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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3월 1째주] 최저임금의 역설

누군가의 생존임금이 다른 누군가의 폐업 통지서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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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 2001

영국판 다이소로 불리던 파운드랜드가 매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저임금 10% 인상과 국민보험 세율 상승이 직격탄이 되었다고 한다.

서민들의 일상을 지탱하던 가게가 문을 닫는다. 그 가게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임금은 올랐지만,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선의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 순간이다. 노동의 가치를 높이려는 정책이 노동의 기회를 앗아가는 아이러니. 이런 모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은 2001년 미국에서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실험을 기록한 책이다.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직원으로 일하며 그녀가 목격한 것은 단순했다. 최저임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 하루 종일 일해도 방 한 칸 구하기 어려웠고, 아프면 병원 갈 엄두도 못 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노동자가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일자리가 사라질까. 파운드랜드의 사례는 후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가 상품을 파는 가게일수록 인건비 비중이 크다. 임금이 오르면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면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한국의 편의점도 비슷한 딜레마에 놓여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점포가 줄어들고, 무인 결제 시스템이 확산된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속화한 변화다.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다 일자리의 양이 줄어드는 현상. 이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퇴보라고 해야 할까.

에런라이크는 책에서 묻는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는가. 그녀의 답은 간명하다. 너무 지쳐서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벅찬 사람들에게 미래를 설계하라는 것은 사치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소상공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생존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정책 입안자들은 숫자로 세상을 본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소득이 늘어난다는 계산. 하지만 현실은 수식보다 복잡하다. 파운드랜드 직원들은 임금이 올랐지만 곧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 가게를 이용하던 서민들은 저렴한 생필품을 살 곳을 잃는다.

영국의 실업률은 2019년 3.8%에서 2023년 4.2%로 소폭 상승했다. 큰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숫자 뒤에는 수많은 개인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파운드랜드처럼 문을 닫는 가게들,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균열들.

최저임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선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 때로는 선의가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는 것. 파운드랜드의 매각 소식은 그 씁쓸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에런라이크는 실험을 마치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가 만났던 동료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든 내리든, 가게가 문을 닫든 열든, 그들은 오늘도 일한다. 생존을 위해. 그것이 노동의 진짜 얼굴이다.

영국 실업률 추이
출처: 영국 통계청(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