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매일 오르내리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 창문 너머로 스치는 그 손들을 기억하는가. 영수증을 건네고 하이패스 카드를 받는 그 짧은 순간, 당신은 그들의 임금이 얼마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한국도로공사의 현장지원직 노동자들이 법원에서 두 번이나 승소했다. 2023년 4월, 그리고 2024년 1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것이 차별이라는 판결이었다. 그런데 공사는 여전히 이들을 최저임금 수준에 묶어두고 있다.
바바라 에런라이크는 『노동의 배신』에서 최저임금으로 살아가기 위해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직원이 되었다. 그녀는 발견했다. 최저임금은 단순히 적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인간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장치였다.
당신이 하루에 만나는 사람들 중 몇 명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을까. 편의점 알바생, 건물 청소원, 주차 요원. 우리는 그들의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삶은 보지 않는다. 마치 그들이 투명인간인 것처럼.
한국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2023년 기준 13.7%였다. 10명 중 1명 이상이 법정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수치가 매년 비슷하게 유지된다는 점이다. 마치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처럼.
에런라이크는 말한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하나는 실제 노동, 다른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일. 미소를 지으며 불평하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개인적인 사정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으니까.
한국도로공사는 현장지원직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구분했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존재로 분류했다. 법원이 두 번이나 잘못됐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 구분은 유지된다. 왜일까. 누군가는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일까.
당신도 어쩌면 그런 구분 속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졸과 고졸, 사무직과 현장직. 우리는 끊임없이 선을 긋고 위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에런라이크가 최저임금 노동을 체험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손님들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고, 매니저는 이름 대신 역할로 불렀다. 그녀는 점점 자신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다시 톨게이트를 지날 때, 당신은 그 손을 볼 수 있을까. 최저임금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한 사람의 삶을. 법원의 판결도 바꾸지 못한 그 견고한 선을. 우리가 만든 노동의 위계는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