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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다 2월 둘째주] 35년 된 헬기, 퇴역 2년을 남기고 하천에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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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9일 오전,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리 앞 하천에 육군 공격헬기 한 대가 곤두박질쳤다. 조종사 두 명이 숨졌다. 헬기는 도입한 지 35년 된 노후 기종이었다. 퇴역까지 2년을 남겨두고 벌어진 이 사고 앞에서, 낡은 장비 위에 올라타야 하는 군인의 안전을 누가 책임지느냐는 물음이 다시 고개를 든다.

추락한 기체는 육군 제15항공단 소속 AH-1S 코브라 공격헬기다. 1991년 미국에서 들여온 이 헬기는 누적 비행시간만 4500시간에 이른다. 사고 당일 헬기는 오전 9시 45분께 기지를 떠나 비상절차훈련에 들어갔다. 엔진이 멈추는 상황을 가정하고 출력을 낮춘 뒤 비상착륙을 익히는 훈련이다. 실제로 엔진을 끄지는 않는다. 그런데 11시 4분쯤, 기지에서 800m가량 떨어진 하천 위로 헬기가 떨어졌다. 50대 주조종사와 30대 부조종사, 두 준위 모두 민간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끝내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육군은 이튿날 심사위원회를 열어 순직을 확정했고, 오는 12일 육군장을 치른다.

코브라 헬기는 베트남전의 산물이다. 베트콩의 대공화기에 미군 수송헬기 피해가 급증하자, 미국이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이 공격헬기였다. 전장 16.2m, 최고 시속 약 350km, 대전차 토우 미사일 최대 8발을 달 수 있어, 한국군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70대를 들여와 북한 기갑전력을 막는 방패로 삼았다. 그러나 미 육군은 이미 2001년에 코브라를 전량 퇴역시켰고, 2002년에는 부품 수출마저 끊겼다. 한국은 국산 소형무장헬기 사업으로 2021년부터 2027년 사이에 코브라를 걷어낼 계획이었지만, 개발이 밀리면서 퇴역 시점도 2028년에서 2031년 사이로 미뤄졌다. 대체 기종인 소형무장헬기 미르온 1호기가 육군에 넘어온 것은 2024년 12월, 불과 석 달 전 일이다. 160여 대 전력화를 끝내려면 2031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그 빈 시간이다. 부품 생산은 20년 넘게 끊겼고, 기체는 30년을 훌쩍 넘겼는데, 대체 전력은 아직 손에 쥔 것이 몇 대 되지 않는다. 그 공백 위에서 훈련을 계속하는 것은 사람이다. 예산과 사업 일정이 맞물려 퇴역이 미뤄질 때마다 위험을 떠안는 것은 관료도, 정치인도, 방산업체도 아닌 조종석에 앉은 군인이라는 사실을 이번 사고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사고가 터질 때마다 동일 기종 운항을 멈추고, 사고대책본부를 꾸리고, 원인을 조사하겠다는 발표가 반복될 뿐, 노후 전력 운용의 구조적 판단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교체 사업이 늦어지면 퇴역도 함께 늦추는 관행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비슷한 비보는 또 올 수 있다.

430여 년 전, 비슷한 질문을 던진 기록이 있다. 《징비록》 류성룡(1604)은 임진왜란 7년의 참상을 영의정의 눈으로 복기한 전쟁 회고록이다. 200년 가까운 태평에 젖어 성곽은 허물어지고 군적은 텅 비었는데, 조정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오판 속에 시간을 흘려보낸 경위를 류성룡은 낱낱이 적었다. 이 책과 가평의 추락 사고가 만나는 지점은 세 갈래다. 하나, 위기를 예고하는 징후가 뚜렷했음에도 대비를 미룬 국가의 태만. 둘, 그 대가를 치른 것이 결국 일선의 병사와 백성이었다는 점. 셋, 사후에야 반성하고 기록하지만 같은 구조가 되풀이된다는 역설. 류성룡은 시경의 한 구절을 빌려 책 이름을 지었다.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삼간다. 이 열여섯 글자가 품은 뜻은 간명하다. 아픔을 겪고 나서 뉘우치는 것은 누구나 하되, 그 뉘우침을 제도로 바꾸어 같은 아픔을 막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코브라 헬기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1988년과 하천에 떨어진 2026년 사이 38년의 간극 속에 이 교훈이 얼마나 작동했는지 돌아보면, 징비록의 문장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겨냥한다.

노후 전력 교체라는 말은 방위사업 용어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군인의 안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 들어 있다. 국방 준비라는 개념 역시 적을 향한 무장만을 뜻하지 않는다. 아군이 안전하게 훈련하고 작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일이 국방 준비의 출발이다. 사업이 지연되면 퇴역을 미루고, 퇴역을 미루면 노후 기체 위에서 사람이 비행을 계속하는 이 고리를 끊으려면, 전력 공백을 메우는 속도와 인명 위험 사이에서 어디에 기준을 놓을 것인지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 없이는 순직이라는 이름만 되풀이될 뿐이다.

가평 하천가에 부서진 코브라의 잔해는 묻는다. 우리는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삼가고 있는가. 기록은 쉽고 반성도 어렵지 않으나, 고치는 일만은 언제나 늦다.

한국 군용 헬기 기령별 보유 현황
출처: 국정감사 국정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