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세계와 스크린 사이
10월 5째주 · 2025
[10월 4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폭주하는 시장, 닫힌 눈
영화로 세상을 보다

[10월 4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폭주하는 시장, 닫힌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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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아침, 뉴욕 증권거래소 개장 종이 울리자마자 매도 주문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불과 몇 분 사이 수백만 주가 거래되며 호가가 순식간에 무너졌고, 거래량은 당시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날은 곧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로 불리게 된다. 대형 은행가들이 바닥을 받치려 대량 매수에 나서며 장 마감 지수는 간신히 버텼지만, 이미 공포는 시장 전체로 번져 있었다. 불과 며칠 뒤 찾아온 ‘검은 화요일(Black Tuesday)’까지 포함해 이 연속적인 붕괴는 10년에 이르는 대공황의 서막이 됐고, 이후 세계 곳곳의 실업과 파산, 기근과 정치적 격변은 “차트의 급락선”이 아닌 수천만 명의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10월 넷째 주의 이 사건은, 금융 그래프 몇 줄이 무너지는 순간이 곧 문명의 마찰열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잔혹하게 증명한 예였다.

검은 목요일이 던지는 질문은 “주가가 왜 떨어졌는가”를 넘어간다. 1920년대 미국과 유럽의 증시는 대출을 끌어다 투자하는 ‘마진 거래’와 거품 기대에 휩싸여 있었고, 사람들은 주가 상승을 영원한 약속처럼 믿었다. 그러나 1929년 이후 몇 년 사이 세계 실질 GDP는 약 15% 줄어들고, 미국 경제는 30% 가까이 수축했다는 추정이 반복해서 제시된다. 미국에서만 1933년 실업률이 25% 안팎까지 치솟았고, 수천 개 은행이 문을 닫았다. 투기적 낙관과 레버리지의 축제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빚과 실업, 신뢰의 붕괴였다. “시장이 항상 옳다”는 신념, “위험은 분산된다”는 금융공학의 논리는 위기가 닥치는 순간 순식간에 거꾸로 뒤집혔다. 검은 목요일은 개별 투자자의 실패 이야기가 아니라, 이윤 추구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생존 구조와 직결돼 있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누가 가장 먼저 희생되는지를 묻는 철학적 사건이었다.

이 질문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던지는 영화가 있다. 아담 매케이 감독의 〈돈 룩 업〉(Don’t Look Up, 2021, 아담 매케이, 138분, 정치 풍자 블랙코미디,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 후보·미국작가조합상 각본상 수상)은 언뜻 보면 금융이 아니라 기후·과학을 다룬 영화다. 두 천문학자가 지구와 충돌 궤도에 들어선 거대한 혜성을 발견하지만, 대통령과 참모, 방송사는 이를 ‘여론 관리용 콘텐츠’ 정도로 취급한다. 과학적 경고는 토크쇼의 농담과 밈, 여론조사 숫자에 가려지고, 혜성 충돌조차 “광물 채굴 기회”로 재정의된다. 지구 최후의 날이 다가오는데도 사람들은 주식 차트와 팔로워 수, 인플레이션 수치를 걱정하며 “위로 보지 말라”는 구호를 따라 외면을 선택한다.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은 세계의 종말이 아니라, 그 종말 앞에서조차 기존 이익 구조와 정치적 계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과 제도의 초조한 몸짓을 따라간다.

 

검은 목요일과 〈돈 룩 업〉이 만나는 지점은, 둘 다 “눈앞의 위기를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할 때” 시스템이 어떻게 파국으로 폭주하는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1929년 가을에도 이미 일부 경제학자와 언론은 주가 급등과 신용 팽창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의 다수는 “이번에는 다르다”고 믿으며 레버리지를 더 밟았다.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TV 스튜디오에서 비명을 지를 때, 사회는 그 비명을 ‘과장된 연기’로 소비하는 〈돈 룩 업〉의 장면은, 검은 목요일 전날까지 이어진 ‘마지막 랠리’의 낙관주의와 묘하게 겹친다. 영화 속 대통령이 지지율과 선거를 이유로 혜성 대응을 미루는 모습은, 1920년대 정책당국이 투기 규제와 신용 축소 결정을 미루며 “조금만 더 가보자”고 했던 정치·금융 엘리트의 태도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두 세계 모두에서 진짜 위기는 숫자의 붕괴보다, 위험을 감지하고도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라며 침묵하는 사람들의 연쇄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세계는 1929년과 너무도 다르면서, 동시에 섬뜩할 만큼 비슷한 풍경을 보여준다. 팬데믹 이후 유동성이 풀리며 기술주와 부동산, 암호화폐 시장에 거품 논란이 반복되었고, 각국의 부채와 자산 가격은 이미 역사적 고점을 경신했다. 1929년 대공황의 지표들—예컨대 몇 년 사이 30% 안팎의 GDP 수축과 두 자릿수 후반의 실업률—은 더 이상 교과서 속 숫자가 아니라, 팬데믹 직후 일부 국가에서 실제로 상상되었던 시나리오였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시장은 여전히 “성장의 재개”와 “소프트랜딩”의 언어를 우선시한다. 〈돈 룩 업〉이 기후 위기를 혜성에 비유했다면, 금융위기와 부채 폭발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혜성일 수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는 궤도를 두고 전문가들이 경고해도, 우리는 차트와 헤드라인 위에 ‘웃긴 짤’을 덧씌우며 현실감을 희석시키는 데 익숙해져 있다.

결국 10월 넷째 주의 검은 목요일은 “시장이 붕괴하면 어떻게 되는가”가 아니라, “붕괴의 신호를 보았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돈 룩 업〉의 마지막 식탁 장면에서, 주인공들은 세상이 끝나기 직전 “우리는 정말 끝까지 노력했을까”를 조용히 되묻는다. 1929년의 투자자와 오늘의 정책당국, 그리고 화면 앞의 우리 역시, 비슷한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거품과 위기의 징후는 언제나 사후에는 분명해 보이지만, 당대에는 늘 “지나친 비관론”으로 치부된다. 그렇다면 당신이 만약 다음 검은 목요일의 전날, 혹은 영화 속 혜성이 처음 포착된 날에 서 있다면, 주위를 향해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시장의 낙관과 조롱을 뚫고 “위로 보라”고 외칠 용기를, 우리는 어디서부터 길러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