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을 걷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는다. 상담원이 묻는다. 임신했나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당신은 아니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계속 맴돈다.
보건복지부가 위기임신보호출산제 시행 1년을 맞아 성과를 발표했다. 2023년 7월 시작된 이 제도로 1,200여 명의 여성이 상담을 받았고, 그중 일부는 가명으로 출산했다. 신분을 숨긴 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위기임신보호출산제가 말하는 위기란 무엇인가. 혼인 관계 밖에서의 임신이다. 성폭력이나 10대 임신만을 뜻하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임신 그 자체가 위기로 분류된다. 2023년 한국의 혼외출산 비율은 4.5%였다. OECD 평균 42%와 비교하면 극단적으로 낮은 수치이며, 이는 한국 사회가 혼인 밖의 출산을 얼마나 강하게 억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1980년 출간한 『만들어진 모성』에서 모성 본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역사적 발명품이라고 주장했다. 18세기 이전 유럽에서 귀족 여성들은 아이를 유모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모유 수유는 하층민의 일로 여겨졌다. 루소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을 이상화하면서 비로소 모성 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신화는 유독 강력하게 작동한다. 좋은 엄마라는 틀에 맞지 않는 여성은 사회적 낙인에 직면한다. 미혼모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결핍을 내포하고 있다. 가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도는 여성을 보호하는 동시에 숨어야 할 존재로 규정하는 모순을 품고 있다. 보호와 낙인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바댕테르가 파헤친 것은 자연의 영역으로 위장한 권력의 작동 방식이었다. 여성에게 모성을 본능이라 말하는 순간, 돌봄의 책임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 된다. 사회와 국가는 빠져나간다. 아이를 낳은 여성이 위기에 처하는 것은 생물학적 필연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결과다.
『만들어진 모성』이 위기임산부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위기임산부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위기임산부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위기임산부 분야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냈다. 선진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하면서, 제도적 성숙 없이 양적 팽창만 이뤄진 측면이 있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통찰을 빌리면, 위기임산부은 단순한 정책 과제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관을 묻는 질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시하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지. 이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지 않고서는 어떤 해법도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
1,200명이 상담을 받았다는 수치 뒤에는 1,200개의 이야기가 있다. 그중 몇 명이 가명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히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까. 모성이 본능이라는 신화가 무너질 때, 비로소 여성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 선택을 위기라 부르지 않는 사회는 언제쯤 가능할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위기임산부 상담 건수는 4,827건이다. 2019년 2,100건에서 두 배 이상 늘었다. 위기임산부란 경제적 어려움, 미혼, 가정폭력, 성폭력 등으로 임신과 출산을 지속하기 어려운 여성을 말한다. 그런데 이 숫자에는 상담조차 받지 못한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배딘터의 『만들어진 모성』은 모성이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도발적 주장을 펼친다. 18세기까지 프랑스 상류층 여성들은 아이를 유모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했다. 모성이 여성의 본질적 속성으로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국가가 인구를 관리하려 하면서부터다.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자원이 되었고, 여성의 몸은 정책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의 출산율이 0.72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하자 정부는 매년 수십 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정작 위기임산부 지원 예산은 연간 47억 원에 불과하다. 전체 저출산 예산의 0.01%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출산이지, 임산부의 안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딘터의 시선으로 보면, 한국 사회가 위기임산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중의 모순이다. 아이를 낳으라고 하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여성은 외면한다. 모성을 찬양하면서, 모성을 실천할 수 없는 환경은 방치한다. 만들어진 모성이라는 개념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진실이다.
위기임산부 쉼터는 전국에 25곳이다. 서울에는 3곳뿐이다. 퇴소 후 자립 지원은 6개월로 끝난다. 아이와 함께 갈 곳이 없는 여성들이 다시 거리로 나가는 현실. 모성이 본능이라면, 왜 이 사회는 본능을 실현할 최소한의 조건조차 마련하지 않는가. 배딘터의 질문은 1980년 프랑스에서 시작됐지만, 2025년 한국에서 더 절실하게 울린다.
이 기사는 혼외 출산의 사회적 낙인 문제를 제기하며, 이 인식 변화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기사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모성의 통념을 비판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기사는 위기임신보호출산제의 시행 성과를 소개하면서도, 제도 한계와 개선 필요성을 함께 다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