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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2월 5째주] 임금의 무게

최저임금 논쟁 뒤에 숨은 노동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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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 1944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 된다고 말한다. 매년 12월이면 되풀이되는 진부한 공방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논쟁하고 있는 것일까.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노동이 상품이 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19세기 영국. 시장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던 시대. 인간의 활동까지 화폐로 교환되기 시작했다. 폴라니는 이를 허구적 상품이라 불렀다. 노동은 원래 상품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2024년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중 최저임금 미만율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숫자는 계속 나온다. 해석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이 수치가 너무 높다고 걱정한다. 누군가는 통계의 허점을 지적한다. 서산지청은 지역 임금 체불액이 3년간 꾸준히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2023년 82억원에서 2024년 67억원으로. 그런데 체불이 줄었다는 것이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일까.

폴라니가 본 것은 수치가 아니었다. 시장이 인간을 집어삼키는 과정이었다. 노동을 상품으로 만들면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최저임금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보호 장치가 있다고 해서 노동이 상품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최저임금 인상률을 놓고 싸운다. 몇 퍼센트를 올릴지 내릴지. 그 사이 노동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사라진다. 왜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가 돈으로 환산되어야 하는가. 이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침묵한다.

한국의 최저임금 적용 사업장 수는 계속 늘어난다. 2019년 180만개에서 2023년 210만개로 증가했다. 더 많은 사람이 최저임금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더 많은 노동이 최저선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폴라니는 시장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했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면 사회는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래서 사회는 자기방어 운동을 시작한다. 최저임금 제도도 그런 방어막 중 하나다. 하지만 방어막이 완벽할 수는 없다.

서산고용노동지청이 임금 체불 감소에 방점을 둔다고 한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임금명세서 미교부 같은 기초질서를 확립하겠다고 한다. 당연한 일들이다. 그런데 왜 2025년에도 이런 당연한 일들을 강조해야 할까.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을 쓴 것은 1944년이다. 80년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노동을 상품으로 거래한다. 최저임금 논쟁도 계속된다.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가.

아마도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최저임금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우리의 삶이 임금으로만 평가되어야 하는가. 이 물음 없이는 매년 12월의 논쟁은 계속 공허할 것이다.

최저임금 적용 사업장 수 추이
출처: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