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웅천지구 아파트 단지. 84제곱미터 규모의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신혼부부가 내는 월세는 3만원이다. 보증금은 없다. 같은 평수 시세가 월 40만원을 넘는 지역이다. 전남도가 운영하는 '만원주택'은 이름 그대로 월세가 1만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 현실이 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실험이 펼쳐진다. 제주는 청년 월세를 지원하고, 고양시는 청년 주거와 돌봄을 연계한 정책으로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파격'을 내세운다. 청년들은 몰려든다.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을 넘는다.
이런 정책을 두고 누군가는 포퓰리즘이라 비판하고, 누군가는 획기적 복지라 칭송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왜 월세 3만원이 '파격'이 되는 사회가 되었는가. 청년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도시사회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에서 창조계급의 부상과 도시 양극화를 분석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단순한 소득 격차가 아니었다. 도시의 매력이 높아질수록, 혁신이 집중될수록, 정작 그 도시를 움직이는 평범한 노동자들은 밀려난다. 간호사, 교사, 소방관 같은 필수 노동자들조차 도심에 살 수 없게 된다.
서울도 다르지 않다. 2019년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주거비 부담률은 29.8%였다. 2023년에는 35.2%로 올랐다.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집값에 쓴다. OECD 기준으로 주거비 부담률이 30%를 넘으면 '주거빈곤'으로 분류된다. 청년 세대 전체가 구조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플로리다는 이를 '신도시 위기'라 명명했다. 도시가 성공할수록 실패한다는 역설. 혁신의 중심지일수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모순. 그는 묻는다. 과연 이것이 지속 가능한가. 도시의 다양성과 활력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월세 3만원 정책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불완전하지만 필요한 답. 하지만 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주거를 투자 대상이 아닌 삶의 기반으로 보는 관점. 도시를 자산 증식의 공간이 아닌 함께 사는 터전으로 이해하는 인식.
플로리다의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도시의 땅을 공공이 더 많이 소유하고, 개발 이익을 사회가 환수하며, 다양한 계층이 함께 살 수 있는 포용적 주거 정책을 펼치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실행은 어렵다. 기득권의 저항이 거세고, 변화는 더디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여수의 3만원 주택, 전남의 만원 주택, 제주의 월세 지원. 작지만 의미 있는 실험들이 계속되고 있다. 청년들이 몰려든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하다는 증거다. 이 절실함이 모여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다시 여수 웅천지구. 3만원에 입주한 신혼부부는 절약한 주거비로 무엇을 할까. 아이를 낳을 용기를 낼까. 작은 가게를 열까. 아니면 그저 숨을 쉴 여유를 찾을까. 어떤 선택이든 그들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도시가 모두에게 그런 여지를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공간이 될 것이다.
여수에서 월세 3만원짜리 집이 나왔다고 한다. 전남도는 월 1만원 주택을 운영한다고 한다. 보증금도 없다니 청년들에겐 복음처럼 들릴 법하다. 그런데 왜 이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까.
청년 주거지원은 이제 전국 지자체의 필수 정책이 되었다. 제주는 월세를 직접 지원하고, 고양시는 출산율 반등의 비결로 주거 정책을 꼽는다. 지원 규모도 형태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의 주거 불안은 여전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매슈 데스먼드는 『쫓겨난 사람들』에서 밀워키 빈민가의 퇴거 현장을 8년간 추적했다. 그가 목격한 건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었다. 집을 잃는다는 것은 직장을 잃고, 아이들이 학교를 옮기고, 병원 기록이 끊기는 연쇄 붕괴의 시작이었다.
데스먼드는 퇴거가 빈곤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불안정한 주거가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주거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 본다. 월세를 낮춰주면, 보증금을 없애주면 해결될 문제로 본다.
한국의 청년 1인 가구는 2023년 기준 약 380만 가구에 달한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월세에 산다. 평균 월세는 55만원. 최저임금으로 일하는 청년에겐 월급의 30%가 넘는 금액이다. 그래서 월 3만원 임대주택이 수천 명을 끌어모으는 것일까.
하지만 데스먼드의 관찰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청년들은 월 3만원짜리 집에 몰려가야 하는가. 왜 지자체는 손실을 감수하며 이런 주택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것이 정상적인 주거 시장인가.
빈곤은 단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데스먼드의 표현을 빌리면 관계의 실패다. 집주인과 세입자, 이웃과 이웃,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가 무너진 결과다. 그 틈을 메우려는 정책적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관계의 회복 없이는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월 3만원 주택에 지원하는 동안, 민간 임대시장의 월세는 계속 오른다. 공공이 만든 예외적 공간과 시장의 일반적 현실 사이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이 간극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주거의 본질일지 모른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다. 삶을 계획하고, 관계를 맺고, 미래를 상상하는 토대다. 월 3만원이든 100만원이든, 그곳이 삶의 토대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주거라 할 수 없다.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이 월세 3만원의 무게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리처드 플로리다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월세 3만원의 무게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리처드 플로리다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월세 3만원의 무게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데스먼드가 밀워키에서 만난 한 여성은 말했다. 집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안정적인 집이 있어야 직장도 구하고 아이도 키울 수 있다고. 우리의 청년 주거정책은 이 단순한 진실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숫자 놀음에 머물고 있을까.
기사가 제시한 청년 1인 가구의 주거비 부담률 급상승 추세를 통해 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여수의 월세 3만원, 전남의 만원주택 등 지자체의 파격적 주거 정책을 통해 지역 격차 해소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의 청년 월세 지원, 고양시의 주거-돌봄 연계 정책 등 전국으로 확산되는 주거 지원 정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