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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7월 1째주] 최저임금

한 시간의 가격표 뒤에 숨은 삶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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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 앤 다임드
니켈 앤 다임드
바버라 에런라이크
니켈 앤 다임드바버라 에런라이크 · 2001

회의실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킬 때,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한 명이 계산기를 다시 두드렸다. 1만원에서 1만 30원. 0.3퍼센트 인상분이 과연 누군가의 월세를 낼 수 있게 해줄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숫자가 단순한 산술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침 식탁, 자녀의 학원비, 병원 진료비와 직결된다는 것을.

나흘 만에 끝난 심의. 역대 최단 기록이다. 누군가는 졸속이라 비판하고, 누군가는 효율적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1만 30원이라는 숫자가 품고 있는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니켈 앤 다임드』에서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실험을 했다.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직원. 그녀가 경험한 건 단순한 경제적 궁핍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몸, 잠들 곳을 찾아 헤매는 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일상적 투쟁이었다.

시간당 1만 30원.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일하면 월 206만원. 서울의 원룸 월세가 평균 60만원을 넘는 현실에서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에런라이크가 겪었던 그 막막함이 2024년 한국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늘 반복되는 갈등이 있다. 사용자는 부담을, 노동자는 생존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에런라이크가 보여준 건 이것이 단순한 이해관계의 대립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임금 노동은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빨아들여,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여유조차 앗아간다.

한국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2023년 기준 11.8퍼센트다. 열 명 중 한 명은 법정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대부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주휴수당도 모른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시간당 1만 30원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공익위원은 새벽 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결정한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좌절이 된다는 것을. 하지만 정작 그 숫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회의실에 없었다.

에런라이크는 실험을 마치고 중산층의 삶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동료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미소를 지으며. 1만 30원이라는 숫자는 그들에게 무엇을 약속하는가. 아니,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

다음 해 이맘때, 또다시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릴 것이다. 그때도 나흘이면 충분할까. 아니면 우리는 좀 더 오래, 좀 더 깊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시간당 가격표 너머에 있는 삶의 무게에 대해서 말이다.

한국 최저임금 미만율 추이
출처: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