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8월, 쿠바 해안에서 뗏목을 타고 플로리다로 향하던 수만 명의 쿠바인들이 미국 해안경비대에 의해 구조되었다. '발세로스(Balseros)' 사태로 불린 이 대규모 탈출은 소련 붕괴 이후 극도로 악화된 쿠바 경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처음으로 국민들의 자유로운 출국을 허용했고, 급조된 뗏목에 몸을 실은 3만 5천여 명의 쿠바인들은 90마일의 플로리다 해협을 건너는 위험한 여정에 나섰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되어 긴 심사 과정을 거쳐야 했다.
쿠바 망명과 정체성.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발세로스 사태는 단순한 경제 난민의 탈출이 아니었다. 이는 쿠바 혁명 이후 35년간 지속된 사회주의 체제의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떠난 이들은 주로 젊은 세대와 지식인들이었고, 이들의 이탈은 쿠바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남은 가족들은 떠난 이들을 '구사노스(벌레들)'라고 부르며 배신자로 낙인찍어야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들의 안전을 빌었다. 이 집단 탈출은 쿠바인들에게 '떠남'과 '남음', '배신'과 '충성'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보여주었다.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 감독의 Strawberry and Chocolate은 1979년 하바나를 배경으로 동성애자 예술가 디에고와 혁명에 충실한 청년 다비드의 우정을 그린다. 디에고는 쿠바의 문화적 획일성에 숨막혀하며 망명을 꿈꾸는 인물이다. 그는 금지된 서구 문학을 읽고, 종교적 조각품을 수집하며, 딸기 아이스크림을 즐긴다. 초콜릿만 먹는 다비드는 처음엔 디에고를 감시하려 했지만, 점차 그의 예술적 감수성과 인간적 따뜻함에 마음을 연다. 호르헤 페루고리아의 섬세한 연기는 떠나야만 하는 자의 비애를 깊이 있게 전달한다.
Strawberry and Chocolate (1993),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 감독. ⓒ Production Company
발세로스들의 절박한 탈출과 디에고의 강요된 망명은 본질적으로 같은 비극을 담고 있다. 두 경우 모두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체제가 만들어낸 배제의 결과다. 영화 속 디에고가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지만, 이 나라는 나를 원하지 않아"라고 말하듯, 발세로스들 역시 조국을 사랑하면서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떠나는 자뿐 아니라 남는 자의 상실감도 섬세하게 포착한다. 다비드가 느끼는 공허함은 발세로스 사태 이후 쿠바에 남은 이들의 감정을 대변한다.
오늘날 쿠바에서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떠나고 있다. 2022년에만 30만 명이 넘는 쿠바인들이 미국 국경을 넘었다. 경제 제재와 팬데믹으로 더욱 악화된 상황 속에서,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으로 바깥세계를 보며 새로운 형태의 '발세로스'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뗏목이 아닌 비행기를 타고, 관광객을 가장해 떠난다. 떠남의 방식은 변했지만, 정체성의 분열과 상실의 아픔은 여전하다.
망명은 단순히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정체성의 영원한 균열이다. Strawberry and Chocolate의 디에고처럼, 발세로스들은 떠났지만 결코 도착하지 못한다. 그들은 마이애미의 카페에서 쿠바 커피를 마시며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이유로 고향을 떠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고향은 떠나온 그곳인가, 아니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마음속 어딘가인가?

![[12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오늘날 쿠바에서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떠나고 있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strawberry_and_chocolate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