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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3월 셋째주] 최저임금과 소매업의 눈물

영국 다이소가 매각되던 날, 우리는 무엇을 놓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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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 2001

퇴근길 편의점에서 김밥 하나를 집어들었다. 계산대 앞에 선 알바생이 피곤한 얼굴로 바코드를 찍는다. 3,500원. 작년보다 500원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진열대 곳곳에 가격표가 새로 붙어있다. 편의점 사장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인건비 때문에 어쩔 수 없단다.

영국에서 '파운드랜드'가 매각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로 치면 다이소 같은 곳이다. 1파운드짜리 생활용품을 파는 서민들의 친구였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10퍼센트 오르고 고용주가 내는 국민보험료까지 인상되자 버티지 못했다. 창업자가 눈물을 머금고 매각 카드를 꺼냈다.

1997년 영국 버밍엄의 한 창고에서 시작된 이 가게는 금융위기 때 오히려 성장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8년 만에 주인이 바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기가 회복되고 최저임금이 오른 시점에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을 다시 꺼내들었다. 2001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는 기자 신분을 숨기고 웨이트리스, 청소부, 마트 직원으로 일했다. 최저임금으로는 집세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몸으로 겪었다.

그녀가 일했던 월마트에서 동료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가 파는 물건은 살 수 있는데 우리 삶은 살 수 없다고. 최저임금이 오르면 이런 모순이 해결될까. 파운드랜드의 폐업은 다른 답을 보여준다.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던 가게들이 먼저 무너진다.

한국의 최저임금 미만율을 보면 더 복잡해진다. 2018년 12.0퍼센트에서 2024년 15.9퍼센트로 늘어났다. 최저임금은 계속 올랐는데 그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은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법이 정한 선 아래로 더 많은 사람이 밀려났다.

편의점 사장님도, 알바생도 피해자다. 한쪽은 인건비 부담에 허덕이고 다른 쪽은 오르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한다. 파운드랜드처럼 서민을 위한 가게가 서민을 고용하다가 무너지는 악순환. 이것이 우리가 만든 경제의 민낯인가.

에런라이크는 책 말미에 썼다. 가난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라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개인에게 묻는다. 왜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않느냐고. 왜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느냐고.

편의점을 나서며 생각한다. 내일도 그 알바생은 계산대에 서 있을 것이다. 파운드랜드가 문을 닫은 영국 어딘가에서도 누군가는 최저임금 일자리를 찾아 헤맬 것이다. 그들이 파는 김밥과 1파운드 생활용품이 없다면 우리 일상은 어떻게 될까.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빠져있다. 우리가 만든 이 시스템에서 정말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편의점 김밥이 4,000원이 되는 날,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한국 최저임금 미만율 추이
출처: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