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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7월 3째주] 부동산PF의 그림자

금융 리스크가 드러내는 도시 공간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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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제인 제이콥스 · 1961

2030년쯤, 누군가는 이 시기를 돌아보며 말할 것이다. 2024년 여름이 전환점이었다고. KB금융이 부동산PF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나선 그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 아마도 숫자 뒤에 숨은 도시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프로젝트파이낸싱이라는 복잡한 금융 구조가 만들어내는 건 단순히 건물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일터, 누군가의 꿈이 그 안에서 형태를 갖춰간다. 리스크 관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숫자 게임이 실은 도시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다시 펼쳐보면서였다. 1961년에 쓰인 이 책은 도시 계획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고발한다. 제이콥스는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관찰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계획가의 시선이 아니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주민의 눈으로.

그녀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래된 건물들이 품고 있는 시간의 층위였다. 낡은 건물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작은 가게들, 예술가들, 이민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도시의 다양성은 바로 이런 틈새에서 자라난다. 반면 대규모 재개발은 이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부동산PF가 만들어내는 풍경도 비슷하지 않을까.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어 올라가는 신축 건물들. 그곳엔 누가 들어갈 수 있을까. 높은 분양가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그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가.

한국의 주택 임대료 부담률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소득 대비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삶의 다른 가능성들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교육에 쓸 돈, 문화생활에 쓸 돈, 미래를 위해 저축할 돈이 모두 주거비로 빨려 들어간다.

제이콥스는 도시를 복잡한 생태계로 봤다.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오래된 건물 하나가 사라지면 그곳에 기대어 살던 수많은 관계들도 함께 사라진다. 구멍가게 주인과 단골손님의 아침 인사,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 저녁이면 모여드는 동네 사람들.

KB금융의 리스크 관리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금융 안정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는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수익률과 안정성이라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도시의 생명력을.

어쩌면 우리는 너무 높은 곳에서만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 회의실에서, 정부의 정책 결정 테이블에서. 제이콥스처럼 거리로 내려와 걸어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PF가 만들어낸 빈 상가들 앞을 지나며, 재개발을 기다리는 낡은 동네를 거닐며.

2024년 여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도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투자 수익을 위한 상품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인가. 제이콥스가 60년 전에 던진 이 물음은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 가구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
출처: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