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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2월 4째주] 의료 파업

병원이 멈춘 자리에서 묻는 돌봄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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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 2015

2024년 2월 20일, 전국 100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다. 정부의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발표에 반발한 집단 사직이었다.

의료 현장이 멈추자 환자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수술이 연기되고 응급실이 마비됐다. 누군가는 의사들의 이기심을 비난했고, 누군가는 정부의 일방통행을 질타했다. 강대강 대치 속에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묻히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의료를 원하는가.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외과의사인 저자는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것을 짚는다.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은 늘었지만, 정작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을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책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말기 암 환자가 끝까지 항암치료를 받다가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둔다. 가족은 환자가 집에서 편안히 임종하기를 바랐지만, 의사는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의사에게 환자는 고쳐야 할 대상이었지, 함께 죽음을 준비해야 할 사람이 아니었던 것일까.

가완디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가부장적 관계, 정보제공자 관계, 그리고 해석자 관계. 과거엔 의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부장적 모델이 지배적이었다. 이제는 의사가 정보만 제공하고 환자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가완디가 제안하는 것은 세 번째다. 의사가 환자의 가치관과 희망을 이해하고, 의학적 선택지를 그에 맞게 해석해주는 관계.

이는 단순히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3분 진료로는 환자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수가 중심의 행위별 보상 체계에서는 긴 대화보다 많은 검사가 유리하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아니면 의료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할까.

전공의들의 파업은 표면적으로는 정원 증원에 대한 반발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더 깊은 불만이 자리한다. 주 80시간을 넘는 살인적인 노동, 전문의가 되어도 나아지지 않는 근무 환경, 소송 위험에 대한 두려움. 의사들도 지쳐 있다.

환자들의 불안도 마찬가지다. 비싼 의료비, 긴 대기 시간, 충분하지 않은 설명.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늘 불안하다. 의사를 신뢰하기 어렵고, 제대로 치료받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가완디는 말한다. 의학의 목표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삶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이를 위해선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허락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의료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정부와 의사 집단의 대립은 평행선을 달린다. 하지만 이 갈등이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의료가 무엇인지,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다시 물을 기회. 답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서로를 사람으로 보는 것부터.

한국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건수
출처: OECD Health Statis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