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년쯤 되면 우리는 이 시점을 어떻게 기억할까. 개인투자자들이 비상장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된 2024년을 금융 민주화의 원년으로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투기 광풍의 시작점으로 회고할 것인가.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 법안이 9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내년 3월부터 일반인도 벤처투자의 문이 열린다.
처음엔 환영받을 법한 소식이다. 그동안 기관투자자와 고액자산가의 전유물이었던 벤처투자 시장. 이제 평범한 직장인도 미래의 유니콘 기업에 투자할 기회가 생긴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닷컴버블을 기억하는 이들은 어떤가. 당시에도 비슷한 수사가 난무했다. 모두가 벤처기업가가 될 수 있고, 모두가 벤처투자자가 될 수 있다는.
경제학자 로버트 실러는 『비이성적 과열』에서 금융시장의 대중화가 곧 민주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히려 정보의 비대칭이 심화되고, 전문성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벤처투자야말로 그 극단의 예가 아닐까. 재무제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초기 기업을 평가하는 일. 기술의 미래 가치를 가늠하는 일. 이것이 과연 주식 차트 몇 개 본 개인투자자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인가.
미래에셋벤처투자의 2024년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면 인공지능 관련 기업이 43퍼센트를 차지한다. 전문 벤처캐피탈도 AI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그런데 일반투자자는 어떻게 옥석을 가릴 것인가. 누가 진짜 AI 기술을 가진 기업이고, 누가 AI라는 포장지만 두른 기업인지.
벤처투자의 본질은 실패에 있다. 열 개 중 아홉은 실패하고, 한 개의 대박으로 전체 손실을 만회하는 구조. 기관투자자는 포트폴리오로 위험을 분산할 여력이 있지만, 개인은 어떤가. 퇴직금의 일부를 벤처기업에 투자했다가 날려버린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될 것이다.
실러는 같은 책에서 "시장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시장은 더 효율적이 된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히려 군중심리가 강화되고, 버블이 더 자주, 더 크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식시장 개인투자자 수는 2019년 614만명에서 2023년 1,443만명으로 폭증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2,204포인트에서 2,655포인트로 20퍼센트 상승에 그쳤다. 참여자는 늘었지만 시장은 더 변동성이 커졌을 뿐이다.
BDC가 도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처음엔 조용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BDC가 투자한 기업이 대박을 터뜨리면. 언론은 떠들썩하게 보도하고, 너도나도 벤처투자에 뛰어들 것이다. 그리고 거품이 꺼진 뒤에야 깨닫게 될 것이다. 투자의 기회가 늘어난다고 해서 투자의 능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왜 우리는 벤처투자를 통해서만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월급만으로는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노동의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자본의 수익만 추구하는 사회. BDC 도입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착화시킬 수도 있다.
2024년 9월의 이 결정을 2030년의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까. 금융 접근성을 높인 진보적 조치였다고 할까, 아니면 개인투자자를 또 다른 거품 속으로 밀어넣은 무책임한 정책이었다고 할까.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처음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던가. 이번엔 무엇으로 반복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