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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월 5째주] 돌봄의 무게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가 시작된다는 소식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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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사회학
돌봄의 사회학
우에노 치즈코
돌봄의 사회학우에노 치즈코 · 2011

어느 어머니가 있었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약을 챙겼다. 스물다섯 살이 된 아들이었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발달장애 1급. 그녀는 이십 년 넘게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니, 쉴 수 없었다. 자신이 없으면 아들은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으니까.

2024년 6월부터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가 시작된다고 한다. 소득수준에 따라 최대 10퍼센트, 월 21만 6200원의 본인부담금만 내면 된단다.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이제야일까. 왜 2024년이 되어서야 최중증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을까.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돌봄의 사회학』에서 이렇게 묻는다. 가족이 가족을 돌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가. 그것은 사랑인가, 의무인가, 아니면 국가가 떠넘긴 책임인가. 우에노는 돌봄이 '무상 노동'으로 치부되어 온 역사를 추적한다. 여성들이, 가족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겨진 그 모든 것들 말이다.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한국의 발달장애인 주 돌봄자 중 84퍼센트가 어머니다. 아버지는 6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조부모나 형제자매. 돌봄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그 여성들 중 70퍼센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돌봄이 사랑이라면, 왜 돌보는 사람은 병들어가는가.

우에노 치즈코는 돌봄을 '관계의 노동'이라 부른다. 단순히 밥을 먹이고 씻기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삶을 지탱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노동에는 가격표가 붙지 않는다. GDP에도 잡히지 않는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새로 시작되는 통합돌봄서비스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국가가 처음으로 최중증 발달장애인 돌봄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렸으니까. 하지만 월 21만 6200원이라는 본인부담금이 신경 쓰인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생각하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돌봄받을 권리에도 가격표가 붙는 셈이다.

그 어머니를 다시 떠올린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는 그녀에게 이 제도는 어떤 의미일까. 하루 몇 시간의 휴식일까, 아니면 또 다른 부담일까. 우에노 치즈코는 말한다. 돌봄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라고. 그 관계를 국가가, 사회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 진짜 문제라고.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시작점에 선 것인지도 모른다. 돌봄을 가족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보기 시작한 것. 그 어머니가 새벽 네 시가 아닌 여섯 시에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아니 가끔은 늦잠도 잘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복지국가의 최소한의 약속 아닐까.

발달장애인 주 돌봄자 성별 비율
출처: 한국장애인개발원(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