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일터에 외국인 동료가 있는가.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아니, 그들에게 이름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고용노동부가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 신청 시기를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필요한 시기에 맞춰 신청하라고 한다. 필요한 시기. 이 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안다. 농번기, 김장철, 명절 대목. 사람이 아닌 노동력으로만 계산되는 시간들이다.
십여 년 전 한 소설가가 물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왜 우리 곁에서 투명인간이 되는가. 그의 소설 속 베트남 여성은 한국에서 10년을 일했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소설이 아니다. 2024년 현재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약 84만 명. 그중 몇 명의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보았을까.
통계청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외국인 고용 사업체 수는 해마다 늘어나지만, 사업체당 평균 고용 인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2018년 4.8명에서 2023년 3.9명으로 감소했다. 더 많은 사업장이, 더 적은 수의 외국인을 고용한다. 왜일까. 관리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소수일수록 통제가 쉽다. 그들끼리 모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김혜진의 소설 『중앙역』은 이런 구조를 정확히 포착한다. 주인공은 묻는다. 왜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 노동자'라는 덩어리로만 부르는가. 베트남인도, 캄보디아인도, 네팔인도 모두 다른 사람인데. 소설은 답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한국인들이 그들을 구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일상을.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내국인을 구하지 못할 경우에만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게 한다. 보충적 노동력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이미 많은 산업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임시적 존재로 취급한다.
필요한 시기에 맞춰 고용허가를 신청하라. 이 문장이 드러내는 것은 무엇인가. 노동을 시간 단위로 쪼개어 구매하는 시스템. 사람이 아닌 노동력만을 수입하려는 욕망. 하지만 노동력은 혼자 오지 않는다. 사람이 온다. 그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고, 고향이 있고, 꿈이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 정말로 투명한 것은 그들인가, 아니면 그들을 보지 않으려는 우리의 시선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