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7시, 한 남자가 작업복을 입는다. 허리춤에 공구를 차고, 안전모를 쓴다. 아내가 건넨 도시락을 받아들며 문을 나선다. 평범한 출근길. 그가 향하는 곳은 직원 5명이 일하는 작은 공장이다. 이런 사업장이 우리나라에만 수십만 개가 있다.
정부가 소규모 사업장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민간 퇴직자와 노사의 역량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8월부터 11월까지 시범사업도 진행한다. 전문가들이 현장을 돌며 위험요소를 찾아낸다.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을 한다. 그런데 왜 산재는 줄지 않는 걸까.
『보이지 않는 죽음들』(2022)에서 저자 김혜진은 묻는다. 산업재해를 개인의 부주의로만 볼 수 있을까. 그는 3년간 산재 사망자 가족들을 만났다. 유족들의 증언을 듣고, 현장을 찾았다. 그가 본 것은 구조였다. 납기일에 쫓기는 하청업체, 인력이 부족한 작업현장, 안전교육을 받을 시간도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955명. 하루 평균 2.6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작은 사업장일수록 위험하다는 통계다. 하지만 숫자 뒤에 숨은 이야기는 더 복잡하다.
김혜진이 만난 한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일하던 곳은 원청의 하청의 하청이었다고. 안전관리자는커녕 관리자도 없었다고. 사고가 나자 업체는 문을 닫았다. 책임질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구조다. 전문가 파견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정부의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안전은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사업주,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사회. 이 삼각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저자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를 피해자로만 보지 말자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현장 개선에 활용하자고. 실제로 영국에서는 산재 경험자들이 안전 컨설턴트로 활동한다. 자신이 다쳤던 그 현장의 언어를 아는 사람들이다.
다시 아침 7시. 작업복을 입는 남자가 있다. 오늘도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너무 무거운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안전이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가 되는 날.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시작됐다. 민간 전문가들이 현장으로 간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다른 곳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 노동자의 목소리가 경영진에 닿는 소통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생명을 지키려는 연대의 마음.
내일 아침에도 수백만 명이 일터로 향한다. 그들 모두가 저녁에 가족 곁으로 돌아가기를.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가장 소박하고도 절실한 미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