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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9월 4째주] 정년이라는 문턱

연금개혁 논의가 불러온 정년연장 담론과 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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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 2001

한 남자가 회사 건물을 나선다. 마지막 출근카드를 찍고 나온 그의 손에는 작은 상자 하나. 30년을 다닌 직장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후배가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정년이라는 제도가 정한 날짜. 그날이 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허전한 것일까.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아직 필요한 사람인데.

연금개혁 논의가 뜨거워지면서 정년연장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65세, 혹은 그 이상까지 일해야 한다는 주장들. 고령화 사회의 필연적 귀결이라는 분석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이 있다. 왜 우리는 특정 나이가 되면 일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노동의 배신』에서 일의 의미를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녀는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웨이트리스로, 청소부로, 월마트 직원으로 일하며 발견한 것은 단순했다. 일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었다.

정년은 산업화 시대의 발명품이다. 대량생산 체제가 만들어낸 효율성의 논리. 젊고 빠른 노동력이 필요했던 공장의 리듬에 맞춰 만들어진 제도. 그런데 지금도 그 논리가 유효할까? 지식노동이 중심이 되고, 경험의 가치가 높아진 시대에도?

물론 청년 일자리를 위해 기성세대가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라는 프레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게으른 사고 아닐까. 마치 일자리가 정해진 파이처럼, 누군가 먹으면 다른 사람은 굶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산술.

에런라이크가 만난 60대 청소부는 이렇게 말했다. 일하지 않으면 나는 투명인간이 된다. 사회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신호. 정년이라는 제도적 퇴장이 주는 상실감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정년연장 논의를 보면 묘하다. 연금 재정이 부족하니 더 오래 일하라는 논리와, 청년 일자리를 위해 빨리 물러나라는 논리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정작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정년을 몇 살로 할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왜 모든 사람이 같은 나이에 일을 그만둬야 하는가. 왜 일의 가치를 나이로만 재단하는가. 개인의 능력과 의지, 그리고 삶의 필요는 왜 고려되지 않는가.

그 남자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낮 시간의 지하철은 한산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도 정년을 맞았을까, 아니면 애초에 정년이라는 것과 무관한 삶을 살았을까.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갈라져 있다. 정년이라는 특권조차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내일부터 그는 무엇을 할까. 재취업을 준비할까, 작은 가게를 열까, 아니면 그동안 미뤄둔 무언가를 시작할까. 정년이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일까, 아니면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구조의 문제일까.

연령대별 고용률 추이
출처: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