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598명. 하루에 1.6명꼴이다. 숫자는 차갑게 기록되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아침 인사가, 저녁 귀가길이 영원히 멈춘 순간들이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또다시 노동자가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1월의 어느 날, 우리는 무엇을 묻고 있는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돌아온 뒤 화학공장에서 일했다. 『주기율표』에는 그가 만난 물질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크롬, 니켈, 납, 수은. 원소 하나하나에 인간의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페인트 공장에서 일하며 썼다. 화학물질이 폐를 태우는 순간을,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끊임없이 물었다.
레비가 일했던 1960년대 이탈리아 공장과 2024년 한국의 제철소는 얼마나 다를까. 기술은 진보했고 안전 규정은 두꺼워졌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는다. 용광로 앞에서, 크레인 아래에서, 밀폐된 탱크 안에서. 죽음의 형태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안전교육 시간은 늘어났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됐다. 기업들은 앞다퉈 '안전 최우선'을 외친다. 하지만 납품 기한이 촉박할 때, 인력이 부족할 때, 그 구호들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현장의 노동자들은 안다. 안전모를 쓰는 것과 안전한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프리모 레비는 화학자였지만 시인의 눈으로 공장을 봤다. 증류탑에서 올라오는 증기에서 인간의 숨결을 느꼈고, 촉매제의 반응에서 삶의 연약함을 읽었다. 그에게 공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인간 조건을 묻는 실험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인가'라고.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제조업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2019년 7.8년에서 2023년 6.9년으로. 숙련공들이 떠나고 신입들이 들어온다. 경험의 단절. 위험은 그 틈새로 스며든다. 아우슈비츠에서 레비를 살린 것은 화학 지식이었다. 실험실 보조로 일하며 혹독한 노동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이 생존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강제수용소와 오늘날 공장은 닮았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언론은 떠들썩하다. 국정감사에서 질타가 오간다. 그러다 잊힌다. 다음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이 반복의 고리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을 숫자로만 세는 동안, 살아 있는 노동자들의 불안과 공포는 보이지 않는다.
프리모 레비는 1987년 자살했다. 계단에서 떨어져 죽은 그의 마지막이 사고인지 자살인지는 아직도 논란이다. 평생 죽음의 기억과 싸웠던 사람의 죽음. 『주기율표』의 마지막 장 '탄소'에서 그는 썼다. 모든 생명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고, 탄소는 영원히 순환한다고. 한 노동자의 죽음도 그저 통계의 한 줄로 순환하는 것일까.
598명. 처음 던진 숫자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그 숫자가 다르게 보이는가. 안전이라는 말 뒤에 가려진 것들이 조금은 드러났는가.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 왜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가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