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한 달을 일하고 받는 급여가 37만원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정규 노동을 하면서 말이다. 2023년 장애인 평균 임금이 그렇다고 한다. 최저임금의 60%도 안 되는 수준. 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부담금을 내는 쪽을 택한다. 고용하는 것보다 돈을 내는 게 더 싸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할까.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자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기업들이 사람 대신 돈을 선택하는지, 왜 장애인 노동은 최저임금 적용에서도 예외가 되는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다.
에바 파이거 킬러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감의 기술』을 읽다 보면 이상한 대목에서 멈추게 된다. 공감은 거리를 측정하는 일이라는 구절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할 때, 실은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고 있다는 것. 장애인 노동자와 비장애인 노동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킬러는 공감의 첫 단계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같음을 강요하지 않고 다름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장애인 노동을 볼 때 '정상' 노동의 기준에서 모자란 무언가로만 본다. 그래서 최저임금도 예외가 되고, 고용 의무도 돈으로 대체 가능한 것이 된다.
진짜 문제는 생산성이 아니다. 우리가 노동의 가치를 오직 생산성으로만 측정한다는 것이 문제다. 장애인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아니, 보려고 하기는 하는가. 37만원이라는 숫자는 그들의 노동 가치가 아니라 우리 시선의 한계를 보여준다.
킬러는 공감이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행동하는 것. 장애인 고용 의무 제도가 있는데도 기업들이 부담금을 선택하는 현실은, 우리의 공감이 아직 실천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당신의 일터에도 장애인 동료가 있는가. 없다면 왜 없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기업이 장애인 고용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 2023년 기준으로 의무고용률 3.1%를 지킨 기업은 절반도 안 된다. 나머지는 모두 부담금을 냈다. 사람 대신 돈을 낸 것이다.
이 선택 뒤에는 계산이 있다. 장애인을 고용하면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업무를 조정해야 하고, 다른 직원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반면 부담금은 그냥 내면 된다. 복잡한 과정 없이 깔끔하게 의무를 '해결'할 수 있다.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효율성이 지워버리는 것들이 있다. 장애인 노동자가 일터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가치들, 함께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들,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기회들. 이런 것들은 숫자로 계산되지 않기에 선택에서 배제된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시간당 생산량으로? 매출 기여도로? 아니면 그 사람이 일터에 존재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변화로? 월 37만원이라는 장애인 평균 임금은 우리가 첫 번째 기준만을 고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기준은 없을까. 아니, 다른 기준을 상상해본 적은 있는가.
