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봄, 한국의 건설 현장 어딘가에서 노동자가 작업을 멈췄다. 크레인 아래 철근이 흔들렸고, 바람은 예상보다 강했다. 그가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을 때, 현장 관리자의 표정이 굳었다. 납기일이 코앞이었다.
작업 중지권.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가 보장하는 이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는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는 법 조문은 명확하다. 그런데 왜 매년 4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가.
시몬 베유는 190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스물네 살에 공장으로 들어갔다. 르노 자동차 공장에서 프레스공으로 일하며 그가 목격한 것은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는 인간의 몸이었다. 손가락이 절단될 위험을 감수하며 하루 1500개의 부품을 찍어내야 했다.
공장 노동자의 일기에서 그는 썼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빵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라고. 위험을 감지한 순간 멈출 수 있는 권리야말로 인간다움의 최소 조건이 아닐까.
삼성물산이 작업 중지권 활용 우수 사례로 거론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대기업조차 이제야 겨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수고용 노동자들, 특히 택배 기사들에게 이 권리는 여전히 먼 이야기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이들은 알고리즘이 정한 속도를 따라가느라 화장실 갈 시간조차 아껴야 한다.
베유는 공장에서 나온 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그리고 2차 대전 중 영국에서 자유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서른네 살에 숨을 거뒀다. 그가 남긴 뿌리 내림이라는 책은 전후 프랑스 재건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인간의 영혼이 뿌리내릴 수 있는 조건, 그것은 자신의 노동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서 시작된다.
노동자가 위험을 감지했을 때 멈출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안전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 인간이 기계의 부품이 아니라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임을 인정하는 일이다. 베유가 공장에서 발견한 진실이 9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묻고 있다.
2023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전년보다 18.4% 증가했다. 건설업에서만 288명이 숨졌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위험을 감지했지만 멈출 수 없었을까. 납기와 실적 앞에서 한 인간의 불안은 얼마나 쉽게 무시되는가.
작업 중지권은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그런데 이 권리를 행사하려면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일자리, 동료들과의 관계, 때로는 생계까지. 멈출 권리가 있다는 것과 실제로 멈출 수 있다는 것 사이의 거리를 우리는 어떻게 좁힐 것인가.
베유가 꿈꾼 세상은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고, 위험 앞에서 당당히 멈출 수 있는 곳이었다. 2024년 봄, 한국의 건설 현장에서 작업을 멈춘 그 노동자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까. 그의 용기가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