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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9월 3째주] 작업 중지권

위험 앞에서 멈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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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스트리트의 집
망고 스트리트의 집
산드라 시스네로스
망고 스트리트의 집산드라 시스네로스 · 1984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망고 스트리트의 집』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에스페란사의 아버지가 일터에서 다쳐 집에 돌아온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본다. 가족들은 그가 왜 다쳤는지,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다시 일하러 나갈 날만 센다.

9월 들어서도 산업 현장의 죽음은 멈추지 않았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자동차 공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작업 중지권이라는 것이 있다.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노동자가 스스로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리다. 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해도 멈추지 못할까.

시스네로스가 그린 이민자 거리의 사람들처럼, 오늘도 누군가는 위험을 알면서도 일터로 향한다. 멈추면 해고되거나, 일당을 못 받거나, 동료들에게 민폐가 될까 봐. 작업 중지권은 종이 위의 글자일 뿐, 현장에서는 사치스러운 권리가 되어버렸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쿠팡의 무분별한 속도 강요에 공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속도전의 끝은 어디일까.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는 동안 사람은 소모품이 된다. 기아차 공장에서는 500킬로그램 배터리에 깔려 노동자가 숨졌다.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위험이다.

시스네로스는 이렇게 쓴다. '우리는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떠남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위험 앞에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힘.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그런 힘을 허락하고 있을까. 작업 중지권 사용 현황을 보면 답이 나온다. 법적 권리가 있어도 실제로 행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복이 두려워서, 생계가 막막해서, 혹은 그런 권리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어서.

에스페란사의 아버지는 결국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다친 몸을 이끌고.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고,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었다.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판도라의 상자가 완전히 열리기 전에 멈춰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상자는 열렸고, 위험은 일상이 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상자를 닫을 용기가 아니라, 위험 앞에서 멈출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되찾는 일이다.

시스네로스가 망고 스트리트를 떠나며 다짐했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위험한 구조를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물리적인 떠남이든, 시스템의 변화든. 작업 중지권은 그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멈출 수 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일하는 것이 성실함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쯤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에스페란사가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듯이, 노동자들도 위험 앞에서 당당히 멈출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안전의 시작이다.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수 추이
출처: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