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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월 4째주] 산업재해

작업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침묵하는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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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평전
전태일평전
조영래
전태일평전조영래 · 1983

당신이 매일 출근하는 건물 어딘가에서 누군가 죽었다면 어떨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추락했거나, 기계에 끼여 숨졌거나,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졌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 건물로 출근할 수 있을까.

2024년 1월 둘째 주, 포스코그룹은 신년사에서 산업재해를 언급했다. 지난해 수차례 발생한 사망사고 때문이었다. 한화오션도 국정감사에서 중대재해로 질타받았다. 고용노동부는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자 채용 지원을 발표했다. 뉴스는 담담하게 사실을 전한다. 포항의 제철소에서, 거제의 조선소에서, 이름 모를 작은 공장들에서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전태일평전을 쓴 조영래는 1970년대 청계천 피복공장을 이렇게 기록했다. 하루 14시간 노동, 먼지로 가득한 작업장, 폐병에 걸려 피를 토하는 소녀들. 그로부터 50년이 흘렀다. 법은 바뀌었고, 근로감독관이 생겼고,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아직도 사람들은 일하다 죽는가.

조영래가 만난 전태일은 물었다. 왜 아무도 이들의 죽음에 관심을 갖지 않는가. 왜 신문은 이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가. 전태일은 결국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1970년 11월 13일이었다. 그의 죽음은 한국 노동운동의 시작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달라졌는가. 2023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828명이었다. 하루 평균 2.3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건설현장에서 추락하고, 공장에서 기계에 끼이고, 화학물질에 중독되어 죽었다. 이들의 이름은 통계 속에 묻혔다.

당신은 이 숫자를 어떻게 읽는가. 828이라는 숫자가 단지 작년보다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하다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죽음을 숫자로만 읽게 되었을까.

전태일평전은 증언한다. 죽음은 숫자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이었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재봉틀을 돌리던 시다들, 하루 50원의 버스비를 아끼려 한 시간을 걸어 출근하던 소녀들, 폐병에 걸려도 일을 그만둘 수 없던 가장들. 그들에게 노동은 생존이었고, 작업장은 삶의 전부였다.

2024년의 작업장은 어떤가.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용광로 앞은 여전히 섭씨 1500도를 넘는다. 조선소의 크레인은 여전히 30미터 상공에서 움직인다. 반도체 공장의 화학물질은 여전히 노동자의 폐 속으로 스며든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의 일터는 안전한가. 당신이 만드는 제품 뒤에, 당신이 받는 서비스 뒤에 누군가의 위험한 노동이 숨어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광양의 용광로에서 만들어진 철강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일하고, 거제의 조선소에서 만든 배로 운송된 물건을 소비한다.

전태일이 죽은 지 54년이 지났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왔을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청년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무엇이라 말할까. 여전히 하루 2명씩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보며 그는 또다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일까.

연도별 산업재해 사망자수
출처: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