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주변에도 갑자기 연락이 끊긴 사람이 있었을까.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소식이 궁금해져 검색해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던 경험이 있을까.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실종 신고 통계를 보면, 한 해 동안 4만 9천624명이 실종 신고되었고 그중 121명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숫자들이 그저 통계로만 읽히는가. 121이라는 숫자 뒤에는 121개의 빈 자리가 있다. 누군가의 식탁에, 누군가의 일터에, 누군가의 일상에 뚫린 구멍들이다. 찾아진 4만 9천여 명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사라졌던 시간 동안 가족들이 겪었을 불안과 절망은 어떤 언어로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에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헤매는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말을 잃었다. 정확히는 말하기를 거부한다. 실종된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언어란 얼마나 무력한가. 경찰서에서 작성하는 인상착의, 실종 전단에 적힌 특징들, 그 모든 설명이 정작 그 사람의 온기와 숨결은 담아내지 못한다.
실종자를 찾는 일은 국가의 시스템과 개인의 간절함이 만나는 지점이다. 개정된 '실종아동등의 보호와 지원에 관한 법률'은 더 많은 권한과 수단을 동원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사라진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는다.
한강은 이 소설에서 실종이 단지 물리적 부재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살아있으면서도 관계에서, 사회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실종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면서도 정작 그들이 어떤 심연을 안고 살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4만 9천이라는 숫자가 매년 반복된다면, 이것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선 사회적 증상은 아닐까.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려 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하게 만드는가. 혹시 우리가 만든 이 견고한 일상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는 감옥은 아니었을까.
통계청 자료를 보면 가출 청소년의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0년 2만 1천여 명에서 2023년 2만 8천여 명으로 늘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실종 신고로 이어진다. 집을 나가는 것과 실종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그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모호할지도 모른다.
소설 속 여자는 끝내 잃어버린 사람을 찾지 못한다. 대신 그녀는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죽은 언어를 통해 산 사람의 부재를 견디려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언어가 결국 누군가의 부재를 증명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깨달음일까.
121명의 미귀환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정말로 찾아지기를 원할까. 아니면 그들에게는 사라지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었을까. 우리는 실종을 비극으로만 읽지만, 때로 그것은 견딜 수 없는 현실로부터의 탈출일 수도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계속해서 찾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의무든, 혹은 죄책감이든. 하지만 정작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사라진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사라지게 만든 이 사회의 어떤 결핍은 아닐까. 당신은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