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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월 3째주] 중대재해

안전의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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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2025년 1월 건설안전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매년 400명 이상의 건설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기사는 법 개정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우며,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최저가 낙찰 관행 속에서 위험이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2025년 1월 16일, 건설안전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중대재해 발생 시 원도급자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발주처와 원청, 하청으로 이어지는 책임의 사슬. 그 끝에는 언제나 노동자가 있다.

건설 현장의 죽음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매년 400명이 넘는 건설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2024년 한 해만 해도 412명. 하루 평균 1.1명이 현장에서 사라졌다는 계산이다. 법은 계속 만들어지고 개정된다. 그런데 숫자는 왜 줄지 않을까.

울리히 벡은 1986년 『위험사회』에서 현대 산업사회의 본질적 모순을 꿰뚫었다. 부를 생산하는 동시에 위험을 생산하는 사회, 그리고 그 위험이 부와 반비례하여 분배되는 구조를 그는 정밀하게 해부했다. 부유한 자는 위험을 회피할 수 있지만, 가난한 자는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건설 현장의 사망 사고는 이 명제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한국 건설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위험 전가의 교과서적 사례다. 원청은 공사를 발주하고, 하청은 재하청에 넘기고, 최종적으로 현장에서 위험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것은 일용직 노동자다. 공사비는 단계마다 깎이지만 위험은 단계마다 농축된다. 최저가 낙찰 관행은 이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 안전 비용은 가장 먼저 삭감되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벡의 통찰에서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위험의 민주화라는 개념이다. 과거의 위험이 특정 집단에 한정되었다면, 현대의 위험은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돌아온다. 건설 현장의 부실 시공은 노동자의 죽음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은 수십 년 뒤 거주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추락, 끼임, 낙하물이라는 사고 유형이 수십 년째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것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임을 방증한다.

건설안전관리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어도 매년 400명 이상이 현장에서 사라지는 현실은, 법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음을 증명한다. 벡이 말한 것처럼 위험사회의 해법은 기술적 안전장치가 아니라 위험을 생산하는 경제적 논리 자체의 변환이다.

『위험사회』이 중대재해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울리히 벡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중대재해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울리히 벡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중대재해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중대재해 분야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냈다. 선진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하면서, 제도적 성숙 없이 양적 팽창만 이뤄진 측면이 있다.

하도급 구조의 개편, 적정 공사비 보장, 안전 비용의 별도 관리가 그 출발점이다. 노동자의 죽음이 더 이상 비용 절감의 대가로 치부되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언제 만들 수 있을까. 누군가의 죽음 위에 세워진 건물에서 우리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숫자로 보는 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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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 사망사고 현황 최근값
고용노동부·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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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4 증감
2024년 고용노동부 고용행정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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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기준
2020년 고용노동부 고용행정통계

벡의 분석 틀로 한국 건설 현장을 들여다보면, 위험의 계층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2024년 건설업 사망자 412명 중 원청 소속은 전체의 12%에 불과하고, 나머지 88%가 하청 또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사고가 발생하면 법적 책임은 원청으로 올라가지만, 실제 위험은 하청 노동자의 몸 위에 내려앉는다. 안전모와 안전벨트라는 개인 보호장비가 구조적 위험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상징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건설안전관리법 개정안은 원도급자 책임을 강화했지만, 현장의 실상은 법 조문과 거리가 멀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안전 비용은 단계를 거칠수록 희석된다. 원청이 배정한 안전 예산이 2차, 3차 하도급을 거치면서 실제 현장에 도달하는 비율은 원래의 40~60%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법의 취지와 현장의 괴리, 그 간극에서 노동자의 생명이 소진되고 있다.

벡은 위험사회에서 과학과 전문가의 역할이 양면적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위험을 진단하면서도 동시에 위험을 은폐하는 데 동원된다. 건설 현장의 안전 점검이 형식적 서류 작업에 그치고, 안전관리자가 원청의 공정 압박 앞에서 무력해지는 현실은 이 통찰의 정확한 재현이다. 2024년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의 67%가 공정 지연 우려로 작업 중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결국 건설 현장의 죽음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시스템의 설계 결함이다. 최저가 낙찰제가 안전 비용을 구조적으로 삭감하고, 다단계 하도급이 책임을 분산시키며, 공정 압박이 안전 절차를 무력화한다. 벡이 말한 위험의 사회적 생산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다. 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발주 체계, 입찰 구조, 하도급 관행이라는 토대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매년 400명이라는 숫자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구조적 문제 지적

이 기사는 법 개정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건설업 내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2
노동자에게 집중된 위험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최저가 낙찰 관행으로 인해 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3
지속되는 사고율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건설 현장 사고율이 지속되고 있어 향후 전개 방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설업 사망사고 현황
출처: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