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옥스퍼드 사전은 '슬롭(slop)'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AI가 생성한 저품질 콘텐츠를 가리키는 이 단어가 공식 용어가 된 것이다.
처음엔 신기했다. 몇 초 만에 그럴듯한 글이 나오고, 진짜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우리가 원했던 미래였을까. 매일 쏟아지는 AI 콘텐츠들 사이에서 진짜 사람의 목소리를 찾기가 더 어려워진 건 아닐까.
월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의 상실을 이야기했다. 복제 기술이 예술작품의 일회성과 진품성을 파괴한다고 봤다. 1936년에 쓰인 이 글이 2025년의 AI 시대를 예견이라도 한 걸까. 다만 벤야민은 복제 기술이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올 거라 기대했다. 대중이 예술에 더 가까워질 거라고.
그런데 AI는 조금 다르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게 됐지만, 정작 그 창작물들은 서로 닮아간다. 같은 알고리즘이 만든 비슷한 패턴들.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채운 건 민주화가 아니라 균질화였다.
한 IT 기업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매일 AI로 보고서를 쓰지만 정작 읽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다들 AI로 쓰고, AI로 요약해서 본다고. 그럼 대체 우리는 왜 일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든다고.
벤야민은 복제 기술이 예술작품을 '전시가치'로 전환시킨다고 봤다. 제의가치에서 전시가치로. 신성함에서 일상으로. AI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생산은 쉬워졌지만 의미는 희미해졌다. 클릭 수와 조회 수만 남았다.
흥미로운 건 역설이다. AI가 넘쳐날수록 사람들은 '진짜'를 찾는다. 손글씨가 다시 유행하고, 필름 카메라가 팔린다. 직접 만든 음식 사진이 AI 이미지보다 인기를 끈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믿을 만하다고 여긴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상실을 애도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복제 기술이 예술의 제의적 기능을 해체하고 정치적 기능을 부여한다고. AI 시대의 우리도 비슷한 전환점에 있는지 모른다. 슬롭이 넘쳐나는 지금, 우리가 찾는 건 어쩌면 잃어버린 아우라가 아니라 새로운 진정성일지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AI 피로감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발터 벤야민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AI 피로감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발터 벤야민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AI 피로감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AI 피로감 분야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냈다. 선진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하면서, 제도적 성숙 없이 양적 팽창만 이뤄진 측면이 있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것.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그것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 3월, 옥스퍼드 사전은 '슬롭(slop)'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게 됐지만, 정작 그 창작물들은 서로 닮아간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상실을 애도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