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물 한 잔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수도꼭지를 틀면 당연히 나오는 것, 편의점에서 천원이면 살 수 있는 것. 우리에게 물은 그런 존재다. 그런데 환경부가 발표한 2025년 물산업 통계조사 결과는 이 '당연함' 뒤에 숨은 거대한 산업의 존재를 일깨운다.
한국의 물산업 시장은 2024년 기준 44조원 규모다. 상하수도, 먹는샘물, 정수기 등 우리가 매일 접하는 물과 관련된 모든 것이 하나의 산업으로 묶여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물은 생존의 필수재인데 왜 우리는 이것을 '산업'으로 부르는가. 언제부터 물이 상품이 되었을까.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라슬로는 『물의 역사』에서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가 물을 다루는 방식과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로마 제국의 수도교, 이슬람 문명의 관개 시설, 산업혁명 시대의 상수도. 물을 통제하는 것은 곧 권력이었고, 물을 분배하는 것은 정치였다.
그는 특히 19세기 파리의 상수도 민영화 과정을 자세히 다룬다. 콜레라가 창궐하던 1850년대, 파리 시민들은 깨끗한 물을 갈망했다. 정부는 민간 기업에 상수도 사업권을 넘겼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오늘날 세계 최대 물기업 중 하나인 베올리아다. 공공재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통계청 자료를 보면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010년 332리터에서 2023년 289리터로 줄었다. 절약 의식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물값 상승도 한몫했다. 서울시 상수도 요금은 같은 기간 30% 이상 올랐다. 물을 아껴야 하는 이유가 환경 보호에서 경제적 부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라슬로는 묻는다. 물이 비싸질수록 더 깨끗해지는가. 파리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민영화 이후 수질은 개선되었지만 빈곤층의 단수율도 함께 높아졌다. 돈이 없으면 물도 끊긴다는 잔혹한 현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불평등이었다.
정부가 물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글로벌 물시장은 2025년 100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도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이 있다. 물을 산업으로만 보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
물 한 방울에도 값을 매기는 시대. 효율과 이윤의 논리가 생명의 원천마저 장악했다. 라슬로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물을 다스리는 자가 세상을 다스린다. 그렇다면 물을 상품으로 만든 우리는 누구에게 세상을 넘겨준 것일까.
내일 아침 물 한 잔을 마실 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 투명한 액체 속에 담긴 것은 H2O만이 아니다. 권력과 자본, 생존과 불평등이 뒤엉킨 우리 시대의 초상이 그 안에 있다. 당신이 마시는 것은 물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이익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