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4월 24일,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아르메니아 지식인 25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날은 후에 '붉은 일요일'로 불리며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 되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 내무장관 탈라트 파샤가 주도한 이 체계적인 학살은 1923년까지 이어져 약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생존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막을 건너고, 이웃의 도움을 받고, 때로는 신분을 숨기며 살아남았다. 특히 시리아의 데르 에조르로 강제 이주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이들의 증언은 오늘날까지 역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생존.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혼란 속에서 오스만 제국은 내부의 '적'을 제거하려 했다. 청년 투르크당 정부는 아르메니아인들을 러시아와 내통하는 반역자로 규정했고, 이는 조직적인 추방과 학살로 이어졌다. 남성들은 즉결 처형되거나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고, 여성과 아이들은 시리아 사막으로 죽음의 행진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터키인, 쿠르드인, 아랍인들이 목숨을 걸고 아르메니아인들을 숨겨주었다. 또한 독일 선교사들과 미국 외교관들이 이 참상을 세계에 알리려 노력했다.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도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었음을 보여준다.
파티 아킨 감독의 The Cut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한 남자의 여정을 그린다. 대장장이 나자렛은 터키 군인들에게 끌려가 목을 베일 위기에 처하지만, 칼날이 성대만 손상시켜 말을 잃은 채 살아남는다. 타하르 라힘이 열연한 나자렛은 이후 죽음의 사막을 건너고, 레바논과 쿠바를 거쳐 미국까지 떠나며 생이별한 딸들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138분 동안 침묵의 주인공을 통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과 고통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아킨 감독은 자신의 터키계 독일인 정체성을 바탕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려 시도하며, 학살의 참상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도 빛났던 인간의 연대를 포착한다.
The Cut (2014), 파티 아킨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 속 생존자들과 영화 속 나자렛의 여정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실제로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가족을 찾아 대륙을 넘나들었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기적적으로 재회하기도 했다. 영화는 이러한 실제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오디세이를 통해 집단학살의 보편적 비극을 드러낸다. 나자렛이 잃어버린 목소리는 역사 속에서 침묵당한 수많은 희생자들의 은유가 되고, 그의 끈질긴 생존 의지는 인간 존엄성의 불굴함을 상징한다. 아킨 감독은 할리우드식 영웅 서사 대신 느리고 고통스러운 일상의 연속을 통해 생존 그 자체가 얼마나 위대한 저항인지를 보여준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여전히 논쟁적인 역사다. 터키 정부는 오랫동안 이를 '제노사이드'로 인정하지 않았고, 국제사회의 인정도 더뎠다. 그러나 생존자들과 그 후손들의 끈질긴 증언, 그리고 The Cut 같은 예술작품들이 침묵의 역사에 목소리를 부여하고 있다. 2015년 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를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라 규정했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021년 공식적으로 제노사이드로 인정했다. 이는 단순한 과거사 정리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전 세계의 인종청소와 집단학살을 막기 위한 역사적 교훈이다.
나자렛이 영화 마지막에 도달한 노스다코타의 황량한 평원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잃어버린 고향 아나톨리아와 닮아있다. 그곳에서 그는 딸을 찾지만, 이미 모든 것이 변해버린 후다. 생존은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을 껴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용기임을 영화는 말한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민족과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가자, 미얀마, 수단에서 벌어지는 비극들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류는 과연 아르메니아 대학살로부터, 그리고 나자렛의 침묵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10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여전히 논쟁적인 역사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the_cut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