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 미국 뉴멕시코의 황량한 사막 지대에 극비 연구소가 들어섰다. 로스앨러모스라 불린 이곳에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과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비밀 계획에는 13만 명의 인력과 20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1945년 7월 16일 새벽 5시 29분, 트리니티 실험장에서 최초의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섬광과 함께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는 것을 지켜본 오펜하이머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구절을 떠올렸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미국 원폭 개발 맨해튼 프로젝트.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맨해튼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조속한 종결이라는 명분 아래 추진되었다. 나치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미국 정부를 움직였다. 아인슈타인의 편지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과학과 국가권력이 결합한 전례 없는 사례였다. 과학자들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과 애국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발견이 가져올 파괴력을 알면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21만 명이 희생된 후, 많은 과학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자들은 죄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Oppenheimer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의 내면을 3시간에 걸쳐 집요하게 파헤친다. 킬리언 머피는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영화는 시간을 뒤섞으며 세 가지 시점을 오간다. 맨해튼 프로젝트 진행 과정, 전후 보안 청문회, 그리고 정치적 숙청의 과정이다. 놀란은 IMAX 카메라로 원폭 실험의 장엄함과 공포를 동시에 담아낸다. 특히 트리니티 실험 장면에서는 CGI 없이 실제 폭발을 촬영하여 압도적인 현장감을 전달한다. 영화는 과학적 성취의 환희와 도덕적 파멸의 공포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인간의 초상이다.
Oppenheimer (2023),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적 사건과 영화는 권력과 지식의 위험한 결합이라는 주제를 공유한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과학이 정치에 종속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었다. 놀란의 영화는 이를 개인의 비극으로 치환한다. 오펜하이머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불은 문명을 파괴할 수 있는 지옥불이었다. 영화는 냉전 시대의 매카시즘을 통해 창조자가 어떻게 희생양이 되는지 보여준다. 과학자의 양심과 국가 안보라는 명분이 충돌할 때, 개인은 언제나 패배한다. 놀란은 이를 흑백과 컬러, 주관과 객관의 대비를 통해 시각화한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유산은 21세기에도 계속된다. 핵무기 확산, 원자력 발전소 사고, 그리고 최근의 AI 개발 경쟁까지, 과학기술과 윤리의 긴장은 반복된다. 오펜하이머가 겪은 딜레마는 오늘날 AI 연구자들이 직면한 고민과 다르지 않다. 기술의 잠재력과 위험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여전히 난제다. Oppenheimer는 이러한 보편적 질문을 개인의 서사로 풀어낸다. 영화는 묻는다. 지식의 추구는 그 자체로 선한가? 과학자는 자신의 발견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가?
트리니티 실험 후 오펜하이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제 손에는 피가 묻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트루먼은 손수건을 건네며 "피는 내 손에 묻어 있소"라고 답했다. 이 일화는 책임의 소재를 묻는다. 과학자와 정치인, 그리고 이를 묵인한 시민들 중 누가 진정한 책임자인가? 놀란의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한 천재 과학자의 영광과 몰락을 통해 인간 조건의 비극성을 드러낼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오펜하이머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이 약속하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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