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셋째 주, 환경부는 녹조 발생을 근본부터 막겠다고 발표했다. 여름철을 앞두고 반복되는 연례행사처럼 느껴진다. 해마다 같은 시기,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가 나온다.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문서들이 쌓여간다.
2007년 출간된 제임스 C.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는 독특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더 정확히는, 선의를 가진 국가의 프로젝트들이 왜 재앙으로 끝나는가. 탄자니아의 집단농장, 브라질리아의 계획도시, 소련의 집단화. 모두 더 나은 삶을 약속했지만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
스콧이 주목한 것은 '가독성'이다. 국가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만들려 한다. 숲을 목재 생산량으로, 농민을 생산 단위로, 도시를 기능별 구역으로. 측정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려 한다. 그 과정에서 실제 삶의 복잡성은 사라진다.
녹조도 마찬가지 아닌가. 강은 측정 대상이 되고, 녹조는 제거해야 할 수치가 된다. 질소와 인의 농도, 수온, 일조량.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된다. 그런데 강은 정말 그렇게 단순한가. 수천 년 동안 제 길을 찾아 흐르던 물길은 어떻게 갑자기 통제의 대상이 되었을까.
과학적 산림 관리를 도입한 18세기 독일의 숲을 스콧은 예로 든다. 단일 수종, 일정한 간격, 직선 배열. 완벽해 보였다. 첫 세대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2세대, 3세대로 가면서 숲은 죽어갔다. 병충해가 창궐하고 토양이 메말랐다. 복잡한 생태계를 단순한 생산 시스템으로 바꾼 대가였다.
우리의 강 정책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 보를 세우고, 수문을 조절하고, 화학물질을 투입한다. 녹조 수치는 잠시 내려갈지 모른다. 하지만 강 생태계 전체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측정되지 않는 변화들, 보이지 않는 연쇄작용들은 누가 주목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진짜 해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스콧이 '메티스'라 부른 실천적 지식, 즉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혜 말이다. 강가에서 평생을 산 어부들, 물길을 따라 농사짓는 농민들. 그들은 데이터 없이도 강의 변화를 안다.
물론 과학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조를 막겠다는 선의가 더 큰 재앙을 부르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강물이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 계절이 온다. 해법을 찾는다는 보도자료가 또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 아닐까.
5월 셋째 주, 환경부는 녹조 발생을 근본부터 막겠다고 발표했다. 여름철을 앞두고 반복되는 연례행사처럼 느껴진다. 해마다 같은 시기,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가 나온다.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문서들이 쌓여간다.
2007년 출간된 제임스 C.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는 독특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더 정확히는, 선의를 가진 국가의 프로젝트들이 왜 재앙으로 끝나는가. 탄자니아의 집단농장, 브라질리아의 계획도시, 소련의 집단화. 모두 더 나은 삶을 약속했지만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
스콧이 주목한 것은 '가독성'이다. 국가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만들려 한다. 숲을 목재 생산량으로, 농민을 생산 단위로, 도시를 기능별 구역으로. 측정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려 한다. 그 과정에서 실제 삶의 복잡성은 사라진다.
녹조도 마찬가지 아닌가. 강은 측정 대상이 되고, 녹조는 제거해야 할 수치가 된다. 질소와 인의 농도, 수온, 일조량.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된다. 그런데 강은 정말 그렇게 단순한가. 수천 년 동안 제 길을 찾아 흐르던 물길은 어떻게 갑자기 통제의 대상이 되었을까.
과학적 산림 관리를 도입한 18세기 독일의 숲을 스콧은 예로 든다. 단일 수종, 일정한 간격, 직선 배열. 완벽해 보였다. 첫 세대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2세대, 3세대로 가면서 숲은 죽어갔다. 병충해가 창궐하고 토양이 메말랐다. 복잡한 생태계를 단순한 생산 시스템으로 바꾼 대가였다.
우리의 강 정책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 보를 세우고, 수문을 조절하고, 화학물질을 투입한다. 녹조 수치는 잠시 내려갈지 모른다. 하지만 강 생태계 전체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측정되지 않는 변화들, 보이지 않는 연쇄작용들은 누가 주목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진짜 해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스콧이 '메티스'라 부른 실천적 지식, 즉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혜 말이다. 강가에서 평생을 산 어부들, 물길을 따라 농사짓는 농민들. 그들은 데이터 없이도 강의 변화를 안다.
물론 과학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조를 막겠다는 선의가 더 큰 재앙을 부르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강물이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 계절이 온다. 해법을 찾는다는 보도자료가 또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 아닐까.
『국가처럼 보기』이 녹조와 통제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제임스 C. 스콧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녹조와 통제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제임스 C. 스콧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녹조와 통제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녹조와 통제 분야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냈다. 선진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하면서, 제도적 성숙 없이 양적 팽창만 이뤄진 측면이 있다.
우리는 정말로 강을 알고 있는가.
이 기사는 제임스 C. 스콧의 저서 『국가처럼 보기』를 통해, 국가가 복잡한 자연을 단순화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 기사는 정책 수립 시 측정 가능한 데이터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 기사는 반복되는 연례행사 같은 정부의 녹조 대책이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함을 비판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함을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