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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2월 3째주] 청년주택

개봉동에서 시작된 어떤 청년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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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하는 삶
가속하는 삶
하르트무트 로자
가속하는 삶하르트무트 로자 · 2020

개봉역 3번 출구를 나온 김민수는 걸음을 멈췄다. 공사 중인 건물을 올려다봤다. 역세권 청년주택. 그는 신청서류를 가방에서 꺼내 다시 넣었다. 세 번째였다. 서류를 꺼냈다가 넣는 것이.

2024년 상반기 입주 예정. 청년주택이 청년주거안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서울시는 말한다. 김민수는 고시원 월세 35만 원을 떠올렸다. 창문 없는 방. 공용 화장실. 그래도 역세권이라 이 가격이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는 『가속하는 삶』에서 현대인의 시간 경험을 분석했다. 기술 가속, 사회 변화의 가속, 삶의 속도 가속. 이 세 가지가 맞물려 돌아간다고 그는 썼다. 흥미로운 건 주거의 문제였다. 집은 느림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현대의 집은 오히려 가속의 도구가 되었다는 지적.

김민수의 하루는 가속으로 가득했다. 첫 전철을 타고 판교로. 스타트업 개발자. 야근. 막전철로 귀가. 고시원 복도의 형광등 아래서 그는 가끔 멈춰 섰다. 이게 삶일까. 생존일까.

로자가 말하는 공명의 경험이란 무엇일까. 세계와 나 사이에 진동이 일어나는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응답하는 관계. 그런데 가속 사회에서 공명은 사라진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관계 맺을 여유가 없어서다.

서울시 청년 1인 가구는 2020년 기준 73만 6천 가구. 2015년 58만 가구에서 5년 만에 26.8% 증가했다. 이들 중 월세 거주 비율은 77.3%다. 보증금 평균 3,218만 원. 월세 평균 52만 원.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좁은 공간. 높은 층간소음. 혼자 견디는 불안.

김민수는 청년주택 신청 자격을 다시 확인했다.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 무주택자. 소득 기준 충족. 그는 모든 조건에 해당했다. 그런데도 망설였다. 당첨될 확률이 낮아서가 아니었다.

로자의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늦은 근대의 역설. 선택지는 늘어나는데 선택 능력은 줄어든다. 가능성은 확대되는데 실현 가능성은 축소된다. 청년주택도 그런 것일까. 또 하나의 선택지. 하지만 근본적 해결은 아닌.

개봉역 일대가 어둠에 잠겼다. 김민수는 고시원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며 그는 생각했다. 집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잠자는 공간인가. 아니면 삶이 뿌리내리는 곳인가.

신청 마감일이 다가왔다. 김민수는 결국 서류를 제출했다. 기대 없이. 하지만 포기하지도 않고. 청년주택 당첨자 발표일, 그는 여전히 고시원 좁은 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있을 것이다. 가속하는 삶 속에서 잠시 멈춤을 꿈꾸며.

서울시 청년 1인 가구 수 추이
출처: 서울시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