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기후변화를 두고 자본주의와의 전쟁이라고 썼다. 2014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대우건설은 ESG위원회의 명칭을 바꾸며 기후정보공시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관심도라는 말이 묘하게 거슬린다. 마치 유행처럼, 트렌드처럼 다가오고 지나갈 무언가로 여기는 듯한 뉘앙스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관심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클라인이 지적했듯이, 우리가 직면한 것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 전체의 문제다.
기업들이 ESG를 외치고 지속가능경영을 표방하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성장과 이윤 추구다. 대우건설처럼 위원회 명칭을 바꾸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걸까.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1년 기준 6억 7960만 톤이었다. 2018년 7억 2760만 톤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고 있다지만, 여전히 세계 9위의 배출국이다. 건설업계가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치 않다. 시멘트 생산, 건설 장비 운용, 건물 운영까지 포함하면 전체 배출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클라인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끝없는 성장이라는 신화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장률에 목을 맨다. GDP가 조금만 둔화돼도 위기를 외치고,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 부양책을 쏟아낸다. 이런 구조에서 진정한 기후 대응이 가능할까.
기업들의 ESG 경영이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도 사업 확장을 멈추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면서도 화석연료 사업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런 모순을 클라인은 인지부조화라고 불렀다.
성장금융이 기후테크 기업에 1300억 원을 투자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술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클라인의 지적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시스템 혁신이다.
물론 변화는 쉽지 않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클라인은 말한다. 기후위기야말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기회라고. 불평등을 줄이고,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공동체를 재건할 기회라고.
대우건설이 기후정보공시를 준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고서가 아니라 행동이다. 성장이 아니라 전환이다.
클라인은 썼다. 기후변화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도 모든 것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위원회 명칭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