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에서 월세 3만원짜리 집이 나왔다고 한다. 전남도는 월 1만원 주택을 운영한다고 한다. 보증금도 없다니 청년들에겐 복음처럼 들릴 법하다. 그런데 왜 이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까.
청년 주거지원은 이제 전국 지자체의 필수 정책이 되었다. 제주는 월세를 직접 지원하고, 고양시는 출산율 반등의 비결로 주거 정책을 꼽는다. 지원 규모도 형태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의 주거 불안은 여전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매슈 데스먼드는 『쫓겨난 사람들』에서 밀워키 빈민가의 퇴거 현장을 8년간 추적했다. 그가 목격한 건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었다. 집을 잃는다는 것은 직장을 잃고, 아이들이 학교를 옮기고, 병원 기록이 끊기는 연쇄 붕괴의 시작이었다.
데스먼드는 퇴거가 빈곤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불안정한 주거가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주거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 본다. 월세를 낮춰주면, 보증금을 없애주면 해결될 문제로 본다.
한국의 청년 1인 가구는 2023년 기준 약 380만 가구에 달한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월세에 산다. 평균 월세는 55만원. 최저임금으로 일하는 청년에겐 월급의 30%가 넘는 금액이다. 그래서 월 3만원 임대주택이 수천 명을 끌어모으는 것일까.
하지만 데스먼드의 관찰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청년들은 월 3만원짜리 집에 몰려가야 하는가. 왜 지자체는 손실을 감수하며 이런 주택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것이 정상적인 주거 시장인가.
빈곤은 단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데스먼드의 표현을 빌리면 관계의 실패다. 집주인과 세입자, 이웃과 이웃,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가 무너진 결과다. 그 틈을 메우려는 정책적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관계의 회복 없이는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월 3만원 주택에 지원하는 동안, 민간 임대시장의 월세는 계속 오른다. 공공이 만든 예외적 공간과 시장의 일반적 현실 사이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이 간극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주거의 본질일지 모른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다. 삶을 계획하고, 관계를 맺고, 미래를 상상하는 토대다. 월 3만원이든 100만원이든, 그곳이 삶의 토대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주거라 할 수 없다.
데스먼드가 밀워키에서 만난 한 여성은 말했다. 집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안정적인 집이 있어야 직장도 구하고 아이도 키울 수 있다고. 우리의 청년 주거정책은 이 단순한 진실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숫자 놀음에 머물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