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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6월 1째주] AI 규제의 역설

우리는 왜 기술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에 의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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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고원
천 개의 고원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 1980

2024년 1월, 한국 정부가 전국 최초로 AI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딥페이크를 비롯한 악용 사례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같은 시기 글로벌 AI 투자액은 673억 달러를 돌파했다. 규제와 투자가 동시에 늘어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술에 대한 인류의 태도는 늘 양가적이었다. 19세기 러다이트 운동부터 21세기 AI 규제론까지, 우리는 새로운 도구 앞에서 매번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통제할 수 있을까. 통제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미 늦었나.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은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다르게 본다. 그들에게 기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욕망을 생산하는 장치다. AI가 만드는 가짜 얼굴, 가짜 목소리는 단지 기술적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무언가의 투영이라는 것이다.

통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욕망을 증폭시킨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금지는 새로운 우회로를 만들고, 규제는 더 정교한 위반을 낳는다. 마치 물을 막으려 쌓은 둑이 물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실제로 한국의 AI 규제 논의가 본격화된 2023년 이후, 딥페이크 관련 범죄는 오히려 증가했다. 2023년 1월 대비 2024년 1월의 디지털 성범죄 신고 건수는 47퍼센트 늘었다. 규제가 범죄를 막지 못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규제 덕분에 신고가 늘어난 것일까.

들뢰즈와 가타리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통제하고 싶은 것은 AI인가, 아니면 AI가 드러내는 우리 자신의 욕망인가. 가짜를 만드는 기술이 문제인가, 가짜를 원하는 마음이 문제인가.

일론 머스크가 AI 규제에 찬성하면서도 동시에 AI 기업에 투자하는 모순은 어쩌면 모순이 아닐지도 모른다. 통제와 확산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더 가까이 두려 한다.

AI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해서 기술의 진화가 멈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규제는 기술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위험하니까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673억 달러. 이 숫자는 두려움의 크기일까, 욕망의 크기일까.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하고, 그 시도 자체가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 AI 시대의 규제란 결국 우리가 어떤 미래를 욕망하는지에 대한 고백인지도 모른다.

글로벌 AI 투자 규모
출처: CB Ins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