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9월, 아일랜드 서부 메이요 카운티의 한 농부가 감자밭에서 검게 썩어가는 감자를 발견했다. 이것은 단순한 농작물 병충해가 아니었다. 향후 7년간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200만 명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대기근(An Gorta Mór)'의 시작이었다. 감자 역병균(Phytophthora infestans)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지만, 유독 아일랜드만이 참혹한 비극을 맞았다. 인구의 3분의 1이 감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아일랜드 소작농들에게, 이 병충해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아일랜드 대기근.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대기근의 참상은 자연재해를 넘어선 정치적 재앙이었다. 영국 정부는 자유방임주의 경제 원칙을 고수하며 구호를 최소화했다. 찰스 트레블리언 재무차관은 "기근은 신의 섭리"라며 아일랜드인들의 도덕적 타락을 탓했다. 더 잔인한 것은 기근 중에도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의 곡물 수출이 계속됐다는 사실이다. 토지를 소유한 영국인 지주들은 소작료를 내지 못한 농민들을 대거 쫓아냈고, 1849년 한 해에만 5만 가구가 강제 퇴거당했다. 기근은 800년 식민 지배의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결과였다.
랜스 데일리 감독의 Black '47은 대기근이 절정에 달한 1847년을 배경으로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군으로 복무하던 아일랜드인 페니(제임스 프레체빌)가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맞은 것은 텅 빈 집과 죽은 가족들이었다. 형은 소작료를 내지 못해 교수형을 당했고, 어머니는 굶어 죽었으며, 조카들은 구빈원으로 끌려갔다. 페니는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영국 관리들을 하나씩 찾아 복수를 시작한다. 영화는 서부극의 형식을 빌려 한 남자의 복수극을 그리지만, 그 안에는 식민지 아일랜드의 참혹한 현실이 생생히 담겨 있다.
Black '47 (2018), 랜스 데일리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와 역사는 '침묵당한 자들의 분노'라는 지점에서 만난다. 대기근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저항할 언어조차 빼앗긴 상태였다. 영국의 형법은 게일어 사용을 금지했고, 가톨릭 신자들은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했다. Black '47의 페니가 게일어로만 말하는 것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그것은 빼앗긴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다. 역사 속 익명의 희생자들이 영화 속에서 총을 든 전사로 부활한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그런 통쾌한 복수는 없었다. 대부분은 침묵 속에 죽어갔고, 살아남은 자들은 바다를 건너 이민자가 되었다.
대기근의 상처는 여전히 아일랜드 사회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2018년 더블린 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레오 바라드카는 인도계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의 당선사에서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온 이민자"라고 말했을 때, 청중들은 170년 전 조상들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늘날 전 세계 7천만 아일랜드계 디아스포라는 그 비극의 살아있는 증거다. 한편 21세기에도 예멘, 남수단,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기근이 계속되고 있다. 풍요의 시대에도 굶주림은 여전히 정치적 무기로 사용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아일랜드 대기근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어떻게 재난을 악용하는지, 구조적 불평등이 어떻게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Black '47의 페니처럼 총을 들 수는 없어도, 우리는 여전히 질문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검은 47년'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누가 침묵당하고 있으며, 누가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인가?

![[11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는 '침묵당한 자들의 분노'라는 지점에서 만난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black_47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