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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6월 3째주] 전세의 종말

청년들이 월세로 밀려나는 시대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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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한국의 독특한 주거 제도인 전세가 월세로 급속히 전환되면서 청년세대의 주거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 원룸 월세가 100만원을 넘으면서 월급의 절반이 주거비로 소진되고, 전세사기 공포로 인해 청년들이 안정성 없는 월세를 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주거 형태의 변화가 아닌 한국 사회의 상호부조 시스템 붕괴와 세대 간 자산 격차 심화의 신호다.

2030년 어느 날, 누군가 2024년의 주거 통계를 펼쳐볼 것이다.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일반화된 전환점을 찾는다면 아마 이즈음일 거다. 전세 공포라는 단어가 일상어가 된 시점. 청년들이 보증금 떼일까 두려워 아예 월세를 택하기 시작한 시점.

서울의 원룸 월세는 이미 100만원을 넘어섰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0만원이 평균이 되어간다. 월급의 절반이 방값으로 사라진다. 저축은 불가능하다. 미래는 준비할 수 없다. 오직 이번 달을 버티는 일만 남았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능력주의 사회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안긴다. 주거 시장도 마찬가지다.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전세를 구할 수 있는 자와 월세로 밀려난 자. 이 구분은 단순한 경제적 차이가 아니다.

전세는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였다. 목돈을 맡기고 이자 대신 거주권을 얻는 방식.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의존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흔들리면서 이 균형이 깨졌다. 깡통전세, 전세사기라는 단어들이 뉴스를 채운다.

청년들은 학습했다. 전세는 위험하다고. 차라리 매달 돈을 내는 게 안전하다고. 하지만 월세는 축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매달 80만원을 10년간 낸다면 9600만원이다. 그 돈이면 지방 소도시엔 작은 집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샌델은 묻는다. 재능과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정말 정의로운가. 태어난 시대와 부모의 자산이 결정하는 삶에서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주거 문제는 이 질문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다.

정부는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규제를 풀겠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건 더 많은 월세 물량이 아니다.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이다.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주거 안정성이다.

전세의 소멸은 단순한 주거 형태의 변화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독특한 상호부조 시스템의 붕괴다. 그 자리를 시장 논리가 차지한다. 매달 돈을 내야만 머물 수 있는 공간. 축적 없는 소비만 가능한 삶.

10년 후, 20년 후를 상상해본다. 평생 월세를 내며 사는 세대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무엇이 남을까. 집 한 채 없이 은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된다면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공정하다는 착각』이 전세의 종말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마이클 샌델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전세의 종말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마이클 샌델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전세의 종말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전세의 종말 분야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냈다. 선진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하면서, 제도적 성숙 없이 양적 팽창만 이뤄진 측면이 있다.

지금 청년들이 월세로 내는 돈은 단순한 주거비가 아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현재에 저당 잡힌 대가다. 전세가 사라진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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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원룸 월세
2024년 현재 서울 지역 원룸 평균 월세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능력주의 사회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안긴다. 주거 시장도 마찬가지다.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전세를 구할 수 있는 자와 월세로 밀려난 자. 이 구분은 단순한 경제적 차이가 아니다.

전세는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였다. 목돈을 맡기고 이자 대신 거주권을 얻는 방식.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의존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흔들리면서 이 균형이 깨졌다. 깡통전세, 전세사기라는 단어들이 뉴스를 채운다.

청년들은 학습했다. 전세는 위험하다고. 차라리 매달 돈을 내는 게 안전하다고. 하지만 월세는 축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매달 80만원을 10년간 낸다면 9600만원이다. 그 돈이면 지방 소도시엔 작은 집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세대 자산 형성의 위기

월세는 누적 자산을 남기지 않아 청년세대의 자산 형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10년간 낸 9600만원이 월세로 소비되면서 부의 대물림 격차가 더욱 심화된다.

2
사회안전망 붕괴 신호

전세라는 상호부조 시스템이 붕괴되고 시장 논리만 남으면서, 저금리 시대의 대체 안정성 메커니즘이 필요한 시점이다.

3
고령사회 주거빈곤 심화

평생 월세를 낸 세대가 노년에 진입할 때 주거 자산이 전무해져 사회 전체의 노년 빈곤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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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부동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