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집중 읽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책으로 세상을 보다 5월 2째주] 청년의 방

월세 시대의 고독과 『방 안의 코끼리』가 말하는 침묵

기사 듣기
방 안의 코끼리
방 안의 코끼리
수잔 맥윌리엄스
방 안의 코끼리수잔 맥윌리엄스 · 2022

수전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이렇게 썼다. 침묵은 언어가 닿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고. 청년들이 머무는 원룸과 고시원의 침묵도 그럴까. 서울신문이 보도한 청년부채 리포트는 전세 공포로 인한 월세 급등을 다뤘다. 숫자는 명확했지만 그 안에 담긴 고요는 측정되지 않았다.

방 하나에 갇힌 삶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잔 맥윌리엄스의 『방 안의 코끼리』는 모두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진실에 관한 책이다. 거대한 코끼리가 방 안에 있는데도 없는 척하는 사람들. 청년 주거 문제도 그런 코끼리 아닐까. 통계는 있지만 체험은 없고, 정책은 있지만 목소리는 없는.

노량진 청년안심주택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소식이 같은 주에 전해졌다. LB자산운용이 추진하는 이 사업은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런데 '안심'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불안을 드러내는 것은 왜일까. 안심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불안의 증거 아닌가.

맥윌리엄스는 코끼리를 외면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진실을 마주하면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청년들의 월세 부담률이 소득의 30퍼센트를 넘어서고 있다. 이 숫자 뒤에는 매달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숨을 죽이는 시간들이 있다. 그 긴장의 무게를 우리는 얼마나 실감하고 있을까.

주거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존재의 토대다.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함'은 단지 어딘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뿌리내리는 일이었다. 월세로 떠도는 청년들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계약 기간 2년마다 짐을 싸야 하는 삶에서 미래는 어떻게 상상될까.

『방 안의 코끼리』는 침묵의 공모에 대해서도 말한다. 문제를 아는 사람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침묵을 선택하는 순간들.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도 비슷하지 않은가. 통계는 발표되고 대책은 나오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일상은 여전히 팍팍하다.

방 하나의 가격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대. 청년들은 더 작은 방으로, 더 먼 곳으로 밀려난다. 도시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주변에서 더 먼 주변으로. 이 원심력의 끝은 어디일까.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중심은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맥윌리엄스는 코끼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거대한 존재를 더 이상 못 본 척할 수 없을 때,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고. 청년들의 주거 불안도 마찬가지 아닐까. 통계와 정책을 넘어 그들의 침묵을 듣는 일. 방 안의 고요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귀 기울이는 일.

며칠 뒤면 또 월세 이체를 해야 하는 청년들이 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다음 달을 계산하고, 더 싼 방을 검색하는 밤들. 그 시간의 무게를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 걸까.

코끼리는 여전히 방 안에 있다. 거대하고 무거운 침묵으로. 누군가는 그 침묵 속에서 오늘도 잠들고 내일도 깨어날 것이다. 창문 너머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로.

청년 1인가구 월세 비중 추이
출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