제의 달은 몇 가지 지점에서 교차한다. 첫째, 레식이 지적하듯 저작권은 원래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일정 기간 이후에는 공공의 영역, 공공재로 돌아가도록 설계된 제도였다. 오늘 우리가 불법복제를 막겠다는 이름으로 도입한 기술적 보호조치, 강력한 형사처벌, 플랫폼 책임 강화는 이 원래의 균형을 어디까지 유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기울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둘째, 레식은 거대 미디어 기업이 저작권을 방패로 삼아 새로운 기술과 표현 방식을 통제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플랫폼 기업이 저작권 계약과 알고리즘을 통해 수익 구조를 좌우하고, 개별 창작자와 독립 제작자는 그 틈에서 협상력을 잃기 쉽다. 셋째, 레식이 강조한 공정 이용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같은 대안적 라이선스는, K콘텐츠의 성공을 누리면서도 팬아트, 밈, 리믹스 등 2차 창작의 활기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저작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어떤 영역에서는 자유를 넓히는 이중의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레식의 책 속 한 문장을 이렇게 바꿔 적어볼 수 있다. 창작은 공짜가 아니다. 이 짧은 인용은 거대 기업의 투자와 마케팅 비용만이 아니라, 새벽까지 콘티를 고치고, 계약서 한 줄을 두고 몇 번씩 메일을 주고받는 창작자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불법복제는 이 시간에 값을 매기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동시에 플랫폼의 수익 구조와 정당한 보상 시스템이 충분히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저작권 축제의 달이 진정한 축제가 되려면, 창작자는 자신의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는다는 감각을, 이용자는 내가 지불한 비용이 실제 창작자의 삶을 지탱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오늘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저작권, 공정 이용, 플랫폼 권력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수렴된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생계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지만,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정보 접근권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공정 이용은 교육과 비평, 패러디와 연구를 위해 꼭 필요한 완충지대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며 현장의 교사와 연구자, 창작자에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플랫폼 권력은 알고리즘과 수익 배분 규칙을 통해 어떤 저작물이 전 세계에 도달할지, 어떤 저작물이 불법 유통의 표적이 될지를 사실상 결정한다. 저작권 축제의 달이 이 세 가지 문제를 함께 다루는 공론장이 될 수 있다면, 비로소 ‘축제’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의미를 얻을 것이다.
11월 첫째 주, 세종에서 울린 저작권 축제의 달 선언은 창작이 존중받는 사회를 향한 다짐과 동시에, 여전히 그 다짐을 시험하는 숫자들 앞에 선 고백이기도 하다. 우리는 앞으로 K콘텐츠의 세계적 인기를 이야기할 때, 그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저작권 침해와 보상의 불균형까지 함께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축제의 구호를 넘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콘텐츠를 보고, 어떻게 지불하며, 무엇을 공유할 것인지 묻는 일은 결국 우리 각자의 몫이다. 권리를 지키는 축제는, 타인의 시간을 공짜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작은 결심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