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3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오는 5월 9일 종료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세 차례나 연장해온 유예를 정말 거두느냐, 아니면 또 한 번 물러서느냐. 서울에서 내 집 없이 버티는 청년 100만 가구가 그 답을 지켜보고 있다.
발단은 1월 23일이다. 이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다주택자를 향해 버티는 것보다 파는 쪽이, 늦게보다 일찍 파는 쪽이 유리하다는 글을 올렸다. 열흘 넘게 매일 부동산 메시지가 이어졌고, 2월 3일 국무회의에서 공식 선언으로 굳어졌다. 골자는 간단하다. 2022년 5월 10일 시행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세 차례 연장해왔으나, 이번에는 5월 9일 예정대로 끝낸다. 유예가 풀리면 조정대상지역 안의 주택을 파는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20%p가, 3주택자 이상은 30%p가 더 붙는다. 이튿날인 4일에는 다주택자의 눈물은 보이면서 청년의 피눈물은 왜 안 보이냐는 말까지 덧붙였다.
시장은 곧바로 움직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첫째주 서울 동남권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1.9로 2주 연속 떨어져 21주 만의 최저치를 찍었다. 강남 잠실 엘스 호가가 3000만원, 반포 래미안원베일리 써밋이 1000만원 내렸다. 강남 3구에서 70대 이상 매도자 수는 전달 대비 50.7% 늘었고, 한겨레·NBS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1%가 유예 종료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대통령의 압박이 매물을 끌어내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역대 정부마다 투기를 잡겠다며 칼을 빼들었으나, 중과를 예고하고도 번번이 유예를 늘린 전례가 쌓이면서 시장에는 이번에도 결국 물러서지 않겠느냐는 학습 효과가 단단히 박혀 있다. 유예 조치 자체가 세 차례 연장의 산물이라는 점이 이 정부의 선언에도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공급 쪽 숙제도 만만치 않다. 서울의 올해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4462호로, 지난해 4만6710호의 절반 수준이다. 세금으로 수요를 눌러도 공급이 따라오지 않으면 풍선의 다른 쪽이 부풀 뿐이다. 결국 시장을 설득하는 것은 열 번의 예고가 아니라 한 번의 이행이다.
이 국면 앞에서 한 편의 소설이 겹쳐 보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1978)는 1970년대 서울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난장이 가족이 재개발 철거 계고장을 받고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이야기다. 수도 파이프 수리공인 아버지, 인쇄소에 다니는 어머니, 세 남매가 버티는 집에 어느 날 이십일 안에 자진 철거하라는 종이 한 장이 날아든다. 입주권을 받아도 목돈이 없어 되팔 수밖에 없는 구조, 그 입주권을 사들여 이득을 챙기는 사람은 따로 있는 구조. 이 소설이 그린 1970년대의 풍경과 오늘의 부동산 논쟁은 두 갈래에서 맞닿는다. 하나, 집이라는 것이 투자 자산이 되는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밀려난다는 점이다. 난장이 가족이 재개발에 밀려났듯, 지금 수도권 39세 이하 무주택 가구 204만여 가구가 집값 앞에서 밀려나고 있다. 둘, 정책이 약속한 낙원은 정작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소설 속 동네 이름이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날카로운 반어다. 조세희는 썼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그 전쟁은 1978년에 끝나지 않았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집을 둘러싼 싸움은 반세기가 지난 2026년에도 누군가의 일상이다.
주거 안정, 세대 간 공정, 정책의 일관성. 이 세 가지를 떼어놓고는 어느 하나도 풀 수 없다. 서울의 20대와 30대 무주택 가구주가 100만에 육박한다는 숫자는 집이 자산 증식의 도구로만 굴러온 세월의 결산서다. 세제로 수요를 누르겠다는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들어갈 집이 부족하면 가격은 다른 경로로 오른다. 동시에, 세 번이나 유예를 늘려놓고 이번에는 진짜라고 말하는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얻으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이 먼저여야 한다. 정책이 흔들릴수록 투기 심리는 되레 굳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다.
낙원구 행복동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질문은 남아 있다. 이 도시에서 일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이 이 도시에 살 집을 가질 수 있는가. 약속은 누구나 하되, 지키는 일에서 정치의 진위가 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