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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1월 1째주] 교실의 침묵

기간제교사라는 이름으로 지워지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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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리처드 세넷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리처드 세넷 · 2002

10월의 마지막 주, 한 중학교 교무실. 정규교사들이 성과급 명세서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복도 끝 작은 탁자에 기간제교사 몇 명이 모여 있다. 그들의 손에는 명세서가 없다. 담임을 맡고, 야간자율학습을 감독하고, 주말 보충수업까지 했지만 성과급 지급 대상이 아니다. 교무실 안과 밖, 불과 몇 미터 거리에 두 개의 세계가 있다.

전국 초중고 교사 10명 중 2명이 기간제다. 2024년 기준으로 담임교사 6명 중 1명이 기간제교사라는 통계가 나왔다. 학생들은 모른다. 자신들의 담임이 1년 계약직인지, 정규직인지. 수업 시간표에도, 학급 게시판에도 그런 구분은 없다. 오직 12월 성과급이 나올 때만 이 구분이 선명해진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2002)에서 현대 노동의 가장 큰 문제로 '표류하는 삶'을 지적했다. 안정적 서사가 사라진 자리에 파편화된 시간들만 남는다고 했다. 기간제교사들의 삶이 그렇다. 매년 2월이면 학교를 옮긴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또다시 낯선 교실, 낯선 아이들. 1년이라는 시간 안에서만 존재하는 관계들.

세넷은 이런 불안정 노동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인간의 품성 자체를 침식한다는 것이다. 장기적 목표를 세울 수 없고, 신뢰를 쌓을 시간이 없고,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낼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이 되는가?

한 기간제교사가 쓴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3년째 같은 학교에서 일하지만 여전히 교무실 좌석 배치도에는 이름이 없다고 했다. '임시'라고만 적혀 있단다. 학생들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지만, 학교 시스템은 그를 임시 존재로 규정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세넷의 책에는 IBM에서 일하다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프로그래머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재취업했지만 이전과 달라졌다. 회사에 충성하지 않고, 동료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간제교사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학교에 헌신하고 싶어도, 아이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도, 1년이라는 시한이 그들을 막는다.

성과급 차별은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르게 평가받는다는 것, 그것이 한 사람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깊다. 교실에서는 선생님이지만 교무실에서는 임시인력. 이 이중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의 무게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다시 10월의 그 교무실. 기간제교사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내년 2월이면 그들은 또 다른 학교로 떠날 것이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12월이 오면, 성과급 명세서가 없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 순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세넷은 묻는다. 표류하는 삶 속에서도 품위를 지킬 수 있는가?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기간제교사들은 매일 이 질문에 답하며 교실에 선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교과서의 내용만이 아닐 것이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법.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가장 중요한 교육일지도 모른다.

전국 초중고 기간제교사 비율
출처: 교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