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의 어느 날, 누군가는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개고기를 먹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다고.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식용종식법 시행 이후 조기폐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폐업을 선택하는 업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시대의 문화가 법의 이름으로 종료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생계였고, 누군가에게는 전통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 이제 그 모든 것이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육식의 성정치』에서 캐럴 J. 애덤스는 동물을 먹는 행위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이고, 지배의 문제이며, 무엇보다 언어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고기'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니다. 부재지시물이 된다.
개는 특별했다. 가축이면서 반려동물이었고, 식용이면서 친구였다. 그 경계의 모호함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서구의 시선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애덤스는 이렇게 묻는다. 왜 어떤 동물은 먹어도 되고 어떤 동물은 안 되는가. 그 구분은 누가 정하는가. 문화라고 답하기엔 너무 간단하다. 그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인가, 경제인가, 아니면 시대정신인가.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육류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2010년 38.8킬로그램에서 2023년 58.4킬로그램으로 늘었다. 하지만 개고기는 그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공식적이지 않은 것들은 숫자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600만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개를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개를 먹는다는 행위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시대가 변하면 감수성도 변한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온다.
애덤스의 책은 1990년에 쓰였다. 한국에서 개식용 논쟁이 본격화되기 훨씬 전이다. 그런데도 그의 질문은 여전히 날카롭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음으로써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종식법이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개고기 식당의 폐업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종언이고, 새로운 감수성의 시작이다. 누군가는 전통의 단절이라고 아쉬워할 것이다. 누군가는 문명의 진보라고 환영할 것이다. 역사는 늘 그런 식으로 쓰여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는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하나둘 역사가 된다. 개식용종식법은 그 과정을 가시화했을 뿐이다. 법이 먼저일까, 의식이 먼저일까.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